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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생필품 집중관리 무엇 남길까
[이슈]생필품 집중관리 무엇 남길까
  • 김영욱 기자
  • 승인 2008.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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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의식된 물가안정책 '의구심' 생필품 52개 품목 집중관리...근본적 물가대책으로는 역부족 경기도 안산에 사는 주부 나영란(42)씨는 “안 오른 게 없고 올라도 너무 올라 시장 가기가 겁난다”며 “고물가 탓에 장바구니 채우기가 부담스럽다”고 한숨지었다.
서울 목동에서 자장면 집을 운영하는 김재홍(47)씨는 “밀가루와 애채, 식용유 등 음식 원재료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임대료도 못 낼 판”이라며 “가계를 내 놨는데도 팔리지 않아 고민”이라고 푸념했다.
곡물, 원자재, 원유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 2월 2.40에서 올 2월 4.60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시장에서는 한때 라면 사재기가 등장했고 “장보기가 무섭다”는 서민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렇듯 물가 폭등으로 서민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자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한 달 만에 서둘러 칼을 뽑아들었다.
이 대통령은 23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물가 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더 시급해진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새 정부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성장률을 맞추기 위해 성장 드라이브 모드에서 물가안정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서민 생활과 밀접한 쌀 밀가루 라면 쇠고기 휘발유 통신비 학원비 등 생활필수품 52개 품목을 집중 관리하기로 한 것. MB, 성장모드에서 물가안정 ‘전환’ 정부는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생활필수품 점검 및 대응계획’을 확정했다.
이 대통령 정부가 출범 이후 한 달 간 내놓은 서민대책만 이로써 3번째다.
기획재정부는 소득 하위 40%(가구당 월소득 247만원이하) 계층이 자주 구입하고 지출비중이 높은 52개 생필품에 대해 10일 주기로 가격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매달 상승률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52개 생필품에는 농·축·수산물 13개, 가공식품 11개, 공산품 9개, 공공요금 9개, 개인서비스 등 10개가 포함됐다.
재정부에 따르면, 52개 품목이 소득 하위 40% 계층의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2%이다.
논란이 많았던 품목도 있었다.
소주는 생필품인지 기호품인지 논란이 많았지만, 서민 지출이 많은 품목이라는 이유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소주의 원료가 되는 주정용 원료 관세가 4월부터 물가 안정을 위해 인하(10%→0%)된다"며 "소주 가격을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워치(주시)하기 위해 관리 품목에 넣었다"라고 말했다.
반면 맥주 원료인 맥주보리(20%→0%)의 관세도 소주 원료와 마찬가지로 없어졌지만, 맥주는 관리 품목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외식비 중엔 유일하게 자장면이 포함됐다.
당초 외식비가 생필품인지 아닌지 논란이 있었지만, 상징적으로 자장면은 포함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선정 과정을 자문한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자장면 가격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지만, 서민층의 대표 외식 품목이라는 상징성을 저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애초 검토 품목에는 없었지만 세제·밀가루·유아용품·설탕은 소비자단체 요구에 따라 반영됐다.
재정부는 원래 분유·기저귀 등 유아용품은 특정 나이대가 사용하는 품목이라 제외할 것을 검토했지만, 막판에 리스트에 올라갔다.
세제·샴푸 등을 생산하는 생활용품 업체 관계자는 "워낙 업계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 항상 할인 행사를 하면서 버티고 있었다"며 "가격 인상요인의 자체 흡수가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정부가 이렇게 나오니 앞으로 가격 올리기는 다 틀렸다"고 말했다.
이중 공공요금에 대해선 상반기 중 요금을 동결하는 방식으로 정부가 직접 가격 통제에 나서지만, 그밖의 다른 품목들에 대해서는 할당관세 인하, 유통구조 개선, 비축물자 방출 등을 통해 기업들이 원가상승 요인을 흡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가격 안정을 이끌어낼 방침이다.
정부는 이로써 소비자물가를 최소 0.1%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내달 1일부터 밀 옥수수 요소 사료용곡물 등 생필품과 원자재 69개의 관세율을 0%로 낮추고 휘발유 등 석유제품은 3%에서 1%로 내리는 등 할당관세를 현행 46개 품목에서 82개 품목으로 확대한다.
전세자금 지원규모를 3조원에서 4조원으로 확대하고 지원대상도 17만호로 늘려 저소득층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개인서비스 중에선 학원비의 편법 인상을 중점 점검키로 했다.
정부는 특히 유류세 10%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격 안정 효과를 내지 못한 휘발유 등 석유제품에 대해서는 정유 4사가 가격 결정을 주도하기 어려운 유통구조로 개편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대형마트 등의 신규사업자가 자가상표로 석유상품을 유통시킬 수 있도록 진입 규제를 철폐할 방침이다.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가 주유소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 주유소에서 여러 정유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복수상표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유사-주유소에 보편화된 배타적 공급계약제도도 검토한다.
전문가들 품목관리 정책 실익 없다 전문가들은 52개 품목을 관리한다는 정부 대책이 ‘실익(實益)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가격을 묶어 놓으면 품질이 저하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시장에 생산 하지 말라는 ‘신호’로 작용해 공급 자체를 떨어뜨릴 수 있고, 서비스의 질·가격을 높이겠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서민들을 위하려면 가격 통제보다는 서민들의 소득을 보전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마켓 프렌들리(시장 친화적)’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경 통합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물가 대책이 제대로 지켜지거나 추진 중인 정책이 하나도 없다”며 “6대 거짓말 정책”이라고 깎아내렸다.
이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성장 우선, 재벌 대기업 우선 정책으로 서민물가를 더 높이 올리고 말았다”며 “재벌 대기업에는 23조원짜리 감세 선물을 퍼주면서 서민들에게는 물가폭탄을 터트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관세인하로 수입물량을 늘리고 수입물가를 인하하겠다고 했지만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물가안정 효과가 0.1% 뿐”이라며 “이는 관련 수입업자와 대기업들에게 2조원 가까운 세금혜택을 주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경제공약 줄줄이 후퇴, 정치적 계산? 물가뿐만 아니다.
경제 대통령이 내놓은 다른 핵심 공약들도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MB노믹스’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당선 일등공신인 ‘747(7% 경제성장, 1인당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강국) 정책’은 달성이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진지 오래다.
이 대통령은 규제완화를 바탕으로 ‘성장’과 ‘물가’를 동시에 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경제성장률은 7%, 물가는 3.3%가 목표였다.
통신비 20% 인하는 업계 반발로 사실상 물 건너갔고, 신용불량자 구제도 ‘빛 탕감’에서 ‘국민연금 담보을 통한 채무 상환’으로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을 내세웠던 한반도 대운하도 총선을 앞두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이는 민간연구소들의 분석과는 크게 동떨어졌다.
LG경제연구소는 국제유가 상승, 기업투자 위축 등을 이유로 경제성장률은 4.9%→4.6%로 낮췄고, 삼성경제연구소(5.0%→4.7%), 골드만삭스(5.0%→4.8%) 등 경제성장률은 하향조정했다.
일자리 창출을 기치로 추진의사를 강력히 밝혔던 한반도 대운하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국토해양부 등 정부부처 업무보고는 물론 총선공약집에서도 빠졌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 “한반도 대운하는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종합 국책사업”이라며 “운하를 건설하는 기간에 3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경제 효과는 수십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한 바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움직임라고 하지만 후일을 장담할 수 없다.
학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곳곳에서 반발이 확산되고 있어 총선이후에도 적잖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과도한 목표를 잡았다면 지금이라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국민들을 설득시켜야한다”며 “원유, 원자재값 상승, 환율상승 등으로 불안해진 물가를 다잡기 위해 ‘52개 생활필수 품목’을 집중 관리하겠다지만 이마저도 실효성에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영욱 기자 kyw@economy21.co.kr

정부, 왜 특별관리 품목 정했나

70년대식 물가통제로 회귀?…실효성 없다

정부는 생필품 52개 품목의 가격을 모니터링 하되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하지 않겠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특별관리 품목을 지정했을까? 물가 불안에 손을 놓을 수도 없고, 군사정부처럼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는 정부의 난처한 입장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70년대식 물가 통제로 회귀한다는 비판과 관련, 임종룡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정부가 시장에 대해 직접적인 가격 통제를 할 수 없으며 근거도 없다”며 강조했다.
한마디로 물가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것뿐이다.
정부가 휘발유, 경유 등 석유류 4개 제품에 대해 할당관세를 낮춰 수입제품과 국내제품간의 경쟁을 유도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할당관세를 1%로 낮춰도 여전히 수입산 제품이 국내산보다 리터당 17원 비싸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원자재 등 가격 인상 요인을 내부적으로 흡수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등 근본적인 물가대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석유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유치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촉발한다는 방안 등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서민 생활비 30%인하’ 방안 공약을 내놓았지만, 정작 집권 뒤에는 ‘서민생활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맞바꾸고 실질적인 대책은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대선 전에 큰 소리로 약속했던 반값 아파트, 반값 사교육비, 반값 등록금 정책은 어디로 갔는가”라며 “시민들이 가장 큰 문제로 느끼는 주거비, 사교육비, 등록금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 없이 어떻게 물가를 잡을 수 있단 말이냐”고 개탄했다.

가격통제 하는 나라들 있나

러시아·중국 등 대부분 개발도상국

세계적인 물가 상승에 대응해 가격 통제를 실시하는 나라들도 있다.
중국은 석유·곡물·식용유·고기의 값을 올리려면 반드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태국은 국수와 식용유 값을 통제하고, 인도네시아는 국영업체에 쌀값 동결을 지시했다.
러시아도 빵·계란·우유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했다.
한 경제학자는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두 가지로 하나는 개발도상국가라는 점이다.
절대빈곤층이 많아 당장 ‘배고픈 민심’을 겁내는 나라들”이라면서 “또 하나는 가격 통제의 후유증을 앓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지적했다.
‘기름이 떨어졌다’ ‘쌀·식용유 품절’이란 간판을 내건 주유소와 가게들이 속출하고, 사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국 최대 정유사인 페트로차이나의 주가는 반 토막이 났다.
이 학자는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가격에 손댈 기미가 전혀 없다”며 “금리·환율 같은 거시변수들은 조정하되, 가격은 전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학자도 “새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가격 통제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규제 완화와 할당관세 인하 등을 통해 비용상승 압력을 최대한 줄이면서 세계시장의 수급이 풀리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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