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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아줌마! IT 대륙에 도전하세요
[직업] 아줌마! IT 대륙에 도전하세요
  • 이경숙
  • 승인 2000.1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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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네번째 면접이다.
인사담당자 표정을 보니 이번에도 취직은 물 건너간 모양이다.
김아무개(29)씨는 길가 편의점에서 담배 한갑을 샀다.
임신 후 끊었으니 3년 만에 피워무는 담배다.
그 시절 김씨는 대기업 SI 업체에서 잘 나가던 프로그래머였다.
하지만 IT 업계에서 3년은 30년만큼 긴 시간이다.
그 사이 프로그래밍 언어와 툴이 많이 바뀌어서 요즘엔 3년 전의 경력을 인정해주는 업체가 거의 없다.
‘아무리 애가 이뻐도 일은 그만 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김씨는 가슴을 짓누르는 자괴감을 어찌할 수 없다.

이상하다.
통계청은 최근 발표한 고용동향 자료에서 지난 9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17만명이 늘었는데 이중 14만명이 전업주부였다고 했다.
여성창업인구도 크게 증가했다.
서울지방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여성이 경영하는 벤처기업은 146개로 지난해 이맘때보다 113개나 늘어났다.
전체 벤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3.8%로 지난해의 2.8%보다 1%나 늘었다.
두터운 편견, ‘전문성’으로 뚫는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다시 나선 아줌마들은 여전히 높은 벽을 절감한다.
몇년 만에 나선 사회가 너무 낯설어 두렵기만 한데, 한걸음 한걸음 발길을 옮길 때마다 편견어린 시선이 발목을 잡는다.
‘여자가 뭘 하겠어.’ ‘애는 어쩌고 나왔지?’ ‘가정주부가 집안일에나 신경쓰지 왜 나와서 남편들 일자리까지 빼앗으려 들어’…. 동년배 남자들은 홀가분한 맨몸으로 저만치 앞에서 뛰고 있는데 아줌마들은 잠수복을 입고 출발선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격이다.
도대체 다른 아줌마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는 것일까. 편견의 벽을 여는 첫번째 열쇠는 역시 전문성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이포넷 www.e4net.net 은 직원 42명 가운데 22명이 여자다.
이수정(37) 대표이사는 일부러 여자를 많이 뽑은 게 아니라 능력있는 사람들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됐다면서 무연한 표정을 짓는다.
새로 뽑은 간부급 전문인력 중엔 전업주부 출신도 꽤 많다.
특히 최상희(38) 부장, 손해정(35) 과장, 황일심(29) 대리는 결혼 후 2, 3년 가량 일을 그만 뒀다가 이포넷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 경우다.
다들 전문 프로그래머로, 이중 최 부장은 96년 우리나라 최초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공인자격증 SCJP를 취득한 선구자적 인물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일반직종에선 재취업을 못해요. 또 IT쪽 전문가라 해도 오랫동안 완전히 손 놓고 있으면 재취업은 힘들죠.” 이들은 IT 업계의 인력난이 워낙 심해 주부라도 전문인력이면 취업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관건은 급변하는 IT 산업을 따라잡느냐 따라잡지 못하느냐다.
자바언어 전문가인 최 부장도 언제라도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늘 느껴왔다.
그래서 남편이 지사에 발령받아 미국에 나가 있던 지난 1년반 동안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업계의 새로운 기술동향을 알려고 애썼다.
또 어렵기로 소문난 썬 공인자격증 SCJD를 따냈다.
손 과장은 남편의 유학 때문에 3년간 가 있던 미국땅에서 최신 프로그래밍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언제 복귀해도 현업 프로그래머들처럼 일할 수 있도록 계속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온 것이다.
주부의 홀로서기엔 뒷심이 필요하다? 이들이 일하는 모습은 ‘슈퍼우먼’의 전형 같아 보인다.
황 대리의 하루일과를 들여다보자. 아침 8시에 세살배기 아들 준우를 잠실의 시어머니께 맡긴다.
회사일을 마친 저녁 7시께 부랴부랴 시어머니께 달려가 준우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벌써 저녁 8, 9시. 그때부터 청소, 빨래 등 집안 정리를 하다보면 초저녁 같은데 어느덧 자정 무렵이 되어있다.
황 대리는 다시 컴퓨터에 앉아 회사에서 못 다한 일을 처리한다.
“새벽 한두시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여기저기서 동료들의 메신저가 팡팡 떠요. 이건 어떻게 됐어, 저건 뭐야 하면서요. 다들 안 자고 일하고 있는 거죠. 그 시간에.” 손 과장은 “아줌마들이 헝그리 정신이 강해서 그래요” 하면서 파안대소한다.
미혼 때야 이런저런 변화의 가능성이 많지만 아줌마가 되면 입지를 바꿀 기회가 거의 없다.
이 길뿐이라는 절박감이 아줌마 벤처인들을 더욱 억척스럽게 만든다.
최 부장은 생각이 좀 다르다.
이포넷은 다른 회사와는 달리 여성에 대한 승진차별이 없다.
아줌마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니까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포넷의 주부 프로그래머들같이 조건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다.
CEO부터 주부인 이포넷과는 달리 대부분의 회사들이 주부를 신규, 또는 경력채용할 때 ‘예상되는’ 불편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친정어머니, 시어머니, 남편 등 조력자의 존재도 중요하다.
육아와 가사를 분담해줄 사람이 없는 주부들은 벤처 기업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가 매우 어렵다.
직장인으로 주부가 남자들처럼 일하기 위해선 가족과 경영진이 ‘뒷심’을 받쳐줘야 한다.
대부분의 주부들에겐 이포넷의 사례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일부 전문직 여성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래서 여성 인력 전문가들은 사회진출을 꿈꾸는 전업주부들에게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길, 창업에 앞서 자신의 세상을 되돌아보길 권한다.
또다른 왕도 ‘소호창업’ 올해 초 J&J커뮤니케이션을 차린 이민정(35)씨는 인터넷에서 ‘자기만의 방’을 찾아나섰다가 사업 아이디어까지 얻었다.
97년 남편이 들여온 컴퓨터가 별천지를 열었다.
처음 일주일간 채팅에 빠져 있던 이씨는 이내 주부동호회에 가입해 온·오프라인에서 맹렬하게 활동하는 주축멤버가 되었다.
99년 주부를 타깃으로 한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이씨를 찾아와 주부 네티즌들의 성향과 기호를 상의하는 사업자들이 많아졌다.
인터넷 관련 잡지에서 원고청탁도 들어왔다.
오랜 커뮤니티 운영 경험에서 오는 노련하고 전문적인 상담에 감탄한 사업자들이 이씨에게 더욱 깊고 전문적인 견해를 물어오기 시작했다.
취미가 사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씨는 동호회에서 만난 다른 3명의 주부들과 함께 커뮤니티 컨설팅을 시작했다.
커뮤니티가이드(Community Guide)와 웹이벤트 기획을 합친 사업이었다.
이씨와 주부 동료들은 최근 몇몇 주부 대상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여성 포털사이트의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아직 시장이 넓진 않지만 수입은 솔찮게 좋다.
그러나 이씨가 이 일에 신바람이 난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대학졸업 1년 만에 결혼해 사회를 겪어보지 못한 그에게 새 사업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창문을 열어준 것이다.
사회를 보는 시야와 생각의 범위가 나날이 넓어짐을 느낀다는 이씨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넘친다.
이씨의 유일한 불만은 하청일 하는 자신들보다 의뢰업체가 사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을 때다.
이씨는 그만큼 일에 푹 빠져 있다.
이씨처럼 틈새시장을 개척한 주부 CEO들은 의외로 많다.
전업주부 출신인 이영아 사장의 컨텐츠코리아 www.contents.co.kr 김희정 사장의 사비즈 www.sabiz.co.kr 는 이미 벤처를 넘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꽃배달 서비스 산타플라워 www.santaflower.co.kr 정규은씨, 생활공예DIY 맘키드 momkid.co.kr 김명효씨, 퀼트나라인형나라 www.quiltworld.pe.kr 강선옥씨 등은 평소 관심사를 살린 주부 대상 전자상거래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여성취업, 창업 전문가인 사비즈 김희정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주부들은 일하고 싶은데 기회가 없어 못한다고 말해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문제는 주부들이 기회를 놓친다는 거예요. 일단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언제라도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세요.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아놓고 남편과 집안일을 분담하세요. 기회를 잡을 준비를 하세요. 그러면 기회가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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