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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러시아]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서다
[스페셜/러시아]역사의 전면에 다시 나서다
  • 김계환
  • 승인 2008.08.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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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 가격상승·국가주도 경제정책이 성장 발판 냉전에서의 최종적인 패배, 70여년간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의 양대 축을 구성하던 소비에트 체제의 붕괴로 20세기와 함께 역사의 주무대에서 사라진 듯 보였던 러시아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연 8%에 이르는 러시아의 높은 경제 성장은 이중적인 대조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나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북미와 서유럽 선진국 경제와의 대조이며, 다른 하나는 1990년대 러시아 자체의 경제적 붕괴와 이루는 대조이다.
이제 러시아는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시작된 체제전환을 마감하고 새로운 러시아 자본주의를 확립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및 서유럽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시작된 금융질서의 혼란에 빠져드는 시점에서 안정된 성장지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소련의 해체가 영미식 자본주의의 최종적인 승리로 해석되어 역사의 종언이 선언되었던 1990년대를 생각한다면 현재의 세계경제 정세는 다양한 지역 자본주의간 경쟁이 결코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러시아의 눈부신 성장의 원천은 무엇이며 성장을 지탱하는 경제체제의 성격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러시아 경제 성장은 1990년대 생산 축소의 회복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체제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생산의 축소는 20세기 어떤 국가의 역사적 경험과도 비교불가능한 것이었다.
대공황시 미국의 경우 1인당 생산이 최고 31% 떨어졌고 공황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10년이 소요되었다.
반면, 90년대 러시아의 생산 감소는 1998년 최고 42%까지 이르렀고 2007년에 들어서야 1991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시 성장으로 유턴을 시작한 1999년부터 06년까지 러시아의 GDP 평균 성장률은 6.6%에 이르고 있어 이전 10년과 극단적 대조를 이룬다.
인플레이션, 정부재정, 국제수지, 외국인투자 등 대부분의 변수가 1998년을 기준으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것이 90년대 이후 러시아 경제의 특징이다.
이러한 러시아 경제의 고도성장의 주요 원천은 무엇인가? 98년 금융위기에 따른 루블화 가치의 폭락과 수입대체, 국제 원유가 상승 및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 등 복합적 요인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98년 8월 모라토리움 선언 직전 달러당 6루블이던 루블화는 2002년 30루블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환율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을 회복한 러시아산 소비재가 러시아 시장에 범람하던 수입품을 대체하면서, 기업의 설비가동률이 높아지고 노동생산성과 기업 수익률도 올라갔다.
기업의 투자와 임금 상승에 따른 수요가 증가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99년 시작된 유턴을 연장해갔다.
2001년 루블화 평가절하에 의한 성장의 여력이 소진될 무렵, 새로운 성장의 원천이 추가되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다시 러시아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한 것이다.
원유와 관련 제품의 수출 및 투자 증가는 연관효과를 통해 관련 산업의 성장을 견인했고 소득증가를 통해 내수를 확대시켰다.
루블화 평가절상과 소득 상승으로 수입이 증가하긴 했으나 수출 증가의 효과를 상쇄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발전전략과 경제정책을 빼고 대외적 요인만으로 러시아 성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특히 산업다각화로 요약되는 러시아의 산업정책은 발전전략의 주요 축을 형성함과 동시에 러시아 자본주의의 성격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리고 이 다각화 전략은 러시아 경제가 않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해결하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러시아 경제는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대외 요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
특히 자원 및 에너지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러시아 경제가 ‘홀랜드 병’, ‘자원의 저주’(자원 수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경제의 탈산업화, 거시적 불안정성 증대, 부패와 지대추구경제 정착 등으로 오히려 장기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의 문제를 안고 있어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은행이 상품의 세계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한 바에 따르면 2003년 연료생산 섹터가 러시아 산업 부가가치 생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여기에 에너지와 금속 생산을 추가할 경우 이 비율은 69%로 높아진다.
수출의 자원 및 에너지 산업 의존도는 더욱 심하여 2006년 자원 및 연료 수출이 전체 수출의 66%나 차지하며, 여기에 금속 생산을 추가할 경우 무려 80%에 이른다.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러시아 정부는 산업다각화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푸틴 2기인 2004년을 넘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다각화 전략은 자원 및 에너지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인다는 경제적 목적 뿐만 아니라 소련의 붕괴로 잃어버린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한다는 정치적 목적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국제적 위상의 회복은 군사적 위상의 회복을 포함하며 따라서 첨단 제조업과 기술의 발전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산업다각화 전략이 이러한 전략적 군사적 목적과도 불가분의 관련 속에 추진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업다각화 전략과 정책은 러시아 경제 성장의 원천의 하나이며 그 성공 여부에 러시아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
이러한 발전전략 추진의 핵심 주체는 역시 러시아 국가이다.
옐친 집권기와 푸틴 집권기를 구분하는 핵심적 차이는 역시 국가의 부활이라고 할 만큼 국가의 경제적 역할을 강화한 것이다.
다른 자원부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포스트 소비에트 러시아에서도 발전전략을 둘러싼 정치 집단간 갈등은 자원지대를 누가 어떻게 처분하느냐가 쟁점이 된다.
푸틴에 의한 러시아 국가의 부활은 국가에 의해 자원지대의 통제가 재확립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국가의 경제적 역할 강화는 다양한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재국유화를 통한 소유 통제이다.
석유 및 가스산업 등 자원 및 에너지 산업이 대상이다.
러시아 정부는 가스산업에 가즈프롬, 석유산업에 로스네프트를 중심으로 국유 에너지 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자원 및 에너지 산업에 대한 국가의 소유통제 강화는 자원 지대에 대한 직접 통제 강화와 함께 세계적 에너지 메이저에 대항하는 러시아 통합 에너지 기업을 육성한다는 목적 하에 추진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정부는 산업을 세 개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각각 차별화된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첫째 ‘우선섹터’(priority sectors)로서 에너지 및 자원 산업이 이에 해당하며 재국유화를 포함 국가의 직접적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둘째 그룹은 ‘전략산업’으로서 자동차, 조선, 항공우주 등 산업 다각화의 핵심 방향을 구성하며 국가는 전략적 발전방향을 제시할 뿐 국가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선진 기술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과의 협력도 추진되고 있다.
이 이외의 부분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시장경제의 정상적 발전을 위한 제도적 인프라의 구축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정책의 추진은 일본이나 한국의 고도성장기 산업정책과 상당히 비슷하다.
‘러시아 주식회사’, ‘소련의 부활’, ‘국가자본주의’ 등 러시아 자본주의에 붙는 다양한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소비에트 러시아 자본주의는 세계시장과 시장경제의 틀 속에 정착한 경제체제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자원 및 에너지와 같은 우선섹터와 첨단기술 발전을 지향한 전략산업에서 국가의 직간접적 역할 강화로 산업구조를 고도화, 다각화한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식 자본주의의 성장은 지속가능한가? 국제 경제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미국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가 2008년도 예상 성장률을 하향조정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7.6%로 유지하던 금년 예상 성장률을 8%로 상향조정할 정도로 세계 금융질서의 혼란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산업 다각화 정책의 효과가 가시화되는 여러 가지 징후들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경제 성장이 내수에 의해, 특히 기계제작 산업 등 세계 성장의 둔화에 덜 민감한 부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산업생산 증가에서도 제조업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더욱이 금융시장의 미발달은 역설적으로 미국발 금융위기에 덜 노출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의 중장기적 성장 전망은 매우 높다.
최근의 정치적 안정에 따른 발전전략과 정책의 연속성 보장도 이런 낙관적 전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가속화이다.
금년도 인플레이션율은 10% 중반대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루블화의 추가 절상을 예상한 단기 자본의 과다 유입과 국내 부동산 시장의 투기화 등 거시적 안정성이 흔들릴 위험도 있다.
단기적으로 이러한 불안정화 요인들을 제어해 나가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산업다각화를 통해 과도한 자원 및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데 러시아 정부가 성공하느냐가 새로운 러시아 자본주의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또한 그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 질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과거의 정치 군사 대국의 회복을 꿈꾸는 러시아의 야심과 자원 및 에너지 산업의 통제를 포함한 자원민족주의의 색채를 띤 대외정책을 볼 때 러시아 자본주의의 등장은 21세기 형성에 다시 한 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김계환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 연구위원 kevinmosc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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