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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외교라인 대미편향 '족쇄'
[커버]외교라인 대미편향 '족쇄'
  • 박득진
  • 승인 2008.08.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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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역 전문가 전무 … 대통령은 과도한 입김 “선수 교체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 참여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문제는 사람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송 전 장관은 “외교안보정책을 축구로 보자면 상대방은 운동장 전체를 쓰는데 우리는 운동장의 반밖에 쓰지 못하는 족쇄에 묶여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선수들이 정책의 운동장을 넓게 다 써서 경기를 잘 하도록 만들어주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외교는 몇 달 만에 ‘편협’해졌다.
‘감독’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선수들’ 역시 문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7월30일 “이명박 정권의 외교력은 무능함을 넘어 건국 이래 최악”이라고 지적하고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라인의 일괄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당과 야당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현 정부의 외교·경제라인을 보는 언론·국민들의 시선은 그만큼 곱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경질론에 대해 반대(24.8%)한다는 의견보다 찬성(51.3%)한다는 의견이 두 배 이상 높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소폭 개각에서 총리와 경제팀을 그대로 유지시켰고, 이번 외교라인 문책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휴가를 마치고 청와대로 복귀한 이 대통령은 “일희일비해서 조금 잘못하면 너무 자책하고 우리끼리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웃지 않겠냐”며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최근 외교문제를 바라볼 때 ‘조금 잘못’이라고 하기엔 사안이 클 뿐더러, 한국 외교는 이미 ‘일본에게 창피할 것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빵점짜리’로 불리는 쇠고기 협상, 한국 외교의 대망신인 아세안지역포럼(ARF) 의장성명,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겨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조금 잘못’이라고 말한다면 문책을 할 만큼 큰 잘못은 어느 정도일지 의문이다.
‘감독’이 문제라는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의 지적이 왜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념지향 편협한 코드인사"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인선은 ‘한·미동맹 강화’라는 틀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올해 초 정부 출범 당시의 중론이었다.
‘한·미동맹 강화와 비핵·개방 3000구상이라는 대선 당시의 공약은 그대로 유지됐다.
유명환 장관은 한·미관계를 외교의 축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외교부내 대표적인 미국통이었고, 통일부의 업무가 축소되면서 외교부의 권한은 막강해졌다.
또한 도덕성을 검증받아야 하는 인사청문회를 거치기 위해 관료 출신이 상당 부분 많이 낙점됐다는 후문도 있었다.
시작부터 ‘한·미동맹 강화’라는 선을 그어 둔 외교라인은 ‘이념 지향적인 편협한 코드 인사’였고 한계가 명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북·중·러 3국과 소원한 관계 속에서 시작했다.
‘조정자’ 역할을 자처하고 일정정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았던 참여정부와 비교된다.
‘감독’만 잘못일까? ‘선수’들을 보자. 최근 열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참석자 6인을 보면 5개월 동안 이 라인이 공고하게 유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명환 외교부장관, 김하중 통일부장관, 김성환 외교수석, 조중표 총리실장은 외교부 출신이다.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군 출신, 김성호 국정원장은 검찰 출신이다.
대한민국의 외교·안보를 결정하는 회의에 미국통 전문외교관들과 군·검 출신만이 포진되어 있다.
북한도 중국 러시아도, 일본도 유럽도 없다.
오로지 ‘미국’만 있을 뿐이다.
대북정책이 있을 수 없고, 대외관계가 편협할 수밖에 없다.
축구 경기장에서 뛰는 11명 선수 전원을 ‘오른쪽 날개’만으로 포진시킨 것이다.
미드필더도, 스트라이커도, 스위퍼도, 골키퍼도 없다.
그렇다면 한 집안 식구인 이들 사이에 ‘조정’은 원활하게 될까. 그렇지 않다는 데 또다른 문제가 있다.
외교안보라인의 수장인 유명환 장관과 통일부의 김하중 장관은 외교부 입사 동기이다.
그런데 회의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김성한 외교안보수석은 두 장관의 후배다.
때문에 영(令)이 서질 않을뿐더러 회의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수장이 안보정책조정회의에 자주 빠지는 일도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지경이다.
또한 대통령의 과도한 ‘입김’이 그나마 있는 외교안보라인도 그 기능을 못하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권한을 위임하지 않는 직할통치적 리더십이 문제”라며 “대통령이 명확한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참모들의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하지도 않으니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보신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선수’들은 말한다.
‘라이트 윙은 잘 하고 있다, 문제없다’라고 말이다.
물론 라이트 윙은 문제없다.
그러나 그 넓은 운동장에 11명의 선수가 오른쪽 구석에 몰려 있으니 그쪽으로 공격해 가는 상대방은 아무도 없다.
단지 우리 선수들끼리 공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 우왕좌왕 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감독’에게 모든 책임은 돌아간다.
올해 외교·안보·통상관련 기사에서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단어는 바로 ‘우왕좌왕’이다.
박득진 기자 madgon@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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