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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구한말 서양인의 눈에 비친 선조들의 삶
[화제의 책]구한말 서양인의 눈에 비친 선조들의 삶
  • 김창기
  • 승인 2008.08.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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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서양인이 바라본 우리 선조들의 삶을 그린 이 책은 서울 중심의 지배층이 아닌 시골에서 제도와 인습의 멍에를 짊어진 채 하루하루 고되고 치열하게 살아가던 일반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저자는 1890년 중반부터 20여 년간 자전거로 조선 전역을 누비며 서민들과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생생한 시골 풍경을 그리고 있다.
고춧가루가 눈병에 좋다는 한의사의 말을 믿고 자신의 눈에 고춧가루를 넣었던 소녀, 지아비를 대신해 관아에 나가 채무불이행에 대한 재판을 받으려던 아낙네,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 싸움을 벌이는 듯하던 상인의 가격흥정 모습, 엄청난 흥분을 불러 일으켜 마치 서양의 미식축구를 연상케 하던 돌 싸움 등 상상하기 조차 힘든 낯선 풍경들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조선은 시골 마을들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저자의 시각에 따라 조선의 시골 사람들과 그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말에 관한 이방인의 글이 중앙정치나 지배문화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 책 저자의 관찰 대상은 대지 위에 발을 붙인 채 힘겨운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이다.
이 책 초반에 중앙정치를 다룬 이야기를 짧게 소개하고는 있지만 이 또한 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빠르게 돕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우리 선조들의 삶은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저자의 눈에 비친 구한말 조선 서민들의 모습에는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도 제법 있다.
산 옆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흰옷의 백성들, 평평한 돌판 위에 세탁물을 놓고 얼룩없이 하얗게 될 때까지 방망이로 두들겨대는 아낙네들, 등에 업은 아기 고개가 크게 흔들리는 것도 모른 채 동전 던지기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는 소녀들, 개천을 따라 길게 늘어선 집들에서 매일같이 흘러드는 오물로 악취를 풍기는 개천가, 김치를 비롯한 고추장, 무절임 등 온갖 반찬들로 풍성하게 채워진 밥상 등은 불과 얼마 전까지 시골마을에서 볼 수 있었던 낯익은 풍경들이다.
반면 소나 돼지처럼 사고 팔리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종들,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외출을 해야만 했던 부인들, 소년들만으로 채워진 배움의 전당 서당, 자기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도살장에 끌려 나오는 양’처럼 혼인식을 올리던 하얀 가면의 신부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물건을 지게에 짊어지고 장이 서는 ‘장마을’을 찾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장사치들, 장승 앞에 모여 기원을 드리던 남녀노소들의 곱게 모아진 두 손, 권위와 허례허식에 둘러싸인 지체 높은 양반들은 저자에게나 우리들에게도 낯선 풍경이다.
김창기 기자 kc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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