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6:14 (화)
[북리뷰]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북리뷰]한국인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 김창기
  • 승인 2008.08.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를 가정하고 상상해보자. 만약에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아니 세종대왕이 ‘여인네들과 오랑캐의 글-언문’이라는 반론에 부딪혀 한글창제를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떨까.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국민의 찬성이 100%에 육박하게 될까. 중국어는 배우기가 너무나 쉬워, 중국어 열풍은 아예 불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유교적인 조선과 대한민국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요동회복을 했더라면 중국의 동북아공정은 아예 기획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아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나당동맹이 없었더라면 고조선의 영광이 지금까지도 재현돼, 현재의 분단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로 정해졌을까. 만약에 일본보다 먼저 우리가 개방의 문을 열었다면 일제 강점기와 분단시대가 도래나 했을까 등등. 이 책에서 ‘한국사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108가지’를 정한 105인의 역사학자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운명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가르는 ‘결정적 선택’이 있다고 한다.
한국사에서 최초의 역사적 결정은 기원전 194년 ‘위만의 쿠데타’였다.
그리고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 1876년 강화도조약, 1961년 박정희의 5.16 쿠데타 등 역사의 고비마다 역사를 결정한 순간들이었다.
장삼이사의 민초 한 명이 압록강을 건너다 위화도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랑, 혹은 어느 필부가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창을 거꾸로 드는 것이나,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새벽에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는 관점이 이 책의 첫 번째 앵글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로마의 한 어부가 루비콘 강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건너는 것은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관점인 것이다.
한편 반만년 민족사라고 하지만 기원전에 이뤄진 중요한 역사적 결정은 위만의 쿠데타 하나뿐이다.
그만큼 한국사를 연구할 때 사료 부족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시사해준다.
때문에 105인의 선정자들은 역사적 검증이 사료를 통해 나름대로 진행될 수 있는 신화시대 이후의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이 책은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의 가치를 결코 무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00년 대에 이뤄진 역사적 결정은 모두 네 가지다.
남북정상회담(2000)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수도이전 무산, 부계성 강제조항 폐지)가 헌법재판소와 연관된 결정들이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근거가 ‘관습법’이었던 만큼, 21세기 한국사라고 하는 역사의 강에서 ‘헌법재판소’라는 배에 탄 대한민국 사람들의 미래와 운명이 헌법재판소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다는 해석, 그리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게 중요한 숙제라는 통찰은 ‘모든 역사가 현재사’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이것은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08가지 결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해석에 이의를 갖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것을 존중한다.
때문에 사료의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해당결정을 내리는 주체와 반대세력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김창기 기자 kcg@economy21.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