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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공기업 민영화 청사진이 없다
[커버]공기업 민영화 청사진이 없다
  • 박득진
  • 승인 2008.08.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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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일정 제시 못하고 숫자놀음에만 몰두 7% 성장을 위한 고환율,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 독도 문제에 이어 정부가 네 번째 칼을 빼 들었다.
이번엔 ‘공기업 민영화’다.
기획재정부는 11일 319개 공기업 중 41개사에 대한 1차 선진화방안을 발표했다.
통폐합(2개), 민영화(27개), 기능조정(12개) 등이 주요 골자다.
출범 초 정부는 50~60곳의 공기업을 민영화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야 말로 ‘민영화 열풍’이었다.
그중에는 에너지, 상수도 등 필수 공공서비스 기업까지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공기업 1차 선진화 방안이 나왔다.
정부는 ‘민영화’하는 공기업의 ‘개수’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표에서 민영화로 결정된 공기업은 모두 27개사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상당한 과장이 보인다.
27곳 가운데 14곳은 원래 민간기업이다.
특수한 상황에서 공적자금투입으로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던 기업을 원상태로 복귀시켜 놓는 것일 뿐이다.
다만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기업들을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경기 악화기에 타이밍을 맞춰서 내놓아야 하냐는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민영화 대상은 5곳뿐 13개 공기업 중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들은 지난 6월 이미 금융위원회가 민영화 방침을 밝혔던 것을 다시 한 번 재탕한 것이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49%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어서 엄밀히 말하면 ‘민영화’는 아니다.
결국 정부의 이번 공기업 1차 선진화방안에서 새롭게 등장한 민영화 대상은 뉴서울CC, 한국자산신탁, 한국토지신탁, 건설관리공사, 경북관광개발공사 등 5곳뿐이다.
2, 3차 발표가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통폐합 기업 중심인 2차 선진화 대상 발표와, 논란이 남아 있는 공기업 중심인 3차에서 민영화 공기업 수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실제 5곳의 민영화 계획을 이렇게 부풀리기식으로 발표한 것을 보면 정부는 ‘민영화 개수’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0~60곳의 ‘의미 있는’ 민영화를 주장했던 만큼 정국 주도권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안은 규모와 내용, 방식 모든 면에서 ‘의미가 없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13일 아침. 한나라당 최고·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부실하다는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민주당 중진 의원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공기업 개혁은 세계적 추세이고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는데, 이번 발표는 기준도 내용도 없다고 했다”며 “오히려 야당에서 기준도, 내용도 없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왜 어떻게 일이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발표 후 이틀간,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정부의 발표 직후인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국회에서는 공기업 관련대책 특별위원회가 열렸다.
이 특위에서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공공부문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등 뿌리에 접근해야지 공기업 자회사만 매각하는 등 잔 가지만 치면 혁신이 되느냐”며 특위에 참석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질타했다.
야당 의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민영화 등의 ‘대상’만 정해졌을 뿐 구체적인 일정과 진행방안이 나와 있지 않다.
야당 의원들은 물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이에 강만수 장관은 “이 정부 내에서 반드시 추진하겠다.
설득할 건 설득하겠다”는 동문서답을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그렇게 원론적인 답변을 하니 질문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며 할 말을 잊었다.
“내용부실” 여야 모두 질타 결국 특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문제였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전광우 금융위원장에게 기업은행의 민영화 결정 배경에 대해 물었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업은행 대출 비율이 81.6%에 달하는데, 민영화가 되면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또한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기업은행 매각자금을 세입으로 잡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박 의원은 “산업은행을 팔아 KDF를 만들고 이 KDF가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정작 현재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팔아서 세입으로 잡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진화방안 대상 공기업에 대해 강만수 장관은 11일 오전 “1차 대상은 33개 기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나라당과의 협의가 끝난 오후에는 8개사가 늘어 41개사로 확정됐다.
몇 시간 만에 정부정책이 오락가락 한 셈이다.
정부안에 누락됐던 인천공항공사가 포함됐으며, 이미 발표된 산업은행이 추가됐다.
민영화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또 11일 대한민국 정책포털에 ‘공기업 선진화, 오해와 진실’이라는 글을 통해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방식으로 우리사주와 국민주를 참여시키고, 외국인 소유집중을 막기 위해 적대적 M&A 방어기법인 ‘포이즌 필’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내용이 보도되면서 “△이런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기업을 누가 살 것인가 △매각 협상 전략을, 협상도 하기 전에 제시하는 것은 기본도 모르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후 ‘공기업 선진화, 오해와 진실’은 내용이 수정됐다.
‘포이즌 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내용도 삭제됐고, 고용안정 문제에 대한 내용도 공기업 구조조정을 하면 민간경제가 활성화되고, 자연히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주장으로 바뀌었다.
결국 정부 스스로도 ‘오해’하고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오해와 진실’에 따르면 우리사주와 일반공모를 통해 해당 공기업 근로자와 일반 국민이 민영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공기업 별로 다른 매각 방식이 적용되겠지만 국민주 방식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포스코의 민영화 때 쓰인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해당 공기업을 살 주체들에게는 매력이 떨어진다.
소유한도를 정해 매각하는 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지분을 49% 한도 내에서 매각하기로 했는데, 지분 제한을 받는 방식 역시 제 값을 받고 매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제 값을 받지 못하고 공기업을 매각하는 것은 지난 정부들의 ‘실패’로 남아있다.
한국은 박정희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정부를 거치며 크게 다섯 차례의 민영화를 진행해 왔는데 모두 우량의 공기업들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제값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경제력 집중의 후유증도 남겼기 때문이다.
배국환 기획재정부 차관 역시 “5차 민영화 당시 상황이 너무 급하기는 했지만 일부 공기업을 너무 싸게 팔았다는 지적이 정부 내에서도 지적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도 두 가지의 커다란 문제가 남는다.
바로 ‘고용승계’ 문제와 소비자의 ‘비용’문제다.
정부의 보고서 역시 공기업 매각 조건에 일정 부분 고용승계 조건을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 역시 매수자 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오해와 진실’에는 서민생활과 직결되는 공기업에는 민영화 이후에도 가격을 규제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매수자는 구조조정을 할 수도, 상품의 가격을 결정할 수도 없는 기업을 사는 셈이 된다.
국민, 전기 수도 가스 민영화 반대 민영화와 통폐합을 포함한 공기업 구조조정은 많은 정부가 출범 초기 내걸었던 공약이다.
국민들의 공기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자체 특성상 공기업은 ‘방만과 비효율, 중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이미지는 지표로도 수치화되어 나타난다.
35개 대형 공공기관에 대한 조세연구원의 조사 결과 2002~2007년 공기업 1인당 부가가치는 연평균 1.8% 상승한 반면, 인건비는 연평균 6.6%가 증가했다.
국민들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전기 가스 수도 등 생활과 직결되는 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민영화=요금상승’이라는 인식 때문에 서민가계에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양재 원광대 교수는 한 언론에 기고를 통해 공기업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국민이 기대하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은 1차적으로 각 소관 부처에서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미흡하지 않았는지, 과거 정부가 공기업의 자금과 인력자원을 이용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기업 경영의 문제점을 유발시키지는 않았는지 등을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닌 객관적 시각에서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공기업은 사기업과 달리 사회적 공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공기업의 기업 목표는 민간기업의 이윤 극대화와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특히 공기업 개혁 대상의 양적 규모만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다한 공기업과 우량공기업간을 무리하계 통폐합하는 정책적 우를 범할 경우, 그 모든 폐해는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득진 기자 madgon@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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