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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디지털 영화 편집자 함성원씨
[나는프로] 디지털 영화 편집자 함성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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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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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영화 편집의 길을 열며
97년쯤부터 영화의 엔딩장면 크레딧에 낯선 문구가 뜨기 시작했다.
‘편집 아무개’ 대신에 ‘아비드 편집 아무개’라는 크레딧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거의 모든 영화 자막에 ‘아비드 편집’이 박혀 있다.
영화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일찌감치 이 변화를 눈치챘을 것이다.


디지털 편집이 자막을 평정한다 ‘아비드 편집’은 영화판에 불어닥친 ‘디지털’ 바람이다.
아비드는 원래 컴퓨터 영화 편집기를 만드는 미국 회사 이름이다.
하지만 디지털 영화 편집이 대개 이 회사 제품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보통명사처럼 굳어져버린 것이다.
영화 편집실 ‘프레임 웍스’를 운영하는 함성원(32)씨는 97년부터 영화판에 디지털 편집을 확산시킨 일등공신으로 손꼽힌다.
원래 영화 편집은 필름을 손으로 일일이 자르고 붙이는 수공업 과정이다.
짜임새 있는 구성을 만들기 위해 필름을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는 과정을 몇번이나 반복해야 한다.
번거로운 건 둘째치고, 마지막엔 필름이 너덜너덜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디지털 편집기를 사용하면 이런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진다.
촬영 현장에서 필름을 보내오면 먼저 ‘베타테이프’라고 부르는 비디오 테이프로 전환시킨다.
이 베타테이프를 컴퓨터에 그대로 입력하는 것이다.
입력이 끝나면 자유자재로 편집이 가능해진다.
애초 시나리오와 콘티 순서에 맞춰 A버전이라는 원형본을 만들고, 이것을 다양한 각도와 리듬감을 살려 재구성한 서너가지 버전을 더 만든다.
마치 문서편집기의 오려두기와 붙이기 기능을 이용해 순서만 바뀐 수많은 문서를 만들 수 있는 것과 똑같은 이치인 셈이다.
영화는 편집자의 손을 떠나 일단 극장에 걸리면 더이상 ‘손질’이 불가능하다.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전에 완벽한 작품성과 상품성을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디지털 편집기를 사용하면 편집이 쉽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늘어난다.
디지털 편집이 확산된 데는 이런 점에 매혹된 제작자와 감독, 연출진 요구도 컸다.
하지만 디지털 편집이라고 시간이 덜 걸리는 것은 아니다.
갖가지 가능성을 타진하다 보면 과거 아날로그 방식으로 편집을 하던 때와 시간은 엇비슷하게 걸린다.
일단 영화편집이 시작되면 대개 선임과 후배기사, 그리고 조수를 합쳐 3명의 편집자가 공동작업을 한다.
“3주 정도는 집에 가서 ‘문고리만 잡았다’ 사무실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감독, 연출진과 끊임없이 토론하며 조정과정도 거쳐야 하죠. 영화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견뎌내기 힘듭니다.
” 함씨가 영화편집을 시작한 것은 91년 <하얀전쟁>이 처음이었다.
애초엔 연출을 하고 싶었지만 생활이 힘에 부쳤다.
영화판에서 이일 저일을 하다 그나마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영화 편집실에 들어간 것이다.
96년 소속 편집실을 나온 그는 때마침 선배가 미국에서 처음 들여온 아비드 편집기를 접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6개월 동안 독학을 거듭하며 ‘기계’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아비드 편집 첫 작품이 <모텔 선인장>이었다.
그 뒤로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 <강원도의 힘>, <여고괴담>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에서 디지털 편집의 마술을 선보였다.
좋은 작품이면 밤을 새워도 즐겁다.
그는 <강원도의 힘>을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기억한다.
편집과정에서 감독과 호흡도 맞았고 “어떻게 내 이야기와 똑같을까”하는 몰입감도 느꼈다.
하지만 영화 편집이 그리 넉넉한 수입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영화 한편에 2300만∼2500만원 안팎의 편집료를 받는다.
대개 1년에 5편 안팎의 영화를 수주하므로 세명이 월급으로 나눠갖고 사무실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하다.
최초의 관객이 되어 현재 국내엔 10여개의 영화 편집실이 있다.
한 편집실에 3명의 편집기사가 활동하므로 넉넉잡아 영화편집자는 30명 안팎이다.
그만큼 영화 편집에 입문하는 건 ‘좁은 문’이다.
게다가 영화판 경험이 없으면 아무리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도 잘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폐쇄적이다.
하지만 함씨는 실망은 이르다고 말한다.
광고와 뮤직비디오, 인터넷 영화 등이 증가하면서 영상 편집 인력 수요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즐겨찾는 사이트 www.digitalproducer.com 새로운 영상장비만 소개해주는 잡지 www.americancinematographer.com 영화촬영 전문 잡지. 촬영현장 리포트 등 현장 작업 위주의 기사가 좋다.
www.wwug.com 유저 그룹. 모든 영상 장비 및 디지털 편집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질의 응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편집 첫걸음은 타인에 대한 이해”
디지털 편집 기술은 6개월에서 1년이면 기본적인 습득이 가능하다고 함씨는 말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함씨가 영화 편집의 제일 덕목으로 꼽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영화라는 게 어차피 온갖 종류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편집에서 중요한 시나리오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와 사실감을 살려내기 위해선 박학다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편집자는 영화 생산 공정의 마지막 관문이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좀더 냉철하게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합리성과 객관적 자세도 중요하다.
디지털 영화 편집을 배우는 제일좋은 방법은 영화 편집실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몸으로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빈자리가 생기기 전에는 들어가는 게 만만치 않다.
그 다음에는 각 대학교에 있는 연극영화 관련학과나 국립영상원이 좋다.
컴퓨터그래픽 학원에서도 간단한 영상편집 교육과정이 있지만 실무에 직접 뛰어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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