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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개미'에 발목잡힌 삼성 인터넷 사업
[포커스] '개미'에 발목잡힌 삼성 인터넷 사업
  • 박종생
  • 승인 2000.06.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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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아이젠 설립안 주주들 반대로 좌절...이재용씨 지분확대 의도 의혹도 한몫
삼성물산이 야심적으로 추진한 인터넷 자회사 설립안이 ‘개미’들에게 발목이 잡혀 무산됐다.
삼성물산은 자회사 ‘삼성아이젠’을 설립해 인터넷 관련 사업을 모두 이관한 뒤, 나스닥에 상장하려고 했으나, 6월8일 열린 임시주총에서 부결됨으로써 자회사 설립안 자체가 일단 물건너갔다.
5% 주주가 매수청구권 행사 통보 임시주총은 싱겁게 끝났다.
전체 주주의 23.86%만 참석해 의결에 필요한 3분의1(33.3%)도 채우지 못했다.
이런 결과는 주총 전부터 예견됐다.
약 65%의 주주들이 의안에 반대하며 매수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이미 통보를 해온 상태여서, 이 안을 강행하려면 삼성물산으로서는 막대한 매수청구금액(약 1조3천억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의 삼성아이젠 설립안은 안 자체로만 보면 그럴싸해 보였다.
설립안에 따르면 삼성아이젠은 삼성물산 안에 있는 인터넷쇼핑몰, 방송, 전자화폐, 사이버빌리지 등 B2C 사업뿐만 아니라 케어캠프, 캠크로스, 파인드코리아, 매트프라자 등 B2B사업, 그리고 벤처투자(골든케이트), 데이터센터 운영, 물류 등 인터넷 인프라 사업들을 모두 넘겨받기로 돼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삼성물산에서 인터넷 관련 사업부들이 개별적으로 분사하면 자본금도 적고 브랜드가 약해서 성장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며 “인터넷 자회사를 만들어 개별 사업들을 모두 포괄하면 효과적으로 사업을 벌일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자회사 설립으로 삼성물산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아이젠의 주식을 100% 갖고 있기 때문에 삼성아이젠이 성장하면 삼성물산의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는 논리를 댔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 외려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인터넷 사업이 떨어져나간 삼성물산에는 이른바 ‘굴뚝사업’만 남기 때문에 미래 성장가능성이 낮아져 결국 주가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해부터 삼성물산 주가는 인터넷 사업이 크게 좌우했는데 이 부분이 떨어져나가면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한다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실제로 삼성물산 주가는 99년 3월 6천원대에 머물러 있었으나, 아마존과의 제휴 등 인터넷 사업에 주력하면서 99년 6월에는 2만8300원까지 올랐다.
외국인들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집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올 들어서도 2만원대까지 가던 삼성물산 주가는 인터넷 자회사 설립안이 나오면서 다시 6150원까지 떨어졌다.
삼성물산이 인터넷 사업에 주력한다는 것을 믿고 투자했던 주주들이 이런 결정에 반발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상황이다.
삼성물산이 삼성아이젠의 주식을 대부분 갖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삼성물산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반인들은 생각이 달랐다.
SK상사가 SK텔레콤의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가치가 크게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일반인들은 두 회사를 분리해서 보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삼성아이젠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씨와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주주들을 차갑게 했다.
삼성물산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이 지주회사가 돼 인터넷 사업들을 분사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올 4월25일 이사회에서 이런 계획이 갑자기 삼성아이젠 설립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재용씨 지분 확보전략의 좌절(?) 이재용씨는 현재 삼성그룹 내 인터넷 사업부문을 뒤에서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인터넷 사업이 삼성물산, SDS, 유니텔, 에스원 등 계열사별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재용씨가 조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나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에서도 인터넷 사업이 가장 앞서 있는 계열사인데, 이건희 회장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이 적은 관계로 마음대로 좌우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이재용씨가 지배주주로 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터넷 사업만 별도의 자회사로 독립시킨 뒤 증자 과정에서 지분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개미들의 반발로 자회사 설립이 무산된 삼성물산은 애초 계획대로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해서 다양한 인터넷 사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명관 부회장도 이날 “인터넷 사업부문을 사내에 그대로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파문은 재벌이 주주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경영을 했던 시대가 점점 가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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