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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트렌드] 남북경협 ‘윈윈’이 어려운 이유
[경제트렌드] 남북경협 ‘윈윈’이 어려운 이유
  • 이용인
  • 승인 2001.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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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6월15일,평양거리는한복을곱게차려입은북한여인네들의물결로넘쳐났다.
사건을차분하게바라보는데익숙해있는언론매체종사자들도남북정상회담이열리는데대해흥분을감추지못했다.
당시남북한사람들이동시에느꼈던흥분감이혈연에서유래한것인지는몰라도,그런점을굳이입에올리는것조차불경스럽게여겨지던순간이었다.
정치·경제·사회,거의모든분야에서기대감이충만했다.


그리고1년이흘렀다.
지금여기저기서남북정상회담의성과에대한평가작업이한창이다.
하지만그동안트이는가싶었던물꼬에는다시토석이쌓이기시작한다.
올해상반기중으로예정됐던2차남북정상회담은차일피일미뤄지고있다.
장관급회담도지난3월다섯번째를마지막으로더는열리지않고있다.
적십자회담도기대만큼순탄치가않다.


경제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남북교류의 흐름을 이끌던 금강산 관광사업은 아직도 지리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숨통이 좀 트였는가 하면, 이내 새로운 복병이 나타나 또다시 제자리걸음이다.
북한과의 협상이란 게 대개 시간을 끌기 마련이지만, 남북간 화해와 경제협력의 상징성을 지닌 금강산 관광사업의 교착상태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남북경협이란 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워낙 체제가 다른 상태에서 거래의 기본인 ‘윈윈 모델’을 찾는 게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남한 기업 처지에서는 아무 감정도 없는 빗자루와 씨름하는 기분일 테고, 북한 처지에서는 베니스의 상인을 상대하는 느낌일 것이다.
그럼에도 남북경협의 역사가 짧게 잡아 10여년을 넘어섰는 데도, 아직 성공모델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어느 구석인가가 꼬여 있다는 증거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대표적인 남북간 윈윈 모델이었다.
현대는 1998년부터 30년간 금강산 지역에 대한 독점적 관광사업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쪽에 6년 동안 9억4200만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현대 금강산 사업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면서 지난 3월부터는 한푼의 대가도 주지 못하고 있다.
남북 최초의 합영사업으로 관심을 모았던 대우의 남포공장은 99년 2월 이후 가동이 중단된 상태다.
평양에 있는 삼성전자의 전화기 공장 등도 수지균형을 맞추기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자적 채널을 통해 활발히 대북 진출을 꾀했던 대기업들의 사업이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공모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위탁가공쪽에선 수익을 내는 업체도 몇몇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대북 사업에 공을 들여온 엘칸토는 올해부터 수지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작은 규모로 북한에 위탁가공을 하고 있는 섬유업체들도 채산성을 맞추는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모델들은 매월 50~200달러 안팎으로 낮은 북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일부에선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숱한 업체들이 대북 사업을 하겠다며 뛰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이후 대북경협은 업계에선 흥행의 보증수표처럼 통했다.
하지만 대개는 ‘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발을 빼고 있다.
정말 ‘사기꾼’인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북경협 사업자들이 사기꾼이라는 말을 듣도록 한 것은 허약한 제도들이었다.
예컨대 남포항의 물류비는 국제시세보다 3배 가량 비싸다.
게다가 크레인이 부족하고, 잦은 단전으로 선적이나 하역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는 이런 문제는 업체들이 그대로 부담해왔다.
이런 문제들을 제도로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남북한 당국 사이에 거의 없었다.
때문에 남북경협은 남한 경제에 새로운 활로가 된다기보다는, 남한 경제에 여유가 있을 때 활성화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97년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남북 교역이 급감한 것이나,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대우와 현대의 대북사업 상황이 이를 잘 말해준다.
경제협력의 성격보다는 정치의 종속변수로 움직이는 성격이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짧지 않은 남북경협의 역사를 볼 때 이제는 남북 당국자 모두 경제의 상대적 독자성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벤트적 남북경협은 결국엔 서로의 신뢰기반을 갉아먹고 양쪽 모두 득이 될 게 없다.
남북경협의 진정한 성공모델은 제도적 장치를 통한 기반을 확고히 마련해나갈 때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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