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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이머신즈, 7전8기 안간힘
[비지니스] 이머신즈, 7전8기 안간힘
  • 이정환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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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닥 퇴출 이어 매각 소문까지 무성… 현금·영업기반 탄탄해 한가닥 희망
이머신즈가 결국 나스닥에서 쫓겨났다.
지난 1월 이머신즈는 나스닥으로부터 90일 안에 주가를 1달러 위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쫓아내겠다는 마지막 경고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75센트 언저리에서 왔다갔다하던 주가가 3월 들어 50센트 밑으로 더 떨어졌다.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주가를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머신즈는 부랴부랴 항소심의를 신청했으나 기각됐고, 지난 5월21일 보따리를 싸서 장외시장으로 옮겨갔다.


이에 앞서 은 일찌감치 지난해 10월 이머신즈가 나스닥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몰락의 징후는 그때부터 분명했다.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났고 주가는 추락을 거듭해 1달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컴퓨터 담당 애널리스트들도 이머신즈의 사업모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머신즈는 이같은 가능성을 완강히 부인했고, 실적이 크게 나아지고 있으니 염려할 바가 없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이머신즈는 지난해 6억8500만달러 매출에 2억21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초라한 실적을 반영하듯 주가는 뾰족한 대책 없이 마냥 떨어지기만 했다.
나스닥 생활 1년2개월의 뒤끝은 그렇게 초라했다.


장외시장으로 내려간 이머신즈의 주가는 6월8일 25센트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 3월 10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일년 남짓한 동안 무려 97.5%나 빠진 것이다.
주식은 거의 휴짓조각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됐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멀어져 전체 1억4천만주 가운데 하루 거래량은 50만주에도 못미친다.
1분기 매출액 4분기의 45% 수준 이머신즈의 몰락에 가장 놀란 쪽은 아마 이머신즈의 대주주면서 이머신즈에 PC를 공급하고 있는 삼보컴퓨터일 것이다.
이머신즈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보컴퓨터 수출물량의 31.35%를 팔아줬다.
지난해 2분기를 고점으로 판매량은 꾸준히 줄어들었고 4분기에 반짝 살아나는 듯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크게 줄어들었다.
지난 1분기 이머신즈 매출액은 지난해 4분기의 3억700만달러보다 55% 줄어든 1억3600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삼보컴퓨터와 이머신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동운명체로 묶여 있다.
삼보컴퓨터는 지난해 매출이 80% 늘어났으나 영업이익과 경상이익은 각각 39%와 73% 줄어들었다.
그러나 삼보컴퓨터는 사실 이머신즈쪽에서 손해본 게 그리 크지 않다.
이머신즈쪽에서 보면 이익배분 구조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보컴퓨터는 이머신즈쪽 매출에서 7% 가량 이익으로 남겨왔지만 판매를 맡은 이머신즈는 엄청난 적자를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이런 사업구조를 그대로 끌고나간다면 앞으로도 이머신즈는 한동안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삼보컴퓨터 PC를 가져다 싸게 파는 방법만으로는 도무지 타산을 맞추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이머신즈의 가격경쟁력은 이미 옛말이 됐다.
대형 PC 업체들까지 너나없이 PC 가격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돈을 얹어주면 훨씬 품질 좋고 세련된 델 PC를 살 수 있는데 굳이 이머신즈 PC를 고를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가뜩이나 이머신즈는 ‘싸구려 PC’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이머신즈로서는 그나마 쥐고 있는 시장을 내주지 않으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가격을 더 낮춰야 할 판이다.
팔면 팔수록 손해본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마케팅 담당 송영길 부사장은 이머신즈의 미국 진출 2년을 섣불리 평가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나스닥에서 쫓겨났을 뿐 영업기반은 그대로 살아 있다.
새로운 윈도우 운영체제가 나오는 하반기에 들어서면 매출도 다시 늘어날 것이다.
아직 시작단계를 밟고 있을 뿐이다.
” 무엇보다 구조조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거듭나려는 이머신즈의 몸부림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머신즈는 지난 3월 베스트바이의 컴퓨터유통부문 부사장인 웨인 이노우에를 연봉 300만달러에 400만달러어치 스톡옵션을 얹어주면서 CEO로 데려왔다.
이노우에는 먼저 부실 사업부문을 대거 정리했다.
132명의 직원 가운데 21명을 해고하고 돈 안 되는 인터넷 사업부문을 크게 줄였다.
샌프란시스코와 스코츠밸리, 뉴욕에 있는 판매사무소도 문을 닫았다.
이것만으로도 280만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노우에는 영업부문에 모든 사업역량을 집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인터넷으로 광고를 보면 컴퓨터 가격을 깎아주는 따위의 어설픈 사업모델은 모두 접기로 했다.
저가 PC에만 매달리지 않고 고가 PC쪽으로 조금씩 사업영역을 넓혀간다는 전략을 세웠다.
유럽과 중국, 중남미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나스닥에서 쫓겨나고 며칠 뒤 이머신즈는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퍼스트보스톤(CSFB)을 재정 자문회사로 고용하고 인수합병을 포함한 구조조정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이머신즈가 매각될 것이라는 소문이 한참 나돌았다.
매입자로 델과 레전드 등이 거론되기도 했고, 미국 증권가에서는 여러가지 루머가 떠돌았다.
삼보컴퓨터쪽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시장에서는 매각말고는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머신즈의 매각 시나리오 세가지 현대증권 채병덕 연구원은 이머신즈가 자생력이 없다고 단정짓는다.
“저가 PC로는 도저히 타산을 맞출 수 없다.
이대로라면 끌고나갈수록 손해만 늘어나게 된다.
” 교보증권 이창수 연구원은 매각될 것이 틀림없다는 가정 아래 이머신즈의 진로를 세가지로 전망하고 있다.
첫째 컴팩이나 휴렛팩커드 등 대형 PC 제조업체에 팔릴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이머신즈의 판매망을 탐내는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삼보컴퓨터는 미국쪽 판매망을 송두리째 잃게 된다.
두번째는 중소형 PC 제조업체에 팔릴 가능성이다.
역시 가능성도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모두 크지 않다.
세번째는 투자은행에 팔릴 가능성이다.
판매망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사업영역을 넓혀나갈 수 있다.
최근 마이크론일렉트로닉스가 PC 사업부문을 기술투자회사 고어스테크놀로지그룹에 매각한 것도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이 경우 삼보컴퓨터는 당분간 영업기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점차 입지가 좁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머신즈가 세가지 가운데 어떤 걸 고르든 삼보컴퓨터의 미국쪽 입지는 크게 좁아지게 된다.
이머신즈를 매각할 때 삼보컴퓨터가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머신즈를 잃으면 삼보컴퓨터로서는 미국 시장 전체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삼보컴퓨터는 매각보다는 끌고나가는 쪽을 선택하려고 할 것이다.
반면 이머신즈는 딴 길을 걸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화려한 신화를 몰고왔던 삼보컴퓨터와 이머신즈의 저가 PC 전략은 처음부터 많은 우려를 낳았다.
이들은 매출만 따라준다면 박리다매 전략으로 미국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겠지만 시장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갑자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같은 사업모델은 곳곳에서 벽에 부딪혔다.
물론 무너진 신화를 다시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아직은 나스닥 공모에서 조달한 1억8천만달러에 가까운 현금이 그대로 남아 있고 차입금도 없다.
전국 곳곳에 탄탄하게 뻗어 있는 영업 기반도 훌륭한 자산이다.
이제 이머신즈의 과제는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현실적인 수익구조를 내놓는 데 있다.
이머신즈는 이제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엄청난 현금과 영업 기반을 갖추고서도 정작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사업모델을 늦기 전에 바꾸어야 한다.
삼보컴퓨터의 미래도 상당 부분 그런 이머신즈의 새로운 구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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