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16:44 (수)
[바이오테크] 만성 골수성 백혈병 정복할까
[바이오테크] 만성 골수성 백혈병 정복할까
  • 허원(강원대 교수)
  • 승인 2001.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FDA 사상 최단기간 판매 허가, 임상시험 결과 효능 뛰어나 화제 지난 5월10일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허가한 ‘글리벡’이라는 새로운 항암제로 인해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다.
글리벡은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FDA에 의약품 판매허가를 신청한지 3개월도 채 안 돼 판매허가가 나왔다는 점에서, 최단 기간에 FDA 허가를 받은 의약품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글리벡을 개발한 드러커 박사는 연일 매스컴의 취재대상이 되고 있고, 암 정복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다.
노바티스는 이 의약품의 효과를 극적으로 부각시키고, 이를 자사의 기업홍보에 최대한 활용한다는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희귀의약품센터’에 환자 150명 분의 글리벡을 기증하기도 했다.
허가 직전의 의약품에 대한 인도적 사용 프로그램 차원에서 국내 수입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글리벡을 투여받은 두 명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가 치료 후 증상이 호전돼 퇴원하는 등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한국에서 글리벡은 회귀 의약품으로 지정됨으로써 곧 시판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암세포 억제방법 기존 항암제와 달라 글리벡이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임상시험 과정에서부터 놀라운 치료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페론으로 치료되지 않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해 90% 이상의 치료율을 올렸다는 임상 보고도 있다.
그러나 글리벡은 모든 암에 다 사용할 수 있는 항암제가 아니고,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만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다른 종류의 암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암을 치료하는 화학요법에 사용되는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를 선별적으로 죽이지만, 계속 분열하는 세포를 암세포로 간주해 작용하기 때문에 광범위한 종류의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
반면, 이런 기능은 정상 세포이지만 계속 분열하는 세포까지 공격하기 때문에 탈모를 일으키는 등 각종 부작용을 수반한다.
이와 달리 글리벡은 빨리 분열하는 세포를 암세포로 간주해 공격하는 기존의 항암제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는 새로운 항암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백혈구가 무한정 증식해 발생하는 암이다.
이렇게 무한정 분열하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억제할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 의약품으로 개발한 것이 글리벡이다.
따라서 글리벡은 항암제라기보다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하다.
백혈병은 몇 가지 종류로 분류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유전자 결함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람의 유전자는 46개 염색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상당수는 유전자 중 22번 염색체의 윗부분이 9번 염색체의 윗부분과 서로 교차되어 있는 염색체 이상을 보인다.
이렇게 22번 염색체와 9번 염색체의 일부가 서로 교차되어 바꿔진 것을 ‘필라델피아 염색체’라고 부르는데, 흔히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서 관찰된다.
최근 분자생물학 연구는 염색체 이상이 어디서 유래하는 지를 알아냈다.
사람의 몸에서 필요할 때 적절한 양의 단백질-타이로신 인산화 효소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항상 만들어지도록 하고, 이것이 백혈구를 지속적으로 증식시켜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노바티스의 연구원들은 이 단백질-타이로신 인산화 효소가 작용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화합물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기존의 ST-571이라는 화합물이 효소작용을 억제한다는 결론을 얻어내게 되어 글리벡이라는 이름의 항암제 개발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글리벡은 다른 종류의 암에는 효과가 없다.
암이라는 병증은 유사하지만 암의 종류에 따라서 암세포가 증식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이런 점과 관련된 세포 생물학적 메커니즘은 암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르다.
글리벡은 단백질-타이로신 인산화 효소의 비정상적 작용으로 발생하는 암에만 효과가 있다.
전립선암의 한 종류와 소세포 폐암의 경우도 이에 해당되기 때문에 글리벡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현재 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항암제 개발 메커니즘 제시해 글리벡이 효과가 있다고 증명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숫자는 세계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미국에서도 1년에 5천건 정도가 보고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글리벡이 노바티스의 사업수익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고, 이것 때문에 암 환자의 숫자가 급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글리벡은 암 정복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기존 항암제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는 효능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암세포 분열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잘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 치료제는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설이 실증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경우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라는 염색체 이상이 광학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혈구가 무한 분열하는 세포의 신호전달 과정을 밝혀낼 수 있는 실마리가 됐다.
하지만 다른 암은 이런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게놈 해독 프로젝트가 완성돼 각종 암의 발생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각각의 암에 대한 항암제가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글리벡 개발 40년 약사
현재 많은 제약회사들이 글리벡과 같은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세포의 신호전달 체계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항암제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 덕분에 앞으로 40년 뒤에는 암 정복이 가능하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글리벡과 같은 신약이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40년 전부터 시작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결과를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0년간의 노력을 요약한다.
● 1960년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 의사인 노웰과 헌팅턴이 만성 골수성 환자의 염색체에서 공통적으로 이상현상을 찾아내고 이에 필라델피아 염색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 1973년 시카고대학 의사 로리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를 관찰한 결과 9번과 22번 염색체가 서로 교차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1980년 9번 염색체와 22번 염색체 상의 bcl과 abl이라는 유전자가 서로 결합해 새로운 bcl-abl이라는 키메라 유전자를 형성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1987년 노벨상 수상자인 볼티모어 박사 연구팀이 bcr-abl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효소가 단백질-타이로신 인산화 효소이며 이것이 백혈구의 무한 분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1993년 글리벡을 개발한 드러커 박사가 시바가이기라는 회사와 협력해 단백질-타이로신 인산화 효소를 저해하는 물질로부터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다(시바가이기는 98년에 노바티스사에 합병됐다.
) ● 1998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의 ST-571가 제1기 임상 시험에 들어갔다.
● 2001년 글리벡이 FDA로부터 치료제 허가를 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