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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유전자 비밀의 '황금알' 부화
[포커스] 유전자 비밀의 '황금알' 부화
  • 이근영(한겨레기자)
  • 승인 2000.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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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프로젝트 유전지도 초안 발표…세계 바이오업계 초미 관심사로 떠올라
지난 5월 중순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생명공학 관련 연차회의에서 과학자들이 한판 도박을 벌였다.
과학자들의 도박은 인간 유전자 숫자 맞히기였다.
모두 228명이 참가해 2만7462개에 베팅을 한 과학자부터 20만개까지 올려 베팅한 과학자까지 나왔다.
6만2598개에서 평균치를 이뤘다.
과연 인간 유전자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정답은 2003년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003년께 지도 완성 예고 지금 세계 생명공학계가 부산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HGP)의 인간 유전자 지도 초안(working draft)이 마침내 발표되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현재 90%까지 완성됐다.
사람의 염기서열 31억개 가운데 28억개를 담은 수준이다.
신뢰도는 99.9%. HGP는 앞으로 신뢰도를 100%로 올리고, 나머지 10%의 염기서열을 완결한 다음 2003년께 마침내 ‘천의무봉’의 유전자 지도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내기를 건 과학자들이 2003년까지 목을 빼고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은 왜 유전자 숫자를 가지고 게임을 벌이는가. 과학자들은 유전자가 생명의 신비를 벗겨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지난 90년 유전자 지도를 그리기 위해 10여년간 30억원을 투자하는 게놈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에너지성(DOE)이 주도하고, 세계 15개국 350여개 연구소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맨해튼프로젝트와 나사프로젝트에 이은 제3의 거대과학(Big Science) 프로젝트다.
HGP의 본산인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가 NIH의 49번째 빌딩이라는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엔 의미심장하다.
영어권에서 49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서부개척 시대인 1849년 금광을 찾으러 캘리포니아를 향해 나선 사람들을 일컬어 ‘포티나이너’라 했다.
20세기 과학자들은 금광을 찾아나선 서부개척자들처럼 사람 몸에서 생명체의 비밀을 밝혀낼 유전자라는 블랙박스를 찾아나선 것이다.
유전자는 생명현상의 가장 중요한 성분인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유전정보를 말한다.
이 유전자는 DNA(디옥시리보핵산) 염기서열로 표시한다.
사람의 세포는 총 60조개에 이른다.
이 세포마다 핵 속에 똑같이 23쌍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이 염색체들은 물리적으로 표현하면 유전물질인 DNA가 고밀도로 감겨 있는 것으로, 이것을 풀어보면 아데닌(A)-티민(T), 구아닌(G)-시토신(C)이라는 네가지 염기가 나선 모양의 짝을 이룬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염기쌍이 31억개가 있다는 얘기다.
이 DNA의 길이가 약 2m이므로, 사람 몸에 들어 있는 DNA 길이는 120조m인 셈이다.
이 DNA 염기서열을 풀어 책으로 옮기면 1천쪽짜리 책 200권이 필요하다.
다 읽으려면 일생의 3분 1을 보내야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사람 몸의 생성이나 각종 장기·조직의 기능, 질병에 관여하는 코드는 극히 일부분이다.
A-T, G-C의 반복서열로 기록된 이 코드를 유전자라 한다.
유전자는 코드(염기서열)대로 단백질을 만들어 사람의 생명 현상을 관장하게 된다.
단백질은 염기 세개당 한개씩 만들어지는 아미노산이 수십~수백개가 모여 생성된다.
유전자를 구성하는 염기는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염기가 단 한개라도 잘못되면 돌연변이 단백질을 생성하게 돼 암과 같은 유전질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유전자특허가 경제 지각변동 부른다 과학자들이 유전자 코드를 밝히려는 것은 그것이 유전자 기능을 알아내는 기초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직 유전자 기능은커녕 유전자가 모두 몇개나 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것이 유전자 숫자 알아맞히기 게임에서 과학자들이 천차만별로 베팅을 한 까닭이다.
최근 국내 생명공학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한 재미 한국인 과학자는 현재의 유전자 기능 연구를 “새 알을 보면서 그 새 생김새를 그리는 작업”에 비유했다.
지금까지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는 약 9500개. 전체 유전자가 10만개라면 10%도 채 안된다.
생명공학 회사들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 초안이 완성됨에 따라 아직 미개척지인 유전자 기능 밝히기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등 게놈프로젝트를 주도한 나라들은 인간 유전자 지도 초벌구이에 대해서는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그러나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발현된 유전자 조각(EST)이나 개인의 유전적 차이를 나타내는 단일염기다형성(SNP)에 대해서는 이들도 특허권을 허용하고 있다.
유전자 특허는 일반 발명품과 달리 한번 획득하면 새로운 발명품에 의해 대체돼 퇴출당할 염려가 없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생명공학 회사들이 유전자 연구에 혼신의 힘을 쏟는 것도 이런 매력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게놈 연구에 도전해 올초 HGP보다 먼저 유전자 지도를 완성했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생명공학 벤처기업 ‘셀레라 지노믹스’는 지금까지 투자한 3억2천만달러의 세배에 가까운 9억달러를 이 유전자 기능 연구에 쏟아부을 계획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간암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를 발굴하고 이 유전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해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한다면 후보물질 한개당 시장가치가 3천억원에 이르는 것이다.
유전자 지도의 완성은 개인중심 치료법을 시행하는 개인화된 의학, 곧 ‘맞춤의학’ 시대의 서막이 열렸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염기 1천개마다 나타나는 SNP는 개인마다 잘 듣는 약이 다르고, 잘 맞는 음식이 다른 원인을 나타낸다.
이 SNP 검색은 각종 질병의 유전적 원인을 밝혀줄 것이다.
또 개개인의 유전 정보를 토대로 어떤 병에 언제 걸릴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 개인 유전자 기능연구와 관련해 주목받는 분야가 DNA칩이다.
DNA칩은 유전정보인 DNA 조각을 동전 크기의 기판에 붙여 다양한 유전자 분석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말하자면 생화학 반도체다.
10만여개에 이르는 유전자의 변이 검색을 단 28초 만에 해낼 수 있는 DNA칩은 암 등 유전질환의 조기진단부터 친자확인, 범죄자 검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일 것이다.
이 DNA칩 시장은 지난해 3억달러에서 2010년에는 150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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