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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특허생쥐 탄생 바이오 특허를 잡아라
[커버스토리] 특허생쥐 탄생 바이오 특허를 잡아라
  • 이원재
  • 승인 2000.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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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특허 1호 면역결핍생쥐 '스피드'...바이오 벤처의 새 승부수 '생명창조'
스피드는 연신 찍찍거렸다.
눈처럼 하얀 몸집에 빠알간 눈동자가 루비처럼 빛났다.
살색이 감도는 두발을 재바르게 놀리며 사방을 기웃거렸다.
유리벽을 향해 달려들 때마다 분홍빛 꼬리가 하늘에 부챗살 모양의 호선을 그었다.
그러다 잠시 멈춰 서서 코를 실룩거렸다.
하얀 수염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앞니가 반짝인다.


결함때문에 대우 받는 생쥐 ‘스피드’
SPID-70T. 연구실에선 그냥 스피드라 부른다.
날랜 움직임이 제법 이름값을 한다.
이런저런 신고서에는 ‘T세포 면역결핍 생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죽을 때까지 유전적 결함을 안고 살아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영예를 얻었다.
스피드는 며칠 뒤 ‘국내 최초의 동물특허’라는 한국 생명공학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을 갖게 된다.
스피드는 태어난 게 아니라 ‘발명’됐다.
스피드의 특허등록은 국내 바이오 산업도 마침내 ‘생명체 발명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생명공학 벤처기업 마크로젠의 서정선 대표(서울대 의대 교수)가 지난 94년 특허출원한 ‘T세포 면역결핍 생쥐 SPID-70T’와 ‘성인형 당뇨병 생쥐 DM-70T’의 특허등록을 승인하기로 최근 결론을 내렸다”며 “이달 안에 최종적인 절차를 마치고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허청은 지난 98년 3월 윤리성에 어긋나지 않는 한 인간을 제외한 동물발명에 특허를 허용하도록 심사기준을 고쳤다.
그전까지는 생물 가운데 식물이나 미생물 등의 특허만 허용됐다.
이후 여러 건의 동물특허가 출원됐으나, 대부분 기각됐거나 아직도 심사를 받고 있다.
이번에 특허로 등록되는 두종류의 생쥐는 모두 외부 유전자를 이용해 특성을 바꾼 이른바 형질전환 동물이다.
이들은 특히 스트레스 유전자를 통해 질병을 갖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질병모델 생쥐’라고 불린다.
질병모델 생쥐의 수요자는 특정한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 개발자들이다.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업체나 연구자들은 인간의 신체를 대상으로 직접 실험할 수가 없으므로, 인체와 가장 비슷한 구조를 지닌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럴 때 유전자로 형질을 바꾼 동물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특허를 받게 된 마크로젠 서정선 대표는 스트레스 유전자를 이용해 만든 두종류의 생쥐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독점기간은 특허가 출원된 94년 11월부터 20년간이다.
2014년 11월 이전에 이들과 같은 종류의 생쥐를 만들어 사용하려는 사람은 서 대표와 계약을 맺고 로열티를 물어야 한다.
물론 서 대표는 이 생쥐들을 직접 팔 수도 있다.
게놈 프로젝트 발푤 더 큰 힘 발휘 외국의 경우 중요한 질병모델 생쥐 특허는 엄청난 값에 거래된다.
마크로젠쪽은 “암모델 생쥐 특허는 미국 파머시아에 5800만달러에 팔렸고, 비만모델 생쥐 특허는 암젠에 2천만달러에 매각됐다”며 “면역결핍 생쥐 시장이 한해 1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이 눈독을 들일 만도 하다.
동물특허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인체 염기서열 해독 초안이 공개되면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인간 유전자 염기서열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기초자료일 뿐, 개별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갖고 있으며, 어떻게 변형하면 특성이 바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전자 연구의 궁극적 목표인 질병 치료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개별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져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전자가 암세포의 번식 여부를 결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유전자를 조작해 암을 미리 막거나 치료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인체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개한다는 발표가 나오자마자 생명공학업계에서 ‘이제는 유전자 기능분석이 노다지’라는 말이 나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쥐나 원숭이 등 실험용 동물은 사람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 구조를 갖고 있어 유전자 기능을 밝히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정한 유전자를 병에 걸린 사람 대신 병든 생쥐에 주입한 뒤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특정 질병을 갖도록 발명된 실험용 동물시장이 크게 성장하리라는 전망이 여기서 나온다.
이렇게 되면 관련 특허의 값은 천정부지로 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특허청이 최근 공개한 심사중인 동물특허 출원내역을 보면 모두 19건 가운데 10건이 쥐를 발명하는 것이다.
엘지화학이 출원한 유방암 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간암 쥐, 일본 도리이 야꾸힝(주)의 당뇨병 쥐 등이 여기에 들어 있다.
생명공학벤처 핵심은 특허 사실 벤처기업이 ‘동물특허 1호’를 차지했다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분야든 다른 벤처기업들도 각자 자기 분야에서 후속타를 이어갈 수 있느냐 여부다.
일단 벤처기업들 사이에 특허권 확보가 생명공학 벤처기업의 핵심역량을 좌우하게 된다는 공감대는 이뤄져 있는 상태다.
합성유전자 및 유전자조작용 장비 등을 개발·제조하는 바이오니아 박한오 사장은 “생명공학기술은 반도체 등 다른 산업분야에 견줘 기술을 베끼기가 쉬우므로 기술을 산업화하려면 특허권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특히 바이오 벤처기업에게 특허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할 수 있는 핵심역량”이라고 설명했다.
생명공학연구소 바이오벤처센터(BVC) 조성복 실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생명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의 성장전략을 ‘M&A 지향형’과 ‘시장 지향형’의 두가지로 나누고, 각각의 성격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M&A 지향형은 고도의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형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에 해당한다.
인간유전자를 분석하거나 신물질을 개발하는 등 특정 분야에서 심도있는 연구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은 벤처기업 특유의 ‘가벼움’을 활용해 대기업들이 쉽게 손대지 못하는 분야를 발굴한 뒤, 대기업에 거액을 받고 기술을 이전하거나 아예 기업을 통째로 매각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독자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이런 벤처기업은 앞선 분야의 연구개발에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대기업이나, 시장을 신경쓰기 힘든 공공연구기관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바이오 산업의 윤활유 구실을 한다.
미국에서는 대기업이나 공공연구기관이 손대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낸 뒤, 해당 분야 과학자를 찾아 창업에서 대기업에 M&A되기까지를 도와주는 컨설팅업체까지 활동하고 있다.
인수합병이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생명공학업계에서는 이번에 동물특허 등록에 성공한 마크로젠을 비롯해, 혈관신생억제제를 개발하는 안지오랩, 백신개발업체인 백텍, 단백질분해효소를 개발하는 인섹트바이오텍 등을 대표적인 연구개발형 바이오 벤처기업으로 꼽는다.
시장 지향형은 말 그대로 독자적으로 시장에서 제품을 팔아 생존하려는 모델이다.
그러나 신물질 개발이나 유전자 기능분석 등의 분야는 이미 미국 등 선진국 기업들이 축적된 기술과 막강한 자금력으로 장악하고 있어 맞대결이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선진 생명공학업체들이 미처 건드리지 않은 틈새시장을 찾아내는 게 성공과 실패를 가른다.
국내에서는 코스닥에 등록된 바이오시스와 대성미생물연구소 등을 비롯해 생명공학 관련 장비를 개발·제조하는 바이오니아, 생화 수명연장제를 내놓은 엘피스바이오텍, 오존수로 재배한 콩나물을 제조하는 원력농산 등 건강식품 개발업체들이 이쪽 모델에 들어맞는 것으로 꼽힌다.
특허전쟁 외국계 약진 토종은 헉헉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들의 특허출원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95년 475건이던 내국인 생명공학 분야 출원은 96년 541건, 97년 596건, 98년 823건, 지난해 932건으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그러나 외국인의 국내 특허출원 동향을 살펴보면 이 정도로 만족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외국인들은 812건의 생명공학 관련 특허를 한국에 출원했다.
내국인을 합친 전체 출원건수의 47% 수준이다.
지난해 전 분야의 특허 가운데 70%를 내국인이 출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외국인들이 생명공학 분야 특허에 얼마나 무게를 두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인간게놈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유전자 특허출원을 보면, 지난해 접수된 401건 가운데 250건(63%)이 외국인 몫이다.
특허청 이성우 유전공학심사담당관은 “미국에서 인간게놈 유전정보를 대량으로 특허출원하고 있는 인사이트와 셀레라 제노믹스 등의 초대형 생명공학기업들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국내기업들과 외국인들과의 차이는 더욱 큰 셈”이라며 “21세기 내내 기술종속의 상태에 놓이지 않으려면 특허를 빨리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로젠의 서 대표는 “생명공학 사업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해방의 길’로 가는 길목에서 노다지를 캐고 있는 것이 신약을 개발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고, 여기에 더부살면서 무섭게 커가는 것이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들이다.
미국 대형 제약업체들은 연간 100억달러 규모의 로열티를 원천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에게 지불한다고 알려져 있다.
질병없는 세상으로 가는 노다지길 화려한 성공의 길은 그들만의 것일까? 국내에서도 이 노다지의 길, 또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동물특허 1호 등록으로 이 길이 한발짝 가까워졌고, 유전자 염기서열의 초안 공개가 결정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밝아졌다.
당신은 그들을 ‘목숨을 만들어 팔아 돈을 버는 장사치들’이 아니라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벤처기업’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
BT와 IT는 찰떡궁합?
생명공학이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전자부품·컴퓨터 프로그래밍 따위의 첨단 정보기술과 합성된 분야가 유망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분야는 DNA칩 생산이다.
DNA칩은 유전정보인 DNA 조각을 동전 크기의 기판에 부착해 다양한 유전자 분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생화학 반도체다.
DNA는 구조에 따라 결합하거나 분리되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이 칩을 이용해 발암유전자 등 특정한 성격의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공학의 반도체’로 불리며, 게놈연구 결과의 산업화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DNA칩이 주목을 받는 것은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생산기술과 정보통신산업의 배경을 잘 활용하면 한국에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여기에는 유전공학기술, 미세가공기술, 유전자 분석기술, 컴퓨터 정보처리기술 등 종합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삼성그룹이 조만간 삼성전자의 반도체생산 노하우와 삼성병원의 생명공학기술을 접목해 DNA칩을 만들어 시장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니아는 이미 칩 생산장비 개발을 완료한 단계이며, 마크로젠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인간유전자 염기서열이 공개되면 이를 분석하기 위한 DNA칩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99년 3억달러 규모였던 세계시장 규모가 2010년에는 150억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도 유망분야로 꼽힌다.
생물정보학은 컴퓨터를 이용해 생물체가 가진 생체정보를 파악하고 처리하는 분야로, 생명공학과 정보학이 합쳐진 개념이다.
방대한 양의 인간 유전자정보를 분석가능한 형태로 옮겨주는 역할을 하므로, 자연히 유전자정보가 널리 알려질수록 수요가 늘어난다.
미국에서는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와 3만명 이상의 프로그래머들이 여기에 투입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에는 전문인력 양성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스몰소프트 등 몇몇 벤처기업이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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