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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리] 디지털 줄자 3차원도 척척
[테크놀로리] 디지털 줄자 3차원도 척척
  • 신동호(한겨레기자)
  • 승인 2000.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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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정보 측정해 입체영상으로 재현...곡선 측정 못하는 단점도 보완될 듯
가구나 방을 재면 컴퓨터에 그 모습이 입체영상으로 나타나는 ‘디지털 줄자’가 MIT 미디어랩의 한국인 학생에 의해 개발됐다.
‘핸드스케이프’란 이름의 이 줄자는 보통 줄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방향과 각도를 인식하고, 측정한 정보를 무선으로 근처 컴퓨터에 송신한다.


예컨대 박스를 놓고 가로, 세로, 높이를 재면 컴퓨터가 이 박스와 똑같은 3차원 모델을 화면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줄자가 측정한 각도, 길이, 방향 등 여섯개의 공간정보를 컴퓨터가 계산해 3차원 모델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매뉴얼이 필요없을 정도로 사용법 간편 핸드스케이프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12㎝, 폭은 4.5㎝로 어른 주먹만하다.
줄자의 몸체 속에 내장된 컴퍼스는 줄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재고, 가속도계는 수평면에 비해서 얼마나 기울었는지를 인식한다.
이 줄자는 창고나 운송업, 유적 발굴작업, 실내 디자인에 이용할 수 있다.
특히 창고나 운송업에서는 창고와 트레일러의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이익과 직결된다.
“트럭운전사가 컨테이너에 크기가 다른 수백개의 상자를 집어넣는다고 해보자. 트럭운전사가 핸드스케이프로 크기를 재면 컴퓨터는 현재 상태에서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음 상자를 쌓을 위치를 컴퓨터 스크린 위에 표시해준다.
컴퓨터의 지시대로 쌓다가 보면 트레일러 안에 최대한 많은 상자를 넣을 수 있다.
” 이 장치를 개발한 미디어랩 탠저블(Tangible)그룹 이재철(33)씨의 설명이다.
핸드스케이프는 얼마 전 UCLA의 발굴팀이 이용해 진가를 발휘했다.
발굴현장에서는 지도 위에 발굴한 품목의 위치를 정확히 기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매몰되기 이전의 상황을 정확히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굴현장에서는 1m 정도의 간격으로 발굴기준선을 실로 연결해 바둑판처럼 만든 다음 새로운 것이 발굴될 때마다 이 선에서 떨어진 거리와 깊이를 잰다.
이 작업은 하루에도 수백번씩 되풀이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핸드스케이프는 이런 수고를 단박에 덜어줬다.
고고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자를 사용하는 횟수를 줄였고, 측정치를 일일이 기록하지 않아도 됐다.
또한 이 줄자로 가구나 방의 크기를 재면 바로 도면이 나오기 때문에 건축가들이나 디자이너들이 실내 디자인을 하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일부 엔지니어들은 컴퓨터 비전 방법으로 물체의 크기와 모습을 재서 컴퓨터에 나타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줄자를 고집한다.
줄자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친숙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개발한 줄자는 사용방법이 아주 간단하기 때문에 매뉴얼도 없다.
물론 이 줄자에도 단점은 있다.
핸드스케이프는 직선만 재고 곡선은 재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의 한 회사가 곡선 모양의 표면을 잴 수 있는 ‘휘는 줄자’를 개발했다.
두 기술을 결합하면 핸드스케이프는 현장에서 생산성과 효율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보인다.
세상을 재고 싶다 이씨는 홍익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MIT에 와서는 건축을 전공했다.
현재 미디어랩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이씨는 얼마 전 자기가 숙식하고 있는 방을 전시실로 개조해,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유리벽을 통해 방의 내부와 자신의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퍼포먼스를 3개월 동안 열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왜 이런 줄자를 개발하게 됐을까. 그는 “토지측량사였던 아버지가 매일 세상을 자로 재는 것을 보고 자라서 그런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컴퓨터의 미래를 보여드립니다 컴퓨터의 미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MIT 미디어랩의 ‘랩 투어’에 참여해 구경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해마다 봄이 되면 미디어랩의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미국 안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보스턴으로 날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투어를 하면서 거치게 되는 수십개의 연구실 가운데 올해 사람들의 발길을 가장 많이 잡아끈 곳 가운데 하나가 ‘탠저블 그룹’이다. 이 그룹은 “보이지 않는 정보를 만질 수 있게 한다”는 구호 아래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 그룹의 연구실에 들어서면 우선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바람개비들이 눈길을 끈다. 이 바람개비의 회전속도는 미디어랩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흐르는 정보의 양과 비례한다. 바람개비가 빨리 돌면 정보가 많이 소통되고 있는 것이고, 천천히 돌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원들은 이 바람개비를 뉴욕 월스트리트의 주식거래소와 연결시켜 주식이 오르면 빨리 돌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또 야후나 AOL 같은 포털업체들이 바람개비를 통해 웹사이트 히트 숫자를 느낄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잇다. 탠저블 그룹의 책임자인 히로시 이시이 교수는 “디지털 정보에 물리적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로 해결할 수 없는 인터페이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한다. 그는 만지거나, 손동작을 하거나, 또는 문을 여는 동작이 모두 컴퓨터와의 인터페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홋카이도대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히로시 교수는 지난 88년부터 일본 NTT의 휴먼인터페이스 연구실에서 일해오다가, 95년 미디어랩으로 옮겨 탠저블 그룹을 조직했다. “그동안 컴퓨터의 성능은 눈부시게 향상됐지만, 컴퓨터와 인간의 인터페이스는 매우 느리게 발전했다. 이미 50년 전에 나온 마우스와 키보드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해야 한다. 또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말한 탠저블 그룹 이재철 연구원은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이상적인 인터페이스는 음성이지만 당분간 음성 인터페이스의 실용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투이(TUI)가 과도기적인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그룹이 개발한 ‘컬리봇’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이 갖고 놀 수 있는 무당벌레 모양의 장난감으로, 두개의 바퀴가 달려 있다. 이 장난감을 바닥에 대고 움직이면 컬리봇은 움직인 동작을 그대로 기억했다가 똑같이 재생한다. 동작 기록 및 재생기인 셈이다. 컬리봇에는 버튼이 있어 이를 한번 누르면 동작을 기록하고, 두번 누르면 동작을 재생한다. 컬리봇은 기억한 동작을 시간의 역순으로 재생하는 능력도 갖고 있다. 또 컬리봇에 펜을 붙이고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시키면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연구팀은 컬리봇이 아이들의 수학교육에서 한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테이블과 세개의 병으로 구성된 ‘뮤직 보틀’도 이 그룹의 작품이다. 이 병에는 전자기적인 표시가 붙어 있어 코르크 마개를 열 때마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온다. 세개의 코르크 마개를 모두 열면 멋진 피아노 트리오가 연주된다. 투명한 테이블은 소리의 크기와 음정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뭣하러 이런 것을 만드느냐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에서 집에 돌아와 병 마개를 열면 컴퓨터가 이메일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도착한 편지를 음성합성으로 읽어준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마우스나 키보드 대신 집에 이런 병들을 갖다 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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