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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실패] 페이팰
[성공과실패] 페이팰
  • 신동호(한겨레)
  • 승인 2000.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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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에서 배운 인터넷 금융의 비법
전자우편으로 송금 서비스... 7개월 만에 가입자 200만명, 전략적 동맹으로 시장 다져
보통 컴퓨터 바이러스는 세계로 퍼지는 데 몇달이 걸린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시작된 러브 바이러스는 전세계로 퍼지는 데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바이러스는 전자우편 소프트웨어인 아웃룩 익스프레스를 가동시켜, 주소록에 기재된 모든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바이러스를 보내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퍼졌다.
“신용카드 시장을 사라지게 할 것” 최초의 ‘개인 대 개인’(P2P) 송금서비스인 ‘페이팰’ www.PayPal.com은 바이러스를 닮은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이다.
전자우편으로 간단히 돈을 보낼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지난해 11월 미국에 등장한 지 불과 7개월 만인 5월 말 현재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었다.
이는 미국 랭킹 2위 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온라인 서비스 가입자 숫자인 210만명과 맞먹는 것이다.
페이팰을 이용하면 저녁값을 대신 내줬거나 내기를 했던 친구에게 다음날 전자우편으로 돈을 보낼 수 있고, 다른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자녀에게도 전자우편을 보내는 것처럼 간단하게 송금할 수도 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우선 웹사이트에 가서 자신의 은행계좌번호 또는 신용카드번호를 알려주고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을 하는 데에는 2~3분이 걸리지만, 그 다음부터는 돈을 보내는 일이 ‘식은죽 먹기’이다.
송금할 액수와 상대방의 전자우편 주소만 적어서 클릭하면 된다.
몇초 뒤 상대편은 돈이 얼마 들어왔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수신자도 페이팰에 가입을 해야 전자우편으로 온 돈을 쓸 수 있다.
수신자는 받은 돈을 자신의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로 이체시킬 수 있고, 수표로 받을 수도 있고, 페이팰 계좌에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누구에게 돈을 보낼 때 이용할 수도 있다.
페이팰로 돈을 보내면 받는 사람도 자동적으로 페이팰 가입자가 되기 때문에 마치 바이러스처럼 가입자가 늘어난다.
페이팰의 또다른 매력은 송금수수료가 공짜여서 가입자들이 전혀 마찰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페이팰을 본떠 지난 3월 서비스를 시작한 빌포인트는 수수료가 송금액의 3.5~3.9%, 이머니메일은 건당 1달러이다.
무료 서비스의 위력은 특히 경매 사이트에서 유감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이베이의 경매대금은 신용카드나 우편환으로 결제됐으나, 지금은 전체의 3분의 1이 페이팰로 결제되고 있다.
경매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신용카드로 돈을 받으려면 카드거래계좌를 신청해야 하고, 또 거래액수의 3~4%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페이팰은 2분이면 가입할 수 있고, 수수료도 전혀 없다.
페이팰은 초창기에 가입자에게 5달러씩의 가입비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가입을 하는 사람에게 거꾸로 5달러의 보너스를 전자우편으로 보내주고 있다.
또다른 사람을 가입자로 만든 경우에도 5달러의 보너스를 준다.
페이팰을 운영하는 X.com 사장 엘론 머스크는 “송금되는 돈이 잠시 우리 회사에 머무는 동안에 생긴 이자, 그리고 가입자가 페이팰 계좌에 남겨놓은 돈에서 생기는 이자로 운영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전혀 수수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신용카드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기능가진 휴대전화로도 서비스 가능 페이팰의 장점은 개인용 컴퓨터뿐 아니라 손바닥 컴퓨터 같은 휴대용 개인단말기(PDA)나 인터넷 기능을 가진 휴대전화로도 돈을 보낼 수 있다는 데 있다.
페이팰은 2003년에는 휴대전화 등을 통해 웹사이트에 접속할 이용자가 10억명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때가 되면 이동상거래(m-commerce)가 지금 길거리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통화하는 것처럼 흔하디 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까지는 음료수 자판기에 구겨진 돈을 펴서 집어넣느라 고생했지만, 앞으로는 휴대전화로 자판기 위에 적힌 전화번호를 돌린 뒤 페이팰로 돈을 넣으면 바로 음료수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페이팰의 탄생은 스탠퍼드법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의 금융가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은행을 구상하던 피터 티일(32)이 암호기술 전문가인 맥스 레프친(24)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당시 맥스는 암호기술을 제공하는 벤처기업을 차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메일을 통해 돈을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98년 12월 ‘콘피니티’라는 회사를 차렸다.
페이팰이 보유한 핵심기술인 암호기술은 퍼블릭 키 암호의 창시자인 스탠퍼드대학의 마틴 헬먼 교수와 댄 보네 박사가 개발한 것으로, 전자우편을 통해 돈을 보낼 때 누가 중간에서 이를 가로채거나 엿보지 못하게 하는 구실을 한다.
사실 페이팰이 등장하기 전에도 미국에서는 편하게 쓸 수 있는 ‘디지털 머니’를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1세대 디지털 머니였던 디지캐시나 사이버캐시는 지난해 부도를 내거나 서비스를 중단했다.
두사람은 이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했다.
첫째 이유는 이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번거롭게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야 하는데 소비자들이 이를 꺼려했다는 점이었다.
둘째, 디지털 머니는 돈을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양쪽이 모두 써야 거래수단으로 정착될 수 있어 빠른 시간 안에 확산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두사람은 디지털 머니를 전자우편을 통해 바이러스처럼 뿌린다는 개념을 세웠다.
그리고 2000년 말까지 100만명의 고객을 잡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그런 목표를 초과했다.
가입자가 하루에 1만명씩 늘어나면서 무서운 속도로 2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티일은 돈을 바이러스에 비유한다.
그는 “20달러짜리 돈은 한해에 6명의 손을 거치게 된다.
디지털 머니의 세계에서도 우리가 한사람의 가입자를 확보하면 자동적으로 한해에 6명의 가입자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두사람의 성공은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기술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은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을 수 있는 노키아, 도이치뱅크, 퀄콤, JP모건을 투자자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빠른 시간 안에 사업을 안정궤도에 올려놓았다.
유럽 최대의 은행과 휴대전화의 세계 최강자들을 모두 끌어들인 것이다.
사무실 임대료가 비싼 실리콘밸리 한복판에서 좋은 사무실을 얻기 위해 부동산업자까지도 주주로 끌어들였다.
인터넷 은행과 합병 통해 출혈경쟁 피해 페이팰이 성공을 거두자 실리콘밸리에서 잘 나가던 인터넷 은행 X.com과 개인 대 개인 송금 서비스를 놓고 경쟁이 시작됐다.
하지만 두 회사는 출혈경쟁을 피하고 동등한 지분으로 지난 3월 합병했다.
새 회사의 사장은 X.com의 엘론 머스크가 맡고, 서비스 이름은 페이팰을 쓰기로 했다.
합병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한달 뒤 매디슨 디어본 파트너스가 주도해 세콰이어 캐피털, 도이치뱅크, 골드만 삭스, 아이디어랩, 싱가폴텔레콤에서 1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이를 바탕으로 X.com은 콜로라도의 퍼스트 웨스턴 은행도 인수해 고객에게 뱅킹 서비스, 보험 서비스 그리고 투자, 온라인 뱅킹 등의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올해 말에는 외국에서도 페이팰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가까운 장래에 주식시장에 기업을 공개할 예정이다.
7달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페이팰이 ‘개인 대 개인 지불’ 시대를 열면서 Payme.com이나 PayMyBills.com처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벤처회사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또 지난 3월에는 이베이와 미국 서부의 최대 은행인 웰즈 파고가 투자해 Billpoint.com을 시작했다.
미국 랭킹 4위의 은행인 뱅크 원도 eMoneyMail.com 서비스를 개시했다.
7월부터는 미국 최대의 신용카드 지불 처리업체인 퍼스트 데이터가 MoneyZap란 개인 대 개인 지불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야후, 뱅크오브아메리카, 체크 프리, 플리트 보스턴 은행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은행이 고객을 통제하는 시대 끝난다? 페이팰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적어도 은행의 지위를 바꾸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금까지는 은행이 현금인출기나 지점에서 고객의 거래를 통제했지만, 앞으로는 고객이 손바닥에서 은행을 통제하는 시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 세워진 은행의 개념이 바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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