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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들의e혁명] ⑤ 제일제당
[공룡들의e혁명] ⑤ 제일제당
  • 이원재 연구기자
  • 승인 2000.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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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에서 영화까지 ‘영원한 벤처’
“현금흐름 중시 경영.”
연초에 발표한 제일제당의 중장기 사업전략 발표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제목이다.
당시는 주식시장이 상승길에 올랐다는 기대가 살아 있고, “한국은 IMF를 완전히 졸업했다”는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이 당연한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재계 주변에서는 좀 엉뚱할 만큼 안전 위주의 경영전략이 아니냐는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그 뒤 우리 경제는 주가 폭락, 미국 경기둔화, 현대 문제 등 온갖 악재들로 포위됐다.
제일제당의 사업계획서는 위기를 예측해 대비책을 세운 예언서격이 돼버렸다.
그러고나서야 사람들은 ‘당시로서는 아주 흔해 보여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던’ 그 전략발표문의 다음 페이지를 떠올린다.
“바이오 사업 강화.” “e비즈니스 대폭 강화.” “디지털 콘텐츠 회사 설립.” “세계 유수 물류업체 부상.” 이 각각의 항목은 제일제당의 e-CJ 전략의 핵심 부문들이다.
제일제당은 그 전략적 거점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있다.

‘현금흐름 안정’ 기반 속 신산업 진출 설탕과 식용유로 유명한 제일제당이 지난 95년 영화산업 진출을 알렸을 때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실질적 오너로 떠오른 이재현 부회장이 개인적인 취미를 회사에다 심으려는 욕심을 내는 것 아니냐” “재벌이 영화산업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등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제일제당의 생각은 다르다.
제일제당이 기업규모로는 대기업이지만 설탕에서 사료로, 조미료 및 발효식품으로, 제약 및 생명공학으로, 그리고 이제 인터넷 및 미디어 콘텐츠로 옮겨오는 사업의 대목마다 ‘벤처’였다는 것이다.
국내 생산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수입을 당연시 했던 설탕을 만들어낸 그 정신이 지금의 영화제작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왔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의 장기전략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역사적인 논리가 서 있다.
이 부회장은 항상 “식품사업이 외식사업으로, 외식사업은 엔터테인먼트사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구도를 머릿속에 그렸다고 한다.
소득수준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단순히 먹기만 하는 데서, 좀더 즐겁게 먹는 데로 발전하고, 다시 먹는 것을 포함한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옮아간다는 것이다.
설탕과 참기름이 외식체인점과 케이블방송이나 영화제작으로까지 이어진 데 대한 설명이다.
이 부회장의 논리는 제일제당의 역사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93년 삼성으로부터 독립경영을 선언한 뒤, 설탕·조미료·밀가루회사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식품회사로 변신하겠다며 94년 외식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95년 바로 아시아 전체를 상대로 한 영화제작 및 배급회사인 드림웍스를 공동설립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전격적으로 뛰어들었다.
SI업체인 CJ드림소프트도 설립했다.
97년 4월 삼성그룹으로부터의 분리가 법적으로 승인된 뒤에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같은 달 음악전문 케이블텔레비전 m-net을 인수했다.
6월에는 도로공사와 함께 초고속인터넷망 사업자인 드림라인을 세웠다.
98년 3월에는 e비즈니스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물류회사 ‘CJ GLS’를 설립했다.
4월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를 개관하면서 극장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올해 4월에는 39쇼핑을 인수했고, 패션채널 등을 설립하면서 4개 케이블방송의 최대주주가 됐다.
본사 안에 사업부로 있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도 CJ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분사시켰다.
이렇게 몸집을 불려온 결과 99년 4월에는 30대 그룹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블방송, 물류회사, 영화사는 별로 큰 관련이 없어 보여 무질서한 인수러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제일제당쪽은 이런 인수가 모두 ‘e-CJ’라는 일관된 계획 아래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일제당은 회사가 벌이고 있는 인터넷·엔터테인먼트 관련 사업을 한데 묶어 ‘e-CJ’라고 부른다.
이 사업은 ‘콘텐츠와 전자상거래’ ‘인프라스트럭쳐’의 두가지 부문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콘텐츠와 전자상거래’ 부문에는 m-net 등 케이블방송, 드림웍스, CGV 멀티플렉스 극장, 드림라인의 멀티미디어 허브사이트 www.dreamx.net, CJ39쇼핑 등 멀티미디어 콘텐츠 생산자인 미디어·엔터테인먼트업체들이 속해 있다.
인프라스트럭쳐 쪽에는 드림라인, 드림소프트, CJ GLS 등 망·물류 사업자들이 들어 있다.
최종 목표는 뉴미디어 콘텐츠 강자 제일제당 조성경 상무는 “제일제당의 확장전략은 전체적으로 콘텐츠 생산자의 인수와 그들을 둘러싼 인프라의 확보로 요약된다”고 말한다.
핵심은 콘텐츠라는 얘기다.
사실 제일제당이 케이블텔레비전 송출업체나 위성방송에도 조금씩 지분참여를 하고 있지만, 대주주로서 경영에 참여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곳은 대부분 채널사업자 등 콘텐츠 생산업체다.
조 상무는 ‘제일제당이 유통업에 진출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게 했던 CJ39쇼핑 인수에 대해서도 “유통업이 아니라 e비즈니스의 기반을 갖추기 위한 확장”이라며 “홈쇼핑은 소비자에게 인터넷 환경에 맞는 새로운 문화패턴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라고 잘라 말한다.
콘텐츠 사업은 전통적으로 실패 위험이 크다고 알려진 분야인데, 왜 ‘안정경영’이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제일제당이 이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조 상무는 “아직 뉴미디어의 표준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디어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보다 위험성이 훨씬 크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표준화된 미디어는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 등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했고, 뒤이어 위성방송과 디지털방송이 등장했고, 이제 화상서비스가 되는 이동전화 IMT-2000도 등장할 판이다.
하지만 아직은 어떤 매체가 기존 공중파 텔레비전의 위치를 차지할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므로 이들 중 어느 하나에 투자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부담을 짊어지는 일이라는 얘기다.
반면, 어떤 매체가 표준이 되든 거기에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필요할 것만은 분명하다.
제일제당이 착안한 것은 이쪽이다.
예를 들어 음악 관련 콘텐츠를 장악하고 있다면 위성방송이든 유선인터넷이든 무선인터넷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콘텐츠를 팔 수 있는 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근 계열사인 드림라인이 초고속인터넷망보다는 드림엑스 www.dreamx.net 사이트를 통한 멀티미디어 콘텐츠 강화 쪽으로 사업의 중심을 옮기겠다고 결정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다.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엄청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런 피흘림 뒤에 수익을 얻을 때 쯤 되면 이미 표준이 다른 쪽으로 가버려 먹을 것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안한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그룹 e-CJ 설립 준비중 제일제당은 e-CJ 사업그룹을 아예 별도의 지주회사로 분사시킬 계획이다.
기존 식품업계의 강자인 제일제당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디지털 콘텐츠그룹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닷컴기업 주가폭락 등 시장환경의 악화로 시기는 정확히 못박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물론 기존 사업분야들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줄여가되 바이오 산업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식품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장기적으로는 전체적인 기업구조도 ‘CJ홀딩스’라는 이름의 지주회사를 두고 밑에 분야별 개별기업을 두도록 지배구조를 개편할 계획이다.
지주회사는 그야말로 투자자의 입장에서 투자자로서의 역할만 하고 개별기업의 움직임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계열사의 실적이 좋지 않다면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고 지분을 매각한다.
영화 관련 투자사업을 담당하는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사장은 설탕선물 딜러 출신이다.
설탕선물 딜러는 펀드매니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이 사장은 설탕값을 미리 예측해 사고 팔면서 매년 수백억~수천억원을 벌어들이는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이런 능력을 높게 산 이 부회장은 영화사업에 뛰어들면서 ‘영화도 배팅이다’는 생각으로 그를 총책임자로 앉혔다고 한다.
제일제당의 ‘배팅’이 설탕에서 성공했듯이 콘텐츠 사업에서도 ‘아시아 최고의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라는 꿈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인가.
넥타이도 출근시간도 과장도 없다
제일제당은 지난해 9월부터 출퇴근 시간을 없애고 ‘근무시간 유연화’(flexible time)를 도입했다.
오전 10시부터 4시까지의 총력근무시간에만 전직원이 근무하고, 나머지 2시간은 자유롭게 선택해서 근무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물론 근무시간은 전자카드를 통해 자동으로 체크된다.
복장도 자율화했다.
와이셔츠냐 캐주얼이냐는 이제 직원 각자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신입사원 면접 때부터 아예 자유복장이다.
여기에다 ‘과장’, ‘부장’, ‘대리’ 등의 직급호칭을 공식적으로 모두 없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를 ‘아무개 님’이라고만 부른다.
대신 직급은 인사고과용으로 G1~G7으로 나뉘어 관리한다.
승진도 인사철에 맞춰 일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기 동안의 업적에 따라 인사점수가 올라가면 등급이 자연스레 바뀐다.
최근 조직개편에서는 각 사업 부문을 모두 비즈니스유닛 단위로 바꿔 단위별 독립경영을 더욱 강화했다.
직급호칭을 없애는 등의 기업문화 변화에 대해 조성경 상무는 “전체적으로 형식이나 연공서열 등 외형보다는 실적이라는 내실을 바탕으로 인력관리를 하겠다는 회사쪽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제일제당의 한 직원은 “기존 전통산업 분야에서 순식간에 신산업으로 진출하려니 수십년 동안 쌓아온 ‘굴뚝식 문화’가 걸림돌이 된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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