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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경고! 도피성 이직을 피하라
[직업] 경고! 도피성 이직을 피하라
  • 이기대 유니코플러스 사장
  • 승인 2001.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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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한 대기업 과장으로 근무하던 김아무개씨를 만난 것은 1998년 초였다.
그는 해외취업 희망자였다.
30대 중반인 그는 직장생활에 답답해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총명한 엔지니어였고, 현실의 돌파구로 미국으로 전산취업을 하러 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자신의 꿈을 받쳐줄 영어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몇개월 동안 인력송출 업체들을 돌아다니다가 꿈을 접었고, 그 뒤로 한동안 그와의 연락은 끊겼다.


이듬해 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먼저 퇴사한 직장 동료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달 전에 어느 닷컴기업으로 옮겼다는 거였다.
사실 회사원들이 헤드헌터에게 전화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지금 당장 직장을 구하는 경우든지 아니면 전날 사장이랑 한번 크게 싸움을 한 경우다.
김씨는 요즘 취업시장이 어떠냐는 우회적인 질문을 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대화가 좀더 이어졌다.



3개월에서 6개월이 고비 그는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투덜댔고 사장이 무례하다고 주장했다.
대개 입사한 뒤 6개월, 특히 3개월 안에 사람들은 무엇에 놀라서 또는 불쾌한 기분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
이 시기는 업무가 제대로 시작되기 전이고 능력에 한계를 느낄 만큼 일이 주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김씨도 그랬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적응과 가치관의 문제로 회사를 떠날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때는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지닌 카드와 회사가 원하는 것과의 함수관계를 읽어야 하는 시점이다.
하지만 김씨는 전직이라는 쉬운 카드를 원했다.
필자는 그에게 조금은 관대해지고 게을러질 것을 권했다.
그는 아직 대기업 문화에 젖어 있었고, 경영자이자 대주주인 사장의 조급함을 이해할 만한 경험과 이해심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99년 봄 테헤란밸리에는 김씨의 능력을 원하는 기업이 많이 있었다.
때문에 그는 쉽게 이직을 결정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최근 필자는 다시 김씨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두개 정도의 회사를 더 다녔고, 명함은 이사를 달고 있었지만 두달째 급여를 못받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처음 다녔던 회사가 그 뒤 옮겼던 두곳의 회사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었다고 고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거기에 강한 의지까지 덧붙인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자동차로 치면 강한 터보 엔진에 지나지 않는다.
엔진을 충분히 감당할 만한 제동장치와 조향장치가 없다면 자동차가 어디로 굴러갈지는 뻔한 이치다.
목적의식이 없고 준비 없이 한 전직은 또다른 전직을 부르게 마련이다.
전직과 전직 사이의 기간은 갈수록 짧아진다.
그러다 막다른 골목을 만나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잦은 전직은 업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면서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누구라도 새로운 환경이 주는 밀월기간인 두달 정도가 지나면 이전 직장에서 자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제에 또다시 봉착하게 된다.
IMF 구제금융 체제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재직했던 회사 수는 1.8개였다.
다섯명이 모이면 명은 평생 한번 정도 직장을 옮겼고, 나머지 명은 처음 입사한 회사에 ‘뼈를 묻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변해, 경력관리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3~5년에 한번씩 직장을 옮기라는 미국식 처세술 이론까지 횡행하고 있다.
요즘 헤드헌팅 업체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구직자들 가운데 외국회사에 근무하는 30대의 경우 현직에 5년 이상 있었던 예가 드물다.
중견 헤드헌팅 업체에는 하루 평균 40~50통에 이르는 이력서가 추가로 접수된다.
이들 가운데 60~70%는 경력 5년차 이상이다.
대충 어림잡아보면, 우리나라에서 매일 최소한 몇천명은 자신의 이력서를 헤드헌팅 업체에 접수시키는 것으로 집계된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는 구인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해줌으로써 이같은 이직의 움직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어느 인터넷 광고업체의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인구의 12%는 구직정보 취득을 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한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어느 업체에서 어떤 사람을 구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더욱이 한통의 이력서를 접수하기 위해 손으로 쓰고 풀칠을 하는 수고를 할 필요 없이, 그저 저장된 파일을 전송하기만 하면 되는 게 인터넷 시대의 편리한 구직활동 형태다.
누구든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고 이직 결심을 한다면 인터넷을 통해 즉시 전직 시도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구제금융 체제 이전 세대들의 회사생활이 더 쉬웠을 리는 없다.
그래도 그들은 윗사람이 결제서류를 집어던져도 바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는 않았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일자리를 알아보는 방법이 쉽지 않았고, 평생 전직을 위한 이력서도 써보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한 세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즉흥적 전직을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
물론 한 회사에만 뼈를 묻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피를 목적으로 하는 전직은 성공하기 어렵다.
자신의 고민을 외부로 돌리려는 본능을 잠재우지 못하고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식의 직장생활은 평생 적자상태를 면하기 어렵다.
자기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10년 뒤 모습을 생각하라 30대의 전직은 최소한 10년 뒤를 내다보고 해야 한다.
40대라도 최소한 5년 앞은 내다보고 해야 한다.
30대에 몸값을 계산하며 하는 전직은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기 일쑤다.
나이를 먹어야 급여차이가 벌어지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월급이 재산으로 축적된다.
몇몇 컨설턴트나 헤드헌터들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금 당장 하라고 재촉하기도 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듣고 바로 실천에 옮기는 만용을 부릴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들의 능력은 똑같지 않고, 능력이 부족하다면 더욱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10년 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먼저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행보들을 계산해야 한다.
정말로 경력관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길가에 맛나는 음식이 보인다고 방향을 모르는 발걸음을 떼지는 않는다.
오늘 나에게 걸려오는 헤드헌터의 전화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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