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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경제] 디지털카메라 시장 재편 조짐
[해외경제] 디지털카메라 시장 재편 조짐
  • 함석진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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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으로 메이저 매출·수익률 떨어져… 가전과 연계마케팅 등 활로찾기 부산 1981년 어느 날 일본 소니는 ‘필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짤막한 광고문 하나를 앞세우고 ‘마비카’라는 상표의 카메라 하나를 들고나왔다.
비디오 테이프 리코더처럼 영상을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 자석식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하는 획기적인 제품이었다.
하지만 시장은 조용했다.
화질은 텔레비전 화면에도 못미쳤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자동차 몇대 값을 낼 소비자는 없었다.
이 제품은 3년 뒤인 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림픽 때에야 진가를 발휘했다.
이 사진기를 들고 간 일본 기자들은 개막식 장면을 찍은 뒤 곧바로 도쿄 본사로 전송했고, 일본 전역에 배달된 아침 신문에는 몇시간 전의 생생한 사진이 실렸다.
암실에서 현상액에 손을 적시고 있던 다른 나라 신문사 사진기자들은 이 ‘괴물’의 등장에 경악했다.
하지만 소니는 그 정도의 고객에 만족해야 했다.
소니를 포함해 당시 누구도 이 제품의 ‘자손’들이 세계 카메라 시장을 뒤흔드는 주역으로 성장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5월말 현재 시장규모 5조원대 추정 90년대 들어 디지털 기술이 본격적으로 전자제품과 결합하면서 디지털카메라도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소니·도시바·캐논 등 역시 일본 업체들이 주도한 초기 디지털카메라도 비싼 가격 때문에 시장에서 냉대를 받아야 했다.
그때 디지털카메라 한대의 가격은 2천만~4천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뒤 10여년 만에 디지털카메라는 몇십만원대까지 가격이 떨어졌고, 이젠 필름카메라를 누르고 정지화상을 담는 가장 일반적인 도구가 됐다.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될까? 업체들이 수치 공개를 꺼리고 있고 소규모 생산업체들도 워낙 많아 정확한 집계는 어렵지만, 지난 5월 말 현재 대략 5조원대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카메라산업협회가 최근 발표한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카메라 시장규모는 디지털 경기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4400억엔(4조4천억원)대를 기록하면서 3700억엔(3조7천만원)에 그친 필름카메라 시장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판매 대수로 보면 95년 20만대에서 지난해에는 1천만대로 무려 50배로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성장했다.
금액 면에서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필름카메라 시장을 앞선 것과 달리, 판매 대수에서는 아직 필름카메라가 우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필름카메라는 3200만대가 팔려 디지털카메라를 여전히 3배 이상 앞서고 있다.
하지만 가파른 보급속도에 비춰 디지털카메라는 2003년께면 필름카메라의 판매대수도 추월할 것으로 업계는 본다.
미국 시장조사회사인 IDC는 2003년 말에 디지털카메라는 4800만대, 필름카메라는 4200만대가 각각 팔릴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시장에서는 99년에 3만3천대, 지난해엔 10만대가 팔렸고, 올해는 20만대의 판매가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회사 데이터퀘스트는 지난 1월 미국 4만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지털카메라는 미국 내 1억300만가구 가운데 540만가구에 보급된 것으로 추정했으며, 올해 말까지 1270만명이 디지털카메라를 추가로 구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인포트렌드리서치그룹의 리키 앤더슨 분석가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디지털 사진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고, 특히 정밀사진도 선명하게 인쇄해내는 컬러프린터가 등장한 것이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급속하게 커진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일본의 소니·올림푸스·후지필름·캐논 등 4대 메이저 업체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99년 말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은 소니가 4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고, 나머지는 올림푸스가 15%, 후지필름이 12%, 캐논과 미국 이스트만코닥이 10% 정도씩을 나눠가졌다.
하지만 이들 주요 업체의 전체 시장점유율은 조금씩 떨어져,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80%보다 훨씬 아래로 떨어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디지털 시장이 확대되자 세계의 주요 가전업체들이 너도나도 이 시장에 뛰어든데다, 각국의 중소업체들까지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시장조사회사들은 지난해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대해 아직도 정확한 분석자료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국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선두주자인 삼성전자와 삼성테크윈은 최근 200만 화소 이상의 제품을 30만~70만원대에 내놓고, 일본 업체들과 한판 승부에 나섰다.
일본 업체들이 주도하는 300만 화소의 고급형 제품은 주로 100만원 안팎의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전자상가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80만~90만원대에 거래될 정도로 가격이 많이 떨어져 올 하반기에는 시장의 주력 제품이 될 전망이다.
시장 포화상태로 구조조정 불가피 시장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특히 그동안 시장을 주도해온 일본 업체들이 매출 감소와 수익률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 일본 업체는 화소 수가 높은 고가형 제품에 주력하고 있지만, 업체간 제품의 질이 평준화돼 감에 따라 소비자들은 가격파괴를 내세운 값싼 제품들만 찾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시장의 포화로 세계 디지털카메라 시장은 조만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며, 경쟁력 있는 3개 정도의 업체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고 캐논의 호소이 가츠야 디지털담당 상무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구조조정이 시작됐을 때 어느 업체가 살아남을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제품 경쟁력과 자금 동원능력 면에서 보면 소니가 기업사냥에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했다.
메이저 업체들은 곧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수익성 개선책을 찾느라 저마다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필름 체인망을 보유하고 있는 이스트만코닥과 후지필름은 체인점 망을 온라인으로 연결한 뒤 소비자의 사진 파일을 언제 어디서나 출력·저장해주고 온라인 앨범도 만들어주는 서비스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스트만코닥은 남미에 있는 3500개의 자사 체인점 ‘코닥 익스트레스’에 이 서비스 망을 구축하기 위해 최근 델컴퓨터와 컴퓨터·소프트웨어 공급계약을 맺었다.
프린터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휴렛팩커드와 캐논은 디지털카메라와 고품위 프린터를 번들로 묶어 싼 값에 파는 방법으로 시장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후지필름도 이와 비슷한 구상을 갖고 최근 프린터와 복사기 업체를 인수했다.
일본의 고가형 제품과 다른 나라의 저가형 제품 사이에 끼어 지난해 가장 큰 매출감소를 경험했던 이스트만코닥은 일본 올림푸스, 산요전기와 기술사용권을 공유하는 계약을 맺었다.
가장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소니도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소니의 디지털카메라는 가전제품 모두를 하나로 연결하는 ‘홈네트워크 프로젝트’의 한축을 이룬다.
소니는 자사가 디지털 가전제품의 저장장치 표준으로 밀고 있는 ‘메모리스틱’과 데이터 저장기기를 통해 캠코더·오디오·프린터·텔레비전 등 전자제품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구상을 세워놓고 연계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이젠 화소경쟁보다 부가기능 싸움
이동전화 단말기는 세상에 처음 모습을 내밀었던 80년대만 해도 크기가 벽돌만 했다.
그럼에도 책상에 설치하거나 등에 지고 다니는 무선기기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이 ‘깜직한’ 단말기의 등장에 감동했다.
그 뒤 단말기의 두께와 크기는 매년 줄어들어 지금은 지우개만한 단말기까지 나온 상태다.
단말기 두께의 한계라던 1㎝ 벽도 이미 깨졌다.
접거나 돌돌 말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종이 두께의 단말기가 선을 보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디지털카메라 업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화소 경쟁이 한창이다.
1998년에 일반 필름 품질 수준인 100만 화소 벽이 깨졌고, 매년 100만 화소씩 선명도가 개선되고 있다.
지난해 어김없이 300만 화소 제품까지 나오자, 화소 경쟁에 피로감을 느낀 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일반 사용자들은 100만 화소급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런 선명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업체들이 화소 경쟁에 매달려온 것은, 품질의 우위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화소 수 증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회사인 IDC의 존 테일러 분석가는 “육안으로 품질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소비자들에게 이제는 특수안경이나 돋보기를 쓰게 하고 제품의 차이를 설명해야 할 정도”라며 “업체들의 선명도 경쟁은 당분간 300만 화소급에서 멈출 것”으로 내다봤다.
300만 화소급 제품은 A4 용지 이상의 크기로 인쇄를 할 때 위력이 나타나지만, 현재 PC용 컬러프린터가 지원하는 선명도는 130만 화소 정도이기 때문에 일반 컴퓨터 사용자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기술적인 한계도 있다.
디지털카메라에는 화상을 분해해 디지털 신호로 처리하는 전하결합소자(CCD)라는 중앙처리장치가 있는데, 선명도가 높아질수록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므로 이 부품의 크기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개발된 이동기기용 전하결합소자로 전체 제품의 크기를 유지한 채 화소 수를 더 늘리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업체들은 요즘 품만 많이 들어가고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화소쪽보다는 당장 소비자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부가기능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제는 거의 모든 신제품이 채택하고 있는 것이지만, 동영상 촬영이나 음성 녹음, 무선 사진전송 기능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업체들은 인터넷이나 다른 가전제품과의 결합쪽에도 힘을 쏟고 있다.
디지털카메라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앞으로도 현란한 기술적 진화를 거듭하겠지만, 소비자의 수요나 욕구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기술의 속도조절이라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요즘 디지털카메라 업체들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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