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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은행 수수료 현실화는 ‘현실적’인가
[포커스] 은행 수수료 현실화는 ‘현실적’인가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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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수수료 높이고 온라인 수수료 없애… 수익성 일변도 정책에 반발 거셀 듯
국내 은행들이 각종 수수료를 현실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다른 한편에선 인터넷뱅킹을 비롯한 텔레뱅킹의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낮추고 있다.
관리비가 많이 드는 창구 거래를 가급적 줄여, 역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반면 은행마다 고액예금 고객들에 대해선 각종 수수료 면제 등 혜택을 강화하는 영업전략을 펼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공적 기능이 강조됐던 ‘금융기관’에서 수익성을 제일 앞세우는 ‘금융회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거래 고객의 20%가 은행 수익의 80%를 확보해주는 ‘20 대 80’의 현실에 은행들이 대응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의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부터 은행간 계좌이체나 공과금 수납서비스 등에 대한 수수료를 크게 올릴 계획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을 통해 적정가격을 산정한 뒤 내년 1월부터 신용카드, 어음과 수표 발행, 현금 자동인출기 이용, 계좌 개설, 동전 교환, 계좌 이체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는 적게는 50%, 많게는 100%까지 올라간다.


정부 기관들을 대신해 은행들이 대행해 온 공과급 수납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도 다음달부터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6월 안에 한국은행이 위탁한 국고금 수납, 국세청이 위탁한 소득세 원천징수, 검철과 경찰이 위탁한 금융거래 정보제공 서비스 등에 대한 원가분석 작업을 거쳐 관련 부처들과 협상에 들어간다.
인상 원인은 예대마진 감소 각종 수수료 인상의 근본 배경으론 무엇보다 관련 원가에 비해 수수료가 너무 낮다는 점이 꼽힌다.
개인고객 서비스 수수료가 원가에 비해 평균 23.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대폭적인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각각 200원과 2천원인 수표발행과 어금교부 수수료의 원가는 2251원, 5만9069원이라고 한다.
공과금 수납업무의 원가는 1346원인 반면, 수수료는 단 30원밖에 안 되는 것도 원가와 수수료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은행들은 가만히 앉아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표 참조) 실제 한빛은행의 경우 수지가 맞지 않아, 최근 고속도로 카드와 공중전화 카드의 판매대행을 중단하기도 했다.
수수료 인상의 직접적인 배경으론 시중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임에 따라 은행의 주 수입원인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이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예대마진은 평균 2.36%로 전년대비 0.79%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1분기 평균은 2.84%로 지난해 말에 비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이 역시 선진국에 견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앞으로 확대된다는 보장도 없는 편이다.
물가오름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경기회복에 무게를 두고 있는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적은데다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22개 은행의 수수료 수입은 전체의 수익의 7.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선진국의 수수료 비중이 20%대인 것과 비교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결국 예대마진의 꾸준한 확대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은행들이 수수료 인상이라는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수수료 인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권과 금융학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일시에 대폭적인 수수료 인상이 이뤄질 경우 고객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원가분석을 하게 되는 한국금융연구원 역시 수수료 부과 서비스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원가분석이 이뤄지지 않으면 고객들을 수긍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수수료 인상을 계기로 국내 은행들이 ‘선진국의 이름으로’ 입맛에 맞게 도입하고 있는 수익성 일변도 정책에 대해 고객들이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도 높은 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영업시간 이후 현금 자동인출기를 이용하는 자행 고객에게까지 은행들이 건당 300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 13곳 가운데 서울은행, 제일은행, 씨티은행, 홍콩상하이은행 등 4곳만이 영업시간 이후 현금 자동인출기 이용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을 뿐이다.
이 제도는 이미 선진국에선 일반화한 제도이다.
이에 비해 올해 들어 ‘소액계좌 무이자’ 제도를 도입한 곳은 13개 은행 가운데 8개에 이른다.
은행들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소액예금 무이자 원칙을 도입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한 제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진국 은행들이 영업시간 이후 현금 자동인출기 이용 때 수수료를 면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선 애써 모른 체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춰 제일은행이 오히려 일관된 모습에 가깝다.
제일은행은 올해 1월부터 보토예금을 비롯해 4개 예금의 월 평잔 합계액이 10만원에 못미치는 경우 매월 2천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수익성 추구라는 대세에 묻혀 간혹 논란이 되고는 있지만, 소액예금 무이자와 수수료 부과 문제도 따져봐야 할 주제로 꼽힌다.
한빛은행과 한미은행은 연령을 나누지도 않고 무이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력이 없거나 부족한 어린이와 노인들이 피해를 볼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무이자 대상 역시 은행들 마음대로 정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당좌계좌 잔액이 1천달러(130만원)를 밑돌거나 예금계좌까지 더해 3천달러 미만일 때에만 월 10달러(1만3천원) 가량을 수수료로 부과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경우 무이자 대상을 개별 통장 단위로 10만~50만원으로 설정하고 있다.
고객들이 납득할 만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들은 영업 창구에서 부과하는 오프라인 수수료는 올리는 대신, 인터넷 뱅킹을 비롯한 온라인 수수료는 크게 내릴 계획이다.
사실 온라인 뱅킹은 오프라인 뱅킹에 비해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고객 1명이 늘 때마다 오프라인 뱅킹은 추가비용이 그만큼 늘어나지만, 오프라인 뱅킹은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경제용어로 따지면, 한계 생산비용이 거의 0에 가깝다는 얘기다.
따라서 경제논리로 보면, 은행들이 온라인 뱅킹 수수료를 낮추거나 없애는 것은 당연한 조처에 해당한다.
현재 이 부문에서 가장 앞서가는 곳은 우리금융지주회사이다.
우리금융지주회사는 지난 11일부터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 등 자회사 은행 4곳 사이의 온라인 뱅킹 수수료를 면제하고 있다.
지난 5월16일 자회사 은행간 창구 송금과 현금카드, 현금입출금기 수수료를 면제했기 때문에 우리금융 고객은 어떤 수수료도 내지 않게 됐다.
이전에는 텔리뱅킹으로 송금할 경우 건당 400~1천원, 인터넷 뱅킹으로 현금을 이체할 때는 300~5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했다.
고객 아닌 시민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인터넷 전용예금을 선보이고 있는 은행들도 늘고 있다.
신한은행이 이달 들어 선보인 ‘Ez-I 저축예금’이 대표적이다.
통장을 발행하지 않고 입출금을 인터넷, 현금카드기, 현금자동입출금기 등만을 이용한다.
창구 이용 때는 100만원 미만에 대해서는 수수료 1천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모두 없다.
내년 말까지는 다른 은행으로 돈을 보낼 때도 수수료가 면제된다.
잔액이 50만원 미만인 소액예금에 대해서도 이자가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당분간 은행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쪽으로 고객들의 거래 형태를 바꾸게 하기 위해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프라인 수수료는 올리고 온라인 수수료는 낮추거나 없애면 자연스레 고객들이 온라인쪽으로 이동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그 수가 많지는 않더라도 인터넷 접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경제적 약자들로서는 은행 문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수수료 인상 문제의 경우, 감독당국과 은행권이 객관적인 원가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수수료 인상방안을 찾는 게 핵심이다.
은행이 ‘금융기관’의 성격도 띠고 있기 때문에 수수료 결정과정에는 ‘고객’이 아닌 ‘시민’들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수수료 인상에서도 사익과 공익의 적절한 균형이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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