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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제약업계, 신약개발 스타트업
[커버스토리] 제약업계, 신약개발 스타트업
  • 임채훈
  • 승인 2001.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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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2호 식약청 시판 허가 받아… 심사 기다리는 제품 줄줄이 대기
“EGF(상피세포성장인자)를 합성해낸 것은 세계 최초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당뇨병 환자들은 발에 피부궤양이 생기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절한 치료약이 없었으니까요. 이제 당뇨병으로 발이 썩어들어가는 환자들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습니다.


지난 5월30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대웅제약의 ‘EGF외용액’(용어설명 참조)을 당뇨성 피부궤양 치료제로 시중판매를 허가했다.
대웅제약 박성국(38) 연구소장은 그제야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며 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당뇨병 환자의 궤양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세계 최초로 합성하고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보람이 고된 기억을 밀어냈다.


최근 국내 제약업체들이 앞다퉈 새로운 약품을 개발해내고 있다.
1999년 국내 신약 1호라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등장했던 SK제약(옛 SK케미칼)의 제3세대 백금착체 위암 항암주사제 ‘선플라’는 그 신호탄이었다.
최근 대웅제약이 만든 당뇨성 족부 궤양 치료 신약 ‘EGF외용액’, 그리고 식약청의 최종 시판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동화약품의 간암치료 주사제 ‘밀리칸’까지 다양한 제품들이 환자들을 만나기 위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직 식약청 심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곧 국내개발 신약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올 제품들도 상당수다.
최근 임상 3상을 끝낸 중외제약의 퀴놀론계 항생제 ‘Q-35’가 곧 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유유산업의 허혈성 뇌졸중 예방 및 치료제인 ‘YY-280’, 동아제약의 항암제 ‘갈라루비신’, 제일제당의 녹농균 감염 및 패혈증 예방백신 주사제 ‘슈도모신’, 일양약품의 위궤양 치료제 ‘IY-81149’ 따위도 조만간 일반인들에게 화려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국내업체, 87년부터 신약개발 시작 이 가운데 대웅제약의 EGF는 세계 최초로 합성됐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 것으로 업계에선 평가한다.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처럼, 사람 몸에서 합성되는 단백질은 거의 대부분 외국 업체들이 상품화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EGF는 국내 기술로 합성하고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합성물질의 치료효과도 꽤 높은 편이다.
당뇨성 족부궤양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2상 결과, 72.5%라는 높은 완치율을 보였다.
동화약품에서 개발한 간암전문 치료주사제 밀리칸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밀리칸은 최근 임상 2상을 마치고 식약청의 신약허가 최종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대개 방사선을 이용한 암치료는 암세포가 아닌 다른 세포에까지 영향을 미쳐 머리가 빠지는 따위의 부작용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 제품은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병 조직만 선택적으로 치료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외제약 역시 8년 동안 자그마치 150억원을 투자하며 퀴놀론계 항생제 ‘Q-35’를 개발해 내년 안으로 상품화한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신약 한번 가져보지 못한 국내 제약업체들이 최근 하나둘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자 전문가들도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이제 국내에서도 신약이 나올 때가 됐다는 것이다.
대개 신약개발에는 10~15년이 걸린다.
국내 제약의 역사가 100년이라는 말이 있지만 신약개발 역사는 실제로는 14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87년 국내에 물질특허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야 제약업체들이 신약개발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신약개발 주기와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사실 87년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 신약개발을 하는 제약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외국 약품들의 성분을 알아내 그대로 복사하는 수준에 그쳤다.
87년 물질특허가 도입되기 전에는 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만 있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만들어내는 물질은 똑같다 하더라도 제조방법만 다르면 특허를 내주는 시기였다.
외국 메이저 업체들이 신약을 개발하면 국내업체들이 여기저기서 ‘나도(me too), 나도(me too)’를 외쳐가며 약을 복사했기 때문에 이런 약품을 ‘미투’ 약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87년부터 물질특허가 도입되면서 더는 ‘미투 제품’이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제조방법이 다르더라도 최종물질이 같으면 법에 걸렸기 때문이다.
국내 제약업계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많은 제약업자들이 열악한 국내 제약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물질특허 제도 도입을 10년 뒤로 미루자고 주장할 정도였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회 이강추 회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당시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알고 제약업계의 신약개발에 각종 지원을 아까지 않았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최근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신약개발 효과 최고 15억달러 기술력이 쌓였다는 것 이외에 신약개발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도 국내 업체들에 당근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자료에 따르면 신약 하나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순이익은 적게는 1억달러에서 많게는 15억달러에 이른다.
스웨덴의 아스트라에서 내놓는 필로섹(국내 상품명 로섹)이라는 위궤양 치료제 한 품목만 하더라도 지난 99년 한해 동안 57억달러의 매출액을 올렸다.
영국의 글락소(지금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는 잔탁이라는 신약을 개발하면서 단박에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뛰어올랐을 정도다.
물론 국내업체들이 이 정도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워낙 세계적 업체들이 강하게 버티고 있어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한다고 해도 로섹의 수준에 이르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국내 업체들은 신약 관련 물질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수출하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기술 수출만으로도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미약품은 지난 97년 4월, 스위스 노바티스에 면역 억제제 관련 기술을 6천만달러 상당의 기술료를 받으며 수출했다.
LG화학(지금의 LGCI) 역시 세계적 제약업체인 영국의 스미스클라인비첨(지금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퀴놀론계 항생제를 4천만달러 가까운 계약금을 받고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제약업계의 신약개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국내 자체의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으로 미뤄볼 때 신약개발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령 개발한다고 해도 세계적 수준의 ‘블록버스터’가 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신약을 개발할 능력이 부족한 업체들이 기술수출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
기술을 수출하기는 하지만 대개는 기술을 사들인 외국업체들이 묵살해 사장돼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국내 제약업체들도 이러한 지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내 제약업체에 선진국 수준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항변한다.
갓 돌을 지난 아이에게 뜀박질을 기대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는 아직 세계적 제약업체들처럼 막강한 영업망도 갖추지 못했고 미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기 위한 노하우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지나친 모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약업체들은 비록 사장된다손 치더라도 기술 수출을 통해 일정 정도의 자본을 모으고 관련 기술을 축적해나가는 게 순서라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단순 기술수출에서 벗어나 동남아 시장의 판권을 얻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어 예전보다는 더 나아졌다는 지적이다.
의약업계의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팜 민두기 사장은 “국내 제약업체들이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짧은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이뤄낸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내 신약개발 역사는 14년째를 맞고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신약을 만들어낸 것은 겨우 2년 전부터다.
2호 신약도 1호 신약이 나온 지 2년 만에 나왔다.
진정한 신약개발의 역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셈이다.
[용어설명] EGF(상피세포성장인자) 지난 62년, 동물들이 서로 혀로 핥아만 주어도 상처가 아무는 것에 착안해 미국의 스텐리 코헨 박사가 처음 발견했다.
사람 몸 속에서 자연적으로 합성돼, 피부에 생긴 상처를 흉터없이 아물게 하는 성질을 지닌 것으로 알려지면서 86년 코헨 박사에게 노벨 의학상을 안겨준 물질이다.
특히 이 물질은 당뇨성 족부 궤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할 물질로 많은 의료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혈액 흐름에 장애가 있는 당뇨병 환자들은 몸 안에서 EGF의 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의 발에 상처가 생기면 쉽게 아물지 않아 환자의 80% 가량은 발을 절단해야 한다.
신약개발 어떤 과정 거치나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10~15년이 걸리는 기간도 문제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신약 후보물질을 선별한 뒤 최종 상품의 발매까지 적게는 1억달러에서 많게는 5억달러까지 든다.
하지만 신약을 개발하기만 하면 이 비용을 뽑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은 전세계 약품시장 점유율이 1%밖에 안 되지만 99년 한해 올린 매출액이 29억달러에 이른다.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우선 ‘전임상 단계’를 거친다.
이 기간에는 시험관 실험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 등을 거쳐 약물의 효능과 안전성을 검토한다.
전임상 단계에서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비로소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을 시험하는 ‘임상 단계’로 들어간다.
국내에선 전임상 단계의 결과를 식약청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만 임상에 들어갈 수 있다.
미국에선 제약업체들이 미 식품의약국(FDA)에 자료를 제출한 뒤 FDA가 30일 안에 특별한 이견을 보이지 않으면 임상을 시작할 수 있다.
임상은 크게 1상부터 3상까지 세단계로 나뉜다.
1상은 건강한 일반 성인 남녀에게 약물을 투여해 약물의 농도가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야 부작용이 나타나는지와 부작용의 정도를 시험하는 단계다.
이 단계에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임상 2상에 들어간다.
1상에서 나타난 결과를 토대로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농도 이하에서 약을 얼마나 투여해야 가장 좋은 치료 효과를 나타내는지 시험하는 단계가 2상이다.
일반적으로 국내 제약업체들은 임상 2상을 거친 뒤에 기술수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 2상에서 별 이상이 없으면 임상 3상을 해야 한다.
3상은 1상이나 2상처럼 약물의 농도를 달리하면서 시험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출시될 제품의 농도에 맞추어서 진행된다.
3상까지 마친 뒤 식약청이나 FDA의 최종 시판허가를 받으면 새로운 신약이 탄생하는 것이다.
전임상을 거친 물질 가운데 최종 시판이 허가되는 것은 5~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모든 임상을 안전하게 거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일부 신약물질은 1상이나 2상만 마치고도 시판이 허가되는 경우가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치료제의 경우 병의 위독성을 감안해 1상만 마치고도 FDA가 시판을 허가했으며, 최근 기적의 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는 노바티스의 글리벡도 2상만 마치고 FDA의 허가를 받았다.
대웅제약에서 개발한 EGF도 족부궤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해 임상 2상만 마치고 식약청의 국내 시판허가를 얻어냈다.
“국내 신약개발은 이제부터” 대웅제약 연구소 박승국 박사 국내 신약 2호인 EGF합성 연구를 이끌어온 대웅제약연구소 박승국(38) 박사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해 세계 시장에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면서도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EGF 연구에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한 박 박사는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또 실험실 현미경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이번 EGF 개발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식약청의 허가를 받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임상을 마치고 나서 거의 1년 가까운 기간을 식약청의 심사에 매달렸던 것 같다. 세계에서도 전례가 없는 심사라 식약청에서도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실험과정 중에는 사람의 몸 안에서 합성되는 EGF와 똑같은 성분의 EGF를 합성해내는 게 어려웠다. 성분이 조금만 달라도 약효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애써 합성을 해내도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이 조금 차이가 나 중간에 실험을 그만둔 경우도 있었고, 구성이 똑같다 하더라도 단백질의 입체구조가 달라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백질의 경우 구성성분이 같다 하더라도 입체구조에서 물질의 결합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생물에 관계된 거의 모든 실험이 그렇듯이 실험실에서 먹고자며 씨름을 해야 했다. >실험기간과 비용은 얼마나 들어갔나. =모두 10년 가까운 기간이 들어갔다. 하지만 EGF 자체를 합성해내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험에 들어간 지 3년 만에 합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 임상 허가와 시판 허가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비용은 인건비까지 100억원 가량이 들어갔다. >EGF의 시장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일단 당뇨성 족부궤양 환자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시장규모는 다른 의약품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다. 의학전문 주간지 에 따르면 당뇨성 궤양 시장규모는 전세계로 25억달러 수준이다. EGF는 여기서 5억달러 정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통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약을 개발했을 때 10억달러 이상을 차지한다는 계산이 나와야 신약을 개발한다. 국내에서 EGF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시장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다국적기업이 EGF를 소홀하게 다룬 측면도 있다. >국내 신약개발의 현황과 과제를 말해달라. =국내에서 신약을 개발해 직접 해외에 판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화학적 방법을 이용한 신약개발은 아직도 힘들다. EGF처럼 생물학적 방법을 이용해 합성하는 것은 국내 기술도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이 있다. 개발에 성공해도 마케팅이 또 어려운 일이다. 아직까지는 해외업체에 판권을 넘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동남아 시장을 발판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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