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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자유! 자유! 자유!
[특별기고] 자유! 자유! 자유!
  • 이만용(리눅스코리아 )
  • 승인 2000.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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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철학으로 뭉친 자유소프트웨어의 성자 리처드 스톨만서울 체류 6박 7일
세계자유소프트웨어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 회장이자 ‘카피레프트’의 창시자인 리처드 스톨먼. 그에게 따라다니는 비유는 매우 다양하다.
‘성 시그누스’(Saint GNU) ‘자유소프트웨어의 성자’ ‘해커의 교주’ ‘기인’ ‘히피’ 등등…. 스톨먼과 함께 한 6박7일의 일정 동안 나 역시 그를 보면서, 다양한 비유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됐다.


첫째, 그는 ‘움직이지 않는 산’이다.
그는 지난 84년 시작한 자유소프트웨어 프로젝트와 그것에 대한 믿음을 16년 동안 단 한번도 수정하지 않은 채 올곧게 지켜오고 있다.
그런 꿋꿋함은 신념뿐 아니라, 그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는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고집과 자아가 아주 강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내가 왜 피곤할 것이라고 너의 잣대로 예상하느냐”고 반문한다.
또 사인을 요청해오는 팬(?)들에겐 꼭 “하나 약속하세요!”라며 “리눅스를 GNU(그누)/리눅스라고 부르지 않으면 사인을 해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런 고집 탓에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당황한 경우도 적잖았다.
그러나 자기 세계와 고집 또는 철학이 이만큼 뚜렷한 사람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유소프트웨어라는 철학과 해킹이라는 지적 유희의 세계는 지금까지 이어질 수 없었으리라. 움직이지 않는 산? 자유로운 수도승? 둘째, 그는 ‘자유분방한 수도승’이다.
자유분방함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그의 떠돌이 같은 삶에서 절로 우러나온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은 두달째 계속된 여행중의 한 여정일 뿐이었다.
서울 다음엔 시카고(스톨먼은 매사추세츠에 산다)라는 또다른 여행지가 기다리고 있다.
그는 한국에 오기 전 브라질과 대만을 거쳤다.
1년 가운데 한두달을 빼고는 집 밖에서 지낸다고 한다.
무엇을 하며? 세계에 흩어진 오픈소스 개발자들을 만나는 일과 자유소프트웨어에 대한 끊임없는 강연이 그의 끝나지 않는 여행 일정이다.
그래서 그는 늘 오픈소스 개발자의 집에서 숙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는 마흔일곱살의 나이인데도 아직 미혼이다.
그래서 ‘수도승’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그는 옷이나 재산, 가족 등에 대해 전혀 소유욕이 없는 듯했다.
한국에서 지낸 6박7일간 단 두번만 옷을 갈아입었을 뿐이다.
그렇게 날씨가 더웠는데도 말이다.
그가 늘 바지주머니에 꽂고 다니는 피리 역시 수도승을 연상하게 하는 생소한 코드다.
스톨먼이 연주하는 피리는 우리들이 옛날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던 피리와 똑같은 모양에 똑같은 크기다.
스톨먼의 음악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특히 각국의 민속음악을 날마다 어느 곳에서나 즐겨 듣는다.
차 안에서도, 피리를 연주할 때도. 그가 이번 방한에서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프리소프트웨어에서 프리는 공짜가 아니라 자유다”라는 것이었다.
어떤 연설자리에서든 ‘자유’라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까지 강조했다(스톨먼은 능숙하게 한국어를 읽고 발음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분할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마이크로소프트 분할은 프리소프트웨어 운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따라서 관심도 없다.
소프트웨어를 독점적으로 만드는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뿐만이 아니다.
6박7일로도 부족한 성자의 기행 스톨먼의 방한 일정은 나와 리눅스코리아 인터넷팀 이제명씨와 함께 했다, 아래부터는 리처드 스톨먼과 함께 한 6박7일을 기록한 이제명씨의 일지를 정리한 것이다.
스톨먼이 서울에서 열리는 ‘글로벌 리눅스2000’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GNU/리눅스 시스템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흥분했다.
드디어 스톨먼이 입국하던 6월14일. 공항에서 GNU코리아 회원들과 만나 스톨먼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정작 행사주최쪽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아 가슴이 철렁했다.
화급히 마련한 꽃다발과 ‘RSM’(리처드 스톨먼의 약자, 그는 자기 이름보다 RSM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라고 쓴 종이를 들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엔 분침이 시침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마침내 오후 4시15분 스톨먼을 처음 만났다.
스톨먼은 첫 인상부터 상당히 재밌는 사람인 것 같았다.
사진기자들이 스톨먼에게 팔을 흔들도록 해달라고 해 “쉐이크 핸즈!”라고 했더니, 이제명씨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통에 주위 사람들이 자지러졌다.
스톨먼은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어 보였는데, 거의 ‘만삭’에 가까운 배를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사진에서나 보던 스톨먼의 피리를 바지 주머니 속에서나마 본 것도 인상적이었다.
공항을 나와 글로벌 리눅스2000의 리셉션이 열린 인터컨티넨탈 호텔로 향했다.
스톨먼은 리셉션 장소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정색을 하고 “그리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가겠다”고 말해 일순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좋은 음식 먹기를 즐기는 스톨먼. 그는 이날 리셉션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식사를 한 사람이었다.
누가 질문을 던지면 접시를 놓고 몇분씩이나 답변을 하는 열의 덕분에 식사가 늦어진 탓도 있었다.
"What is 설렁탕?” 스톨먼은 보통 밤늦게 세계 각지에서 온 수백통의 이메일에 답장을 해주고 잠이 들어 점심에 맞춰 일어난다.
서울에서도 이 습관은 여전했다.
다음날 점심 때에 맞춰 일어난 스톨먼과 우리 일행은 함께 현대백화점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가 좋아한다는 냉면을 먹었다.
스톨먼은 미국에서도 냉면을 종종 먹는다고 했다.
냉면으로는 양이 차질 않아 맵지 않은 쌀떡볶이까지 사먹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냉면과 보리차인지라, 우리는 그의 목을 축여줄 보리차를 찾느라 다리품을 팔았다.
하지만 요즘 식당에선 생수만 주는 바람에 보리차를 구하지 못했다.
겨우 구한 것이 보리차와 가장 비슷한 우롱차, 그리고 ‘815콜라’였다.
스톨먼은 펩시콜라만을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기에 국산 콜라를 한번 맛보라며 사준 것이다.
그런데 스톨먼이 병에 써 있는 ‘콜라독립’이란 한글을 또박또박 읽는 게 아닌가. 그 순간 주위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다만 ‘독립’을 “독크리프”라고 발음해 이만용 이사가 ‘동닙’으로 발음한다며 ‘자음접변’의 발음법칙에 대해 대강 설명해줬다.
그러면서 한글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89년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책을 사서 공부했는데 상당히 복잡해서 도중에 그만뒀다고 한다.
하지만 한글 읽기는 잘 하는 편이다.
스톨먼은 차를 타고 가다가도 “What is 설렁탕?” “What is 막국수?”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통에 우리들은 종종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말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어찌 영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가장 아끼던 노트북 분실 소동 우리가 가장 놀랐던 일은 점심을 먹고 나서 일어났다.
스톨먼이 힘들까봐 이제명씨가 그의 노트북을 대신 들고다니다가 강연이 예정된 행사장으로 먼저 떠났는데, 잠시 뒤 노트북이 없어진 걸 알게 된 스톨먼이 현대백화점, 그 사람 많은 곳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휴대전화로 이제명씨에게 “당장 튀어와”라는 말만 했으니 그 긴급했던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스톨먼은 “내가 힘들 거라고 가정해서 행동하지 말라”고 말했다.
스톨먼이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들고다니는 건 휴대전화도 지갑도 아니다.
노트북과 피리다.
그런 그가 자기 노트북이 없어진 걸 알았으니, 먹던 음식을 빼앗긴 아이처럼 화를 내고 당혹스러워 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스톨먼이 쓰는 노트북은 대만제인데, 그는 자기 노트북에 대해 엉뚱하게도 “나쁘니까 사지 말라”고 했다.
그는 ‘X윈도’라는 그래픽 환경을 전혀 쓰지 않으며, 자기가 개발한 ‘이맥스’라는 에디터 프로그램만으로 웹 서핑, 전자우편, 파일관리 등을 다 한다.
이맥스 외에 쓰는 프로그램은 전혀 없다.
한국의 피리 연주 즐겨 스톨먼은 사람들이 ‘리눅스’라고 말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반드시 ‘GNU/리눅스’라고 읽고 쓰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이 리눅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일일이 고쳐주고 설명해주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기자회견할 때 기자들이 리눅스라고 호칭하는 것을 더이상 참지 못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그냥 리눅스라고만 하면 GNU 프로젝트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라며 자신이 GNU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리누스 토발즈는 겨우 중학생이었다고 매우 흥분해 언성을 높였다.
84년 스톨먼이 시작한 GNU 프로젝트는 독점소프트웨어가 아닌 자유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세상 사람 모두가 함께 누리고 자유롭게 쓰자는 운동이다.
언어표현에 예민하고 정확성을 추구하는 스톨먼은 기자회견 통역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었다.
통역사가 일부 표현을 한국어로 옮기지 않고 영어로 그대로 전하는 것을 듣게 되면 통역을 중지시키고 “왜 통역을 하지 않고 내 말을 따라 하느냐”며 꾸짖어 통역사를 여러 차례 긴장시키기도 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스톨먼은 한국의 피리 연주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한다.
방한 첫날,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이 끝나고 나서는 길거리에서 혼자 춤을 추기도 했다.
84년 GNU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스톨먼은 자신의 세계를 침해당하기 싫어하며 논쟁에서 지는 것도 상당히 싫어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과 마찰도 많다.
하지만 그런 스톨먼이 없었다면 리눅스도, 자유소프트웨어 개념도 없었을 것이다.
“해피 해킹!” 마지막 인사 스톨먼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번째다.
지난 89년, 당시엔 리눅스도 태어나기 전이었는데, 한국과학기술원 전길남 교수와 연세대 조혜정 교수 부부의 집에서 3주간 숙박하며 지낸 적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도 떠나기 전날인 6월18일 전 교수 집에 가서 10년 만에 반가운 해후를 했다.
스톨먼은 첫번째 한국 방문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 교수 부부와 나눴던 이야기, 먹었던 음식들 등등. 음식과 사람 이름에 대한 그의 기억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스톨먼은 입국할 때 주최쪽에서 마련한 환영도 받지 못하고 들어온 것처럼 출국할 때에도 변변한 환송식없이 떠났다.
단지 우리 두사람만 공항까지 따라갔을 뿐이다.
이제 스톨먼의 세번째 한국 방문을 기다린다.
그때엔 그를 좀더 알기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첫 만남이었기에 우리들은 서로 조금씩 서툴렀지만, 그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쁨으로 남을 것이다.
스톨먼은 헤어지면서 우리에게 “해피 해킹!”(Happy Hacking)이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는 50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나 순수한 미소와 고집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성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해커들 사이에서도 50 나이까지 “해피 해킹”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그의 세번째 방한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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