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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적대적 M&A 진짜 노림수
[포커스] 적대적 M&A 진짜 노림수
  • 이원재
  • 승인 2000.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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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KTB 피인수합병설로 술렁…하반기 증시 테마 부상 예고
일요일이던 지난 11일, 해외출장에서 돌아온 메디슨 이민화 회장은 공항에서 여행가방을 든 채 곧바로 사무실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밤 여장도 풀지 않은 이 회장이 주재한 비상회의의 주제는 적대적 피인수합병. 분위기는 사뭇 비장했다.
이 회장은 임원들에게 “메디슨을 적대적 인수합병하려는 세력이 있으니 시급히 방어전략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일요일 밤 긴급 임원회의 “회사를 방어하라” 이날 긴급회의의 발단은 한국기업평가가 메디슨의 투자등급을 하향조정한 다음날 주식시장의 움직임이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8일 메디슨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로 한꺼번에 두단계나 내렸다.
다음날인 9일 메디슨 주가는 장 초반부터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하한가 매도잔량도 자꾸만 늘어나 장이 끝나는 오후 3시께는 50만주까지 쌓였다.
메디슨을 ‘비상시국’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한 증권사 창구를 통해 매도물량이 쏟아져나오면서 50만주이던 하한가 매도잔량이 순식간에 100만주로 늘어난 것이다.
메디슨은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챘다고 한다.
메디슨 관계자는 “매수세력이 전혀 없는 것이 불보듯 뻔한 상태에서 나온 이 뭉터기 매도주문은, 다음날 장 초반부터 주가를 하한가로 끌어내리기 위해 특정 세력이 계획적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가를 떨어뜨려 헐값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려는 세력을 감지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바로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월요일인 12일, 이전까지 100만주 안팎이던 메디슨의 거래량은 300만주를 넘어섰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증권가에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했다.
늘어난 거래량이 쉽게 줄지 않으면서 이런 소문에 힘을 실어줬다.
메디슨쪽은 이제 “적대적 인수합병을 노리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했다.
현재 메디슨에서 이민화 회장의 지분은 4.11%에 지나지 않는다.
관계사 지분, 우호적 해외투자자 지분, 임직원 지분 등 우호 지분을 모두 합쳐도 22~23% 수준이다.
결국 메디슨은 23일 자사주 196억원어치(200만주, 6.38%)를 매입하겠다고 결의하면서 본격적인 지분방어에 나섰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메디슨 주식을 사들이는 것일까? 메디슨은 원래 초음파진단기 등 의료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현재는 벤처지주회사로 변신해 있는 상태다.
투자해둔 벤처기업은 모두 40여개에 이른다.
투자원금은 800억원 수준이지만, 메디다스 메리디안 등 이미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기업 등을 감안할 때 현재 평가액은 1조5천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최근 삼성 SK 등 재벌기업들의 벤처투자 붐으로 미뤄 대기업의 인수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 여기서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벌써 ‘삼성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양증권 김희성 연구원은 “얼마 전부터 삼성이 메디슨 지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며 “삼성물산의 경영방침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아 현실성이 없는 얘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메디슨의 외국인 지분율이 다른 기업들에 견줘 크게 높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현재 메디슨의 총 주식수는 3136만주인데, 이 가운데 40%가 조금 넘는 1269만주가 외국인 지분이다.
재벌을 비롯한 자금력 있는 국내세력이, 감독당국의 눈길이 닿지 않는 역외펀드를 이용해 외국인을 가장한 지분매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다.
어쨌든 신용등급 하락에다 자금악화설이 불거지고, 보유 유가증권을 처분하겠다는 최고경영자의 발표까지 있었던 메디슨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노리는 세력에게 훌륭한 먹잇감으로 비쳐졌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주가관리용 자작극’ 시각도 그러나 증권가 한쪽에서는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위기에 몰린 메디슨이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엄살을 떨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멀쩡한 기업이 왜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망신살을 자초하겠느냐”며 “메디슨의 인수합병 시나리오가 지금 이 시기에 불거져 나올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기평의 신용등급 하락 뒤 7200원까지 떨어졌던 메디슨 주가는 인수합병설이 불거지고, 회사쪽이 여기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히면서 오름세로 돌아서 23일 9930원을 기록했다.
주가관리용이었다면 꽤나 성공한 셈이다.
이에 대해 메디슨 박형준 홍보팀장은 “적대적 인수합병설을 스스로 인정한 것 자체가 절박한 상황에서의 방어전략이다”고 반박했다.
증권가에서는 “메디슨이 약속한 대로 대주주 및 임원 지분을 늘리고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사들인다면 투자자들을 현혹했다는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동원증권의 KTB 인수합병설도 의문투성이 메디슨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동원증권이 KTB네트워크를 통째로 사들이기 위해 지분을 매집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동원증권쪽 우호 지분이 30%에 이르는 반면, KTB네트워크의 모회사인 미래와사람과 권성문 사장의 지분은 20%를 밑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적대적 인수합병설이 일파만파로 번진 것이다.
결국 동원증권 소유주인 김재철 회장의 아들 김남구 부사장이 23일 KTB네트워크 권성문 사장을 만나 “적대적 인수합병을 하려는 의사가 없다”며 사과하면서 사건은 표면상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 일은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 있어, 언제 불씨가 되살아날지 모른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이다.
우선 동원증권이 KTB네트워크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인 시점이 관심거리다.
동원증권 김용규 사장은 “지난해 말부터 KTB네트워크 주식을 꾸준히 매집했으며, 9일 80만주, 21일 325만주를 사들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KTB네트워크는 지난 4월 증권거래소에 주가관리를 위해 자사주 650만주(10.8%)를 사들이겠다고 공시한 뒤, 5월 8일~6월 15일 사이 주식을 매집해 주가가 최저 6천원대에서 1만3천원대까지 뛰어올랐다.
동원증권은 KTB네트워크의 주가가 상당히 오른 상태에서 대량매수에 나선 셈이다.
김 사장은 이에 대해 “여전히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해 사들였다”고 말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동원증권이 사들인 주식이 누구 소유였느냐도 관심을 끈다.
21일 325만주를 장중에 무작위로 사들였다면 KTB네트워크의 주가가 바로 상한가에 돌입했을 법한데, 오히려 400원 떨어지면서 장을 마감했다.
누군가가 동원증권의 매수주문에 맞춰 일정한 가격에 매도주문을 내줬다는 얘기다.
증권가에서는 이전에 KTB네트워크 주식을 매집한 일이 있는 태영 등을 후보로 꼽는다.
증시 한 쪽에서는 “동원증권이 지난해 말부터 KTB네트워크 주식을 사모으다가 주가가 너무 떨어지자 단순히 ‘물타기’를 시도했던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동원은 지난 달까지 KTB네트워크 주식 300여만주를 사둔 상태였는데, 평균매입가격이 1만4천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물타기를 위해 사들인 주가가 너무 비싸다는 점에서 여전히 설득력있는 설명은 아니다.
동원증권은 21일 이후 이틀만에 30억원 정도의 평가손실을 입었고, 그 속내는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있다.
KTB네트워크 쪽에서는 “동원증권이 주식을 대량매집해 경영권을 빼았거나, 이것이 어렵다면 경영권에 압박을 가하면서 KTB네트워크에 비싸게 팔려는 그린메일(Green Mail)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니냐”고 해석하면서 동원증권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 하반기 증시 테마로 메디슨과 KTB네트워크의 인수합병설이 아니더라도, 적대적 인수합병이 하반기 증시의 주요 테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인터넷 기업의 수익모델 논란이 업계 재편으로 이어지리라는 점은 이미 예견돼왔다.
여기에 정부가 투신사 상품에 특정 종목을 50%까지 편입할 수 있는 주식형 사모펀드를 허용하면서 분위기가 뜨기 시작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인수합병 전용 공모펀드까지 허용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수익모델 논란으로 적대적 인수합병 분위기가 형성됐다면, 펀드로 적대적 인수합병의 수요기반까지 마련되는 셈이다.
적대적 인수합병은 일단 대상 기업 주가에는 호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수합병 테마가 들썩거릴 때마다 뚜렷한 근거없이 오르는 ‘단골 인수합병주’들은 이제 가려서 투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주 주식형 사모펀드 허용 소식에다 메디슨과 KTB네트워크의 인수합병설이 겹치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골드뱅크, 인터파크, 프로칩스 등이 유력한 대상으로 거론돼 연달아 상한가 행진을 펼치기도 했다.
이들 종목 대부분은 지난 3월 주총 직전에도 적대적 인수합병 대상주로 거론되면서 ‘반짝 상승’하기도 했지만, 결국 사실무근으로 드러나면서 주가가 추락했다.
분위기가 짙어갈수록 ‘숭어’와 ‘망둥이’를 가려낼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컴, 지주에서 몸통으로 변신? 한글과컴퓨터의 ‘인터넷 기업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는 지주회사’를 향한 꿈이 방향을 틀 전망이다. 한글과컴퓨터 관계자는 “자회사 네띠앙과 하늘사랑을 합병해 거대 인터넷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최근까지만 해도 각종 자료를 통해 “한글과컴퓨터는 네띠앙, 하늘사랑 등 우수한 인터넷 기업을 ‘형제회사’로 갖고 있다는 강점을 살려, 느슨하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확장해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인터넷 지주회사를 지향하겠다는 뜻이었다. 왜 갑자기 기업전략의 방향타가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증권가에서는 한글과컴퓨터의 대주주인 메디슨이 보유지분을 팔겠다고 밝힌 것과 무관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매각의사를 공개했으니 다음 수순은 기업가치를 높여 최대한 높은 값을 받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형성되는 주가다.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스핀오프 등의 형식으로 사업부문을 외부로 내보내온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본체의 덩치를 키우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는 얘기다. 한글과컴퓨터 이성훈 재무이사도 “당장은 지주회사를 주식시장에서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합병을 검토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주식시장에서는 네띠앙과 하늘사랑 합병을 호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실제로 네띠앙과의 합병설이 퍼진 지난 20~21일 한글과컴퓨터 주가는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글과컴퓨터가 ‘검토중이나 확정된 것은 없다’는 애매한 입장을 밝히면서 22일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랬다가 한글과컴퓨터-네띠앙-하늘사랑 3자 대통합을 추진한다는 소식(23일치 22면)이 전해진 23일 다시 상승세로 바뀌었다. 메디슨 및 관계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한글과컴퓨터 지분은 모두 960만주(19.7%) 규모인데, 현재 SK, 삼성,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넷 등이 여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527만4천주는 지난달 18일 해체된 무한벤처투자조합 1호가 갖고 있던 지분이므로 벤처투자조합의 3개월 매각제한 규정에 따라 8월17일까지는 어차피 팔 수 없게 돼 있다. 지분을 실제로 넘기기까지는 한달반 이상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한글과컴퓨터와 메디슨은 그 기간 동안 최대한 가격을 올려보겠다는 속셈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인 사업상 시너지 효과를 따져보지 않고 단기적으로 주가를 높이기 위해 인수합병을 무리하게 추진하면 더 큰 부작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엘지증권 리서치센터 이왕상 선임연구원은 “사실 네띠앙과 한글과컴퓨터를 합병한다고 시너지 효과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3자 대통합이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합병결정 뒤 실제 합병이 이뤄지기까지는 5개월여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어서, 시너지 효과는 더욱 긴 시간이 지나야 나타나게 된다. 이원재 연구기자 wjlee@dot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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