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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시내전화 시분제
[IT타임머신] 시내전화 시분제
  • 유춘희
  • 승인 2000.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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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썼으면 쓴대로 돈을 내야지
전화기만 들면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은지 30분을 족히 떠들어대는 수다쟁이가 있다.
밖에서 급한 전화가 걸려올 수도 있으련만, 그런 건 나몰라라다.
초인종이라도 울려 마지못해 전화기를 내려놓게 되면 마지막 말이 가관이다.
“그래…,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만나서 하자.”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웃음을 자아내던 시절의 코미디 한토막이다.


89년 말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 집계로는 이런 얌체족들이 전체 통화자의 13%에 이르렀다.
가정용 시내전화의 경우 1분을 통화하든 1시간을 통화하든 똑같이 25원의 요금을 적용한 탓이었다.
87%의 예의바른 통화자 입장에서는 속상하는 일이었다.
가정용 시내전화는 당시 공중전화나 시외전화, 국제전화, 카폰 등에 적용한 시분제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살아도 25원만 내면 됐다.
통신공사는 88년 말부터 ‘시내전화 시분제’를 시행하겠다고 줄곧 건의했지만, 경제기획원은 소비자 물가인상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번번이 기각했다.
그러다 드디어 90년 1월1일, 한국 전화사의 새로운 장을 연 시내전화 시분제가 도입됐다.
통화시간에 상관없이 한건당 25원씩 부과하던 전화요금을 3분마다 25원씩 가산하도록 했다.
3분까지는 25원, 3~6분까지는 50원, 6~9분은 75원을 물렸다.
통신공사는 시내전화 시분제를 ‘통신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선전했다.
선진국 32개 나라가 시분제를 실시하고 있고, 전화가입자 순위 10위 안에 드는 나라 가운데 이 제도를 실시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강조했다.
선진국이 거의 절대선이던 시절에, 통신공사의 지속적인 홍보까지 겹쳐서인지 국민들은 이 제도의 시행을 기꺼이 수용했다.
이용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피시통신 가입자들은 분연히 떨쳐일어났다.
하루에 30~60분 정도 통신을 한다 치고 3분에 25원씩 가산할 경우 250~500원이 들고, 한달이면 7500~1만5천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통신이용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학생들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곧바로 통신공사를 비난하는 글들이 게시판을 채웠다.
공교롭게도 90년은 통신공사가 ‘정보통신 육성의 해’로 정하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던 때였다.
피시통신을 죽일 거냐는 비난을 감당하지 못한 통신공사는 두달 뒤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야간(오후 9시부터 오전 8시까지)과 공휴일에는 전화요금을 4분18초마다 25원씩 물리겠다는 거였다.
결국 요금을 30% 인하한 셈이다.
5월에는 10대 도시의 시내통화 기본료를 3000원에서 2500원으로 내렸다.
그리곤 앞으로 시내전화 요금은 올리되 시외전화 요금을 점진적으로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어쨌든 시분제 실시로 한국통신은 시행 첫해 700여억원의 초과수익을 올렸다.
피시통신 요금제도는 90년대 중반 획기적으로 바뀐다.
이동전화 회사처럼 피시통신 회사마다 014XY라는 식별번호를 주고, 이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경우는 교환기가 자동으로 피시통신임을 알아채고 통화료를 시내요금의 반으로 낮춰줬다.
“시분제는 정보통신 문화를 죽인 광주사태”
통신공사의 시내통화 시분제 실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였다.
전화가 쌀밥을 먹는 것이라면 피시통신은 양식을 먹는 것이라며, 양쪽을 똑같이 대우해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시통신 마니아의 통신공사 규탄은 제발 몇년만 연기해달라는 애교섞인 항의에서부터 통신공사 건물을 폭파하겠다는 협박까지 있었다.
실제로 시분제가 실시된 90년 1월, 데이콤 피시서브는 시범운영 당시 가입자가 5천여명에 이르렀지만 비용에 부담을 느낀 대부분의 가입자가 탈퇴해 20%만 남았다.
1만3천여 가입자가 있던 한경KETEL은 하루 평균 이용자가 제도 실시 이전엔 3천여명에 달했으나, 1월 초 15%가 감소하고 평균 사용시간도 40% 이상 줄어들었다.
통신문화의 꽃으로 불리던 사설 BBS(전자게시판)는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했다.
당시 피시서브와 한경KETEL 게시판에 쏟아진 항의 메시지는 이런 것들이었다.
먼저 “시분제는 정보통신 문화를 죽인 광주사태”, “통신공사는 공익기관이 아닌 사익기관”, “개떼(통신공사)들은 자폭하라” 등의 섬뜩한 문구들이 난무했다.
“통신공사 사장에게 항의 편지를 띄웁시다”, “시분제 홍보에 대응하는 광고를 내기 위해 전국민 모금운동을 벌이자” “국민이 주주가 되는 민간 전기통신회사를 세웁시다” 등의 여론환기형 메시지도 잇따랐다.
그리고 “공중전화 낙전은 꿀꺽 삼키면서 공정성 주장하지 말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 항의가 먹혀들었는지 나중에 통신공사는 낙전 수입을 학교 컴퓨터 보내기 운동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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