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3일, 게임 마니아들과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PS2)가 선을 보였다.
언론들은 PS2가 일본 게임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흥분했다.
소비자들이 며칠 전부터 장사진을 친 채 대형 판매점 앞에서 밤을 꼬박 지새는 풍경도 연일 전파를 탔다.
DVD(디지털다기능디스크)를 탑재한 PS2는 고화질의 생생한 화면을 제공했다.
야구 게임을 할 경우 먼지가 일어나는 게 보일 정도로 그래픽이 뛰어났다.
한 게이머는 “내가 마치 경기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일본 게임시장이 PS2 판매 개시로 호경기를 누릴 것이라는 예측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여가 지난 지금, 일본의 게임 업체들은 참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게임 소프트웨어 소비자 가격은 내림세를 보이고 있는데,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비는 거꾸로 상승하고 있다.
일본의 게임 업체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런 현상을 불러온 주범 가운데 하나가 바로 PS2라는 점이다.
PS2의 등장으로 ‘플레이스테이션1’(PS1)용 소프트웨어는 철지난 과일이 돼버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PS2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는 초기 투자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간다.
개발비를 줄일 수 있는 라이브러리가 아직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PS2 출시로 부흥을 손꼽아 기다려온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들로서는 되레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사용자 한명이 구입하는 게임 소프트웨어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 도 일본 게임 업계를 힘들게 하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한마디로 용량의 증가다.
처음 수킬로바이트에 지나지 않았던 소프트웨어 용량이 이제 DVD를 탑재한 PS2의 5.4기가바이트에 이르기까지 터무니없이 증가하고 말았다.
따라서 하나의 게임을 정복하는 데 전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만큼 다음 게임을 사기까지의 시간도 길어지는 것이다.
신규 사용자 확보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어린이(초등학생 이하)들의 게임구매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전반적으로 게임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어려워지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아이들은 이제 게임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있는 추세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상대적으로 어린이층에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던 닌텐도가 무너지고 있는 게 단적인 예이다.
장기적인 시장상황을 내다본다면 게임 업계로서는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 때문에 일본 게임 업체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단가는 소비자들의 반발을 고려할 때 올리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소프트웨어 가격은 라이선스를 포함해 모두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장악하고 있다.
게임 업체들은 소프트웨어 단가를 올리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이익을 올리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 게임 업체들이 요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 네트워크 게임이다.
한국은 이미 피시방을 중심으로 많은 네트워크 게임이 실용화돼 있지만 일본은 아직 시작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네트워크 게임은 통신사용료나 회비로 추가 이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게임 업체로서는 매력적이다.
일본 게임시장은 95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일본 언론과 게임 업체들이 PS2의 출시에 그렇게 열광했던 것도 그런 추세의 반전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PS2의 출시는 되레 게임 업계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게임 업계의 속앓이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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