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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동서양 IT 인력 쟁탈전
[포커스] 동서양 IT 인력 쟁탈전
  • 최욱(와이즈인포넷연구원)
  • 승인 2000.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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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당기기’에 아시아 국가 ‘지키기’ 비상…장기적인 경제성장과 직접 연관 정보기술(IT) 인력을 둘러싼 세계대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과 독일, 영국 등은 이미 외국 IT 인력 유치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하고 앞으로 닥쳐올 IT 인력난에 대비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에 IT 인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지난 10월 외국 IT 인력에 할당되는 ‘H-1B’ 비자 쿼터를 기존의 11만5천장에서 19만5천장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H-1B 비자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IT 관련 학위를 취득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다.
3년 만기이며 1회에 한해 3년간 더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선진국, 비자발급 확대 등 인력수입 공세 독일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 연정 주도로 IT 인력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일은 노동시장의 경직성 때문에 IT 인력난이 유럽에서도 가장 심한 편이다.
독일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 IT 인력에 시민권을 발급하기로 하고, 향후 3년간 그 대상을 2만명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독일은 또 오는 2006년까지 1천만명에 이르는 초·중·고교생 전원에게 노트북PC를 배포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중장기적으로 IT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이다.
영국 역시 이러한 움직임에서 예외는 아니다.
영국은 외국 IT 인력에 대한 취업허가 규정을 완화하기로 했으며, 이와 관련된 조처를 올해 예산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오는 2003년까지 영국에서 추가로 필요한 IT 인력은 3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IT 선진국들이 관련법을 개정하면서까지 IT 인력을 수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숙련된 IT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정보기술협회(ITAA)가 지난 4월에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올 한해 약 84만명의 IT 인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IDC는 유럽의 경우 오는 2003년까지 약 200만명의 IT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 선진국은 어디서 IT 인력을 수입한다는 것일까? 인도와 중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국가들이 핵심 타깃이다.
특히 인도는 IT 인력의 보물창고다.
지난 95∼98년 사이 미국의 전문직 비자발급 대상자 중 45%가 인도 출신이다.
이번에 의회를 통과한 H-1B 비자발급 확대로 향후 3년간 미국으로 수입될 약 60만명의 외국 IT 인력 가운데 인도인이 차지하는 숫자는 무려 24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중국 역시 인도만큼은 아니지만 H-1B 비자발급안 개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95년에서 98년 사이 실리콘밸리에서 인도와 중국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9%에 이른다.
이들 외에도 싱가포르, 한국, 홍콩, 대만 등이 선진국들이 선호하는 국가들이다.
주요 기업들은 인도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유수의 대학에 이미 유혹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인력공동화 현상 선진국들의 인력 빼가기에 아시아 국가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사실 지금까지 아시아 국가들은 IT 인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들의 인력수입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스톡옵션이나 특별상여금, 교육기회 제공 등 아무리 좋은 당근(?)을 줘도 외국으로 떠나는 인력은 늘어만 갔다.
이런 사태에 가장 먼저 대응책을 마련한 국가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미국처럼 IT 인력 수입에 큰 비중을 두고, 이를 주도하기 위해 정보개발청(IDA)을 신설했다.
IDA는 싱가포르의 IT 인력 수요가 매년 1만명씩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 가량을 외국에서 수입할 계획이다.
IDA는 지난 8월 전세계에서 연간 25만명의 IT 인력을 양성하는 인도 NITT와 계약을 맺고, 매년 1천명의 IT 인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인도 역시 인력 부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인도가 오는 2008년까지 필요로 하는 IT 인력은 모두 220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올해 배출될 인력은 20만명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선진국들에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다.
이에 따라 인도는 오는 2005년에는 연간 50만명의 IT 인력을 배출한다는 목표 아래 6억5천만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주류집단인 말레이 인종의 텃세 때문에 말레이시아에 진출한 외국 IT 인력은 전체 IT 인력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 중 절반을 인도 출신이 차지한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외국인을 들여오기보다는 외국에 진출한 자국민들을 다시 데려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외국 IT 인력 중 51%가 말레이시아인이다.
중국은 최근 주요 IT 분야에서 100개 대학을 선정해 고급 IT 인력을 육성하는 ‘프로젝트21’ 계획을 마련했다.
타이에서는 업계와 대학이 자체 IT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며, 동유럽 IT 인력을 수입하기 위해 비자제한 조처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홍콩 역시 IT 장비 부문과 교육에 7억5천만달러를 투자하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상태다.
아시아 국가들이 IT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취한 이같은 조처들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IT 인력을 수입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력을 수입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IT 분야는 신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축이기 때문이다.
IT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경제성장의 동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기계가 생산성을 결정했으나, 정보화로 대변되는 신경제에서는 인력이 생산성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기업들이 충분한 IT 인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생산성이 둔화되고 경쟁력이 약화되며,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세계적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오라클 등이 의회에 로비를 해가면서까지 H-1B 비자발급 숫자를 확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외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조성이 급선무 과거 노동력 수입정책은 IT 인력 확보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아시아와 같이 민족적 동일성을 중시하는 지역에서는 무엇보다 외국 인력에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새로운 이민정책이 먼저 수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민정책 성공이 IT 인력 확보 경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 이민을 장려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불합리한 사회적 인습을 줄이거나 없애야 하며, 도시의 전반적인 인프라 수준을 제고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개선해야 한다.
민간기업 차원에서는 높은 임금을 통한 여유로운 생활수준 보장, 교육을 비롯한 각종 혜택 제공 등 좋은 작업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주위 여건을 아무리 개선해도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환경이 유지된다면 얻을 게 없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나라에 이민갈 리 만무하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은 우선적으로 외국 IT 인력 유치를 위한 제반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자국 출신 IT 인력을 육성하고, 이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유인책도 마련해야 한다.
만약 이런 IT 인력 확보계획을 수립하지 못한다면, 아시아 국가들은 20세기에 그랬듯이 21세기에도 또다시 세계무대에서 패배자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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