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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밤샘 근무해야 벤처? "우리는 밤샘 없다"
[직업] 밤샘 근무해야 벤처? "우리는 밤샘 없다"
  • 오철우
  • 승인 2000.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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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이 직원들의 밤샘 근무와 야근을 말린다면? 퇴근시간이 따로 없고 밤새 일하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는 요즘 벤처기업들 사이에선 아마도 ‘천하태평 벤처’라고 오해를 살 법도 하다.
정시 출퇴근제를 5년째 시행하고 있는 디자인 벤처기업 씨투디투(대표 윤영기)는 시간관리만큼은 빈 틈이 없다.


일거리가 적어서 그런 건 아니다.
하루 100만 페이지뷰와 등록회원 30만명의 대형 웹사이트 정글 www.jungle.co.kr을 운영하고, 전자상거래와 각종 이벤트 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조만간 코스닥 등록을 예비할 정도로 견실한 기업 축에 든다.
전부서 정시 출퇴근제 정착 “밤샘과 야근을 해야 벤처처럼 비춰지는 게 현실이죠. 그러나 지식집약산업에서 밤샘 근무는 장기적으로 직원들의 체력과 아이디어를 갉아먹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윤 사장은 “근무시간을 합리적으로 쪼개고 관리할 수만 있다면 밤샘 근무는 구태여 필요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이 회사는 정시 출퇴근제 외에 체력단련비 지급, 주5일 근무 등을 함께 시행하고 있다.
아침 8시께 씨투디투의 5층 건물 전체가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50여명의 직원이 아침 8시나 9시로 나눠 모두 출근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없다.
9시 무렵 부서와 팀별 회의가 열리고, 주요한 업무는 될수록 오전에 처리한다.
퇴근은 저녁 6시 또는 7시께. 저녁 8시면 분주하던 사무실은 직원들이 빠져나가 이내 썰렁해진다.
“요즘엔 코스닥 등록을 앞두고 일거리가 많아져 야근이 조금 늘었지만, 야근하는 직원들도 저녁 9시, 10시쯤이면 모두 퇴근합니다.
” 기획팀장 장경아(31)씨의 말이다.
디자인팀 주임 김재욱(30)씨는 “아침에 업무집중도가 높아 하루 일거리의 대부분을 오전에 끝낸다”며 “오후엔 주로 외근이나,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찍 퇴근하니까 많은 직원들이 여가생활을 즐기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학원에 다닌다”고 소개했다.
정시 출퇴근제는 밤샘 근무에 익숙한 엔지니어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술개발팀은 지난해 초까지 정시 출퇴근제의 예외로 인정받았으나, 기획팀 등 다른 부서와 업무시간이 어긋나는 불편 때문에 점차 근무시간을 바꿔 올해부터는 모두 정시 출퇴근하고 있다.
홍승연(31) 팀장은 “처음엔 미혼의 ‘올빼미족’들이 아침 출근에 적응하지 못해 무척 애를 먹었다”며 “2~3개월 뒤까지 업무계획을 치밀하게 짜기 때문에 업무시간을 적절하게 나누면 낮 근무만으로도 일처리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벤처기업에서 그 흔한 밤샘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여러 근무조건들이 함께 어울려야 한다.
먼저 한두 부서만 정시 출퇴근을 해선 곤란하다.
관련성이 높은 부서들의 업무시간을 맞추려면 출퇴근 시간도 될수록 맞춰야 한다.
게다가 낮시간의 업무집중도를 높이려면 업무 계획과 일정을 정교하게 짜놓고 관리해야 한다.
갑작스럽게 일거리가 몰리면 밤샘근무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영자 입장에선 얼마나 일했는가가 아니라 업무성과만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이 회사는 예전엔 1년, 나중엔 6개월마다, 그리고 요즘엔 3개월마다 개인의 업무를 평가해 연봉계약과 인센티브 성과급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 윤영기 사장 “일하는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밤샘 근무를 자주 하면 사람의 체력에도 한계가 있고, 그러면 노동집약이 아닌 지식집약산업에서 질 높은 노동을 기대하기 힘들다.
적당한 휴식이 있어야 직원들도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일은 즐거워야지 넌더리나게 해서야 되나. 불가피하게 밤샘 근무가 필요하면 밤샘 근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회사 방침이 아니며, 실제로 밤샘 근무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 벤처기업에선 흔히 오전 늦게 출근하고, 점심 먹고 일을 시작해 퇴근시간도 불분명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미국에선 초과 근무라는 게 없다.
휴일에도 정확하게 쉰다.
이는 달리 말해 근무하는 시간엔 집중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며, 근무시간을 위해 쉬는 시간도 철저히 지킨다는 뜻이다.
경영자는 직원들이 더 많이 일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내게도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지식산업에선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지식노동을 할 근무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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