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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원조 대 토종, 음악방송 춘추전국
[비지니스] 원조 대 토종, 음악방송 춘추전국
  • 이경숙 기자
  • 승인 2001.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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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스타TV 잇따라 국내 진출… 기존 국내 채널과 경쟁 치열할 듯
베이징의 한 호텔에 여장을 푼 조아무개(44) 부장은 무심코 텔레비전 전원을 켜고는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딸과 함께 봤던 싸이의 <끝>이란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위성방송 채널V의 ‘서울소닉’이란 프로그램이었다.
뱃살이 출렁거리도록 경망스레 몸을 흔들어대는 싸이의 모습도 먼 땅에 와서 보니 나름대로 귀엽게 느껴졌다.
조 부장은 혼자 씨익 웃었다.
‘중국 애들도 이런 가수를 좋아하려나.’어쩌면 한국에서도 음반 발매와 동시에 전세계에서 주문이 쏟아져들어오는 히트앨범이 나올 날이 올지 모른다.
세계적 음악방송인 채널V와 MTV가 각각 6월18일과 7월1일에 잇따라 한국 방송을 시작했다.
채널V코리아는 국내 굴지의 음반제작·유통사인 도레미미디어와 루퍼트 머독의 스타TV가, MTV는 OCN 등 케이블채널을 운영중인 온미디어와 세계 1위의 미디어그룹 비아콤이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국내 케이블 음악채널 ‘긴장’ 미국 팝 문화의 상징인 MTV는 세계 140여개국, 3억3천만 가구가 시청하는 대표적 음악엔터테인먼트 브랜드다.
스타TV 역시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53개국, 3억 가구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7개 언어, 30개 채널로 방송을 하는 유력한 위성방송사다.
이들의 등장으로 우리나라의 음악팬들은 양질의 외국 음악프로그램을 우리 말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뮤지션들은 국경 없는 위성주파수를 타고 전세계에 소개되는 기회를 얻게 됐다.
선발주자인 엠넷(M·net)과 KMTV이야 이들의 진출이 반가울 리 없다.
‘토착 브랜드’들은 세계적 음악방송의 도전장에 바짝 긴장하면서도 은근히 자신감을 나타낸다.
두 방송사는 가요 중심인 한국의 음악 상황에서 자기들이 오랫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신설회사들이 쉽게 따라잡지 못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는다.
MTV 한국법인 설립 전에 MTV 프로그램을 5시간 가량 방영했던 엠넷의 한 관계자는 엠넷의 가요 프로그램과 MTV의 팝 프로그램의 시청률 격차가 상당히 컸다고 귀띔한다.
실제로 우리 음악팬들은 이미 가요를 심하게 편애하고 있다.
IMF 구제금융 체제 이전 전체 음반 판매의 30% 정도 차지하던 팝 음반은 최근 20%대로 떨어졌다.
대신 60% 정도이던 가요 음반은 70%까지 점유율이 높아졌다.
기획사나 음반사들이 재고 부담이 큰 팝 음반보다는 ‘대박’ 가능성이 높고 재고부담이 적은 가요음반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MTV와 채널V는 토착화와 차별화에 한국 진출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MTV는 가요와 팝의 편성비율을 70 대 30으로 하겠다고 밝힌다.
가요 비디오는 자체 제작을 원칙으로 하고, 팝은 전세계 MTV 네트워크가 보유한 양질의 콘텐츠를 이용해 방송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채널V는 국내 제작물과 스타TV네트워크에서 공급받는 콘텐츠를 60 대 40으로 편성한다.
또 10대 취향의 댄스음악에 치중하고 있는 엠넷, KMTV와는 달리 30, 40대를 겨냥한 프로그램을 적극 편성할 계획이다.
이 중 몇몇 프로그램은 기존 채널에서 볼 수 없는 성인 취향의 편안한 분위기로 꾸밀 예정이다.
토착 브랜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엠넷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열심히 세력권을 확대하고 있다.
엠넷은 최근 홍콩미디어그룹 TVBI와 프로그램 수출 계약을 맺었다.
또 6월17일부터는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5300만 시청가구를 보유한 중국어 위성방송 TVB8에 한국가요 순위 프로그램 ‘가요베스트27’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부터 일본 음악방송 스페이스샤워에 방영하고 있는 ‘엠넷 코리안 웨이브’는 시청률 5위권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차오디오 제작업체 현대오토넷이 운영하던 KMTV는 디와이미디어에 인수되면서 ‘만년 2위 벗어나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디와이미디어는 음반제작·유통업체인 대영에이브이가 95% 출자한 계열사다.
이로써 KMTV는 조용필, 윤시내, 015B, 신해철 등 관록있는 유명가수를 배출한 20년 역사의 음반제작사를 든든한 배경으로 갖게 되었다.
대영에이브이로선 매체를 확보해 스타 개발이나 음반 홍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음반 판매량에 영향력이 큰 뮤직비디오를 안정적으로 틀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음반사한테 음악방송이라는 카드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전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된다면 가요음반시장을 세계로 확대시키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시너지를 노리는 건 KMTV-대영에이브이 커플만은 아니다.
조성모, 김건모, 드렁큰타이거 등을 거느리고 있는 도레미미디어 역시 이런 효과를 노려 99년부터 일찌감치 스타TV에 프로포즈를 해놓았다.
비록 위성방송 채널사업자 선정에서 탈락되었지만 예당엔터테인먼트도 여전히 음악방송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콘텐츠 양과 질 높아질 것 음반사에게 음악채널 진출은 만약의 추락에 대비해 안전망을 쳐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음반판매시장의 성장률은 날로 둔화되고 MP3 등 쌍방향 서비스는 나날이 발전한다.
음반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매체를 갖는 것은 큰 안도감을 준다.
대영에이브이 임경민 이사는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디지털 매체가 계속 발달하고 있는데 어떤 기술이 어떤 시장을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습니까. 환경 변화에 대비해두는 차원에서 매체를 보유하기로 한 겁니다.
” 한국디지털위성방송 공희정 부장은 이런 시장 변화의 효과가 두가지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본다.
우선 음악채널과 음반사들을 중심으로 음악시장이 라인업되면서 양쪽 사업의 효율성과 전문성이 높아진다.
또 세계적 음악방송이 진출하면서 국내 음악방송 시장경쟁이 치열해진다.
“물론 과다경쟁으로 방송의 선정성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쟁은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게 될 겁니다.
” 베이징호텔에 누운 40대의 조 부장이 싸이의 <끝> 대신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감상할 날이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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