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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IMT-2000 표준전쟁 미래가 없다
[정보통신]IMT-2000 표준전쟁 미래가 없다
  • 함석진(한겨레디지털부)
  • 승인 2000.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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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 업계 이전투구… CDMA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동기식(미국식)이냐 비동기식(유럽식)이냐.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표준전쟁이 터졌다.
표준을 잡으면 살고 놓치면 죽는다.


사업권을 노리는 업체나 시장이 달린 장비업체들의 관심은 온통 표준에 쏠려 있다.
이들은 정부와 경쟁업체의 동향에 귀를 쫑긋 세우고 이런저런 시나리오에 맞게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여념이 없다.
누가 승자가 될 것인가.12월 말 사업자 최종 선정 우리나라 차세대 이통통신의 표준 선정은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7월5일 당정회의와 6일 국회 상임위원회 및 공청회를 열어 의견수렴 작업을 마친 뒤 10일 사업자 수, 선정방법과 함께 문제의 표준을 발표한다.
이후 9월 말까지 허가신청을 접수하고 12월 말 사업자를 최종 선정한다.
산업경쟁력과 소비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저마다의 표준을 주장하지만, 한꺼풀만 벗겨보면 하나같이 장삿속이 깔려 있다.
정부도 업체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에 휘둘리면서 뚜렷한 방침을 정하지 못한 표정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자칫하다간 디지털 이동통신 표준으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를 도입한 것처럼, 당장 몇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일단 공청회와 정보통신정책심의회, 업계의 의견을 바탕으로 동기-비동기 복수 표준방식으로 방침을 좁혔다.
하지만 표준방식을 업체들이 스스로 고르도록 할지, 정부가 개입할지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똑 떨어지는 답변을 피해왔다.
정부는 최근까지 사업자들이 함께 모여서는 제목소리를 못 낸다며, 정통부로 업체 관계자들을 따로따로 불러 의견을 들었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갈린 의견만 확인했을 뿐이다.
안병엽 정통부 장관은 6월26일에야 국회 상임위 답변에서 “표준은 업체들이 스스로 정하며 (정부가 개입하는) 행정지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과연 끝까지 ‘중립’을 지킬 수 있을까 의문을 다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발표날짜가 다가오면서 정부는 비동기식을 선호하는 한국통신에 동기식 선택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업체들이 하나같이 비동기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업계 자율선택으로 놔두면 사실상 비동기 표준으로 단일화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통신, 엘지, 한국IMT2000 등 복수표준을 주장하는 업체들은 모두 비동기식을 선호하고 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눈치를 살피느라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다가 최근 들어 비동기식으로 돌아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고민이 깊어간다.
국내 시장이 비동기 단일방식으로 통일되면 당장 퀄컴을 등에 업은 미국 정부의 통상압력이 걱정스럽다.
2002년에 차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우리 단말기와 장비로 ‘성대하게’ 시작해야 하는데, 개발시작 시점이 늦은 비동기식으로는 자신이 서질 않는다.
그동안 동기식 개발에 쏟아부었던 수천억원의 돈을 날린다면 그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2002년은 월드컵과 대선이 걸려 있는 해이다.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정부는 동기식을 포기하면 그동안 축적해온 CDMA 기술과 노하우가 사장될 우려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기술을 상용화했다는 ‘치적’에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는 욕심이 배어 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한 정보통신 전문가는 “정부가 비동기식 기술개발을 늦게 시작했다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동기식에 집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CDMA를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한 성과는 인정하더라도 그에 따라 잃은 것도 많아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기술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아졌고 점점 시장에서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지 않습니까?”(정보통신정책연구원 관계자) 수출효자 품목인 이동전화 단말기의 경우 이미 GSM 방식(유럽식)이 CDMA 방식을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업체쪽에서 보면 GSM 방식 단말기는 기술료 조건이 CDMA 방식보다 휠씬 유리해 단말기 한대당 높은 마진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GSM 방식 단말기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동기식 단일표준으로 결정되면 기술고립의 위험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동기식 시장의 진출을 위한 내수기반 확보와 글로벌 로밍을 위해 비동기식 도입은 필수적이에요. 이제 정부도 책임회피 식의 태도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정보통신의 세계 흐름에 발맞춰 나가는 용기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시점입니다.
” 20년 넘게 정보통신 분야를 거친 한 전문가의 충언이다.
업계는 비동기식으로 표준이 단일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차세대 이동통신사업자 가운데 한곳은 동기식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주도면밀하게 움직이는 곳은 단연 에스케이텔레콤이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애초 동기식 단일표준을 주장했다.
동기식으로 정해지면 국내 이동전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에스케이텔레콤으로서는 이점이 많다.
차세대 이동통신망에 대한 투자도 적절하게 분배하며 지금의 가입자 구도를 그대로 끌고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지국, 교환기 등 시설을 새로 들여야 하지만 본격적인 서비스는 2002년에야 들어간다.
그 전까지는 이미 10월달부터 깔기로 한 동기식 차세대 이동통신 초기단계인 IS-95C(MC-1x) 서비스로 가입자를 붙들어둘 수 있다는 계산이다.
IS-95C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방식(MC-3x)으로 전환하는 데에는 투자절감 효과도 크다.
하지만 에스케이텔레콤은 최근 전격적으로 비동기식으로 선회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정통부에 제출한 ‘기술표준 관련 에스케이텔레콤 의견’이라는 문건에서 △한·중·일 제1사업자간 로밍을 통한 신규수익 창출 △성장잠재력이 높은 중국 시장 진출기반 확보 △한·중·일 주요 사업자간 협력으로 기술개발과 로열티 협상 공동 대처 등을 내세워 비동기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에스케이텔레콤 비동기식 급선회 배경은? 에스케이텔레콤이 비동기식으로 급선회한 배경에 대해 업계에서는 한국통신을 동기식으로 유도하려는 데 따른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잇속도 챙기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해석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정통부는 애초 에스케이텔레콤을 동기식으로, 나머지 한국통신과 엘지를 비동기식으로 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에스케이텔레콤이 혼자서는 동기식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방침을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에스케이텔레콤이 비동기식을 선언하면 정부도 한국통신을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에스케이텔레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혼자서 동기식으로 가는 경우이다.
그렇게 되면 비동기식인 나머지 사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오히려 불리한 처지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정부가 에스케이텔레콤에 동기식을 지키라는 ‘임무’라도 맡기면 시장에서 ‘왕따’를 당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솔엠닷컴을 흡수한 한국통신프리텔과 엘지텔레콤이 비동기식으로 손을 잡으면 시장점유율이 42.4%(5월 말 기준)로 높아져 에스케이텔레콤-신세기통신의 57.6%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망 구축이 가능해 초기투자면에서도 단독망을 깔아야 하는 에스케이텔레콤을 압박할 수 있어요.”(에스케이텔레콤 관계자) 에스케이텔레콤은 비동기식은 이미 유럽과 일본에서 상용화 단계까지 마친 상태라 단말기나 시스템면에서 개발단계인 동기식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또 가입자들에게도 전세계 80% 국가에서 쓸 수 있는 비동기식을 버리고 국내용인 동기식 이동전화를 선택하라고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통신은 예상되는 정부의 동기식 압력에 벌써부터 방어선을 치고 있다.
“완전 민영화 일정까지 잡힌 마당에 정부가 동기식을 강요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통신 관계자는 “한국통신이 동기식으로 가면 에스케이텔레콤도 슬그머니 못 이기는 척하고 동기식으로 따라가 동기식의 이점을 취하면서 비동기식으로 혼자 남은 엘지진영을 고사시킨다는 전략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통신과 엘지텔레콤 진영은 바로 이런 시나리오를 가장 걱정하고 있다.
두 진영은 모두 2세대 이동전화에서의 약세를 털고 막강한 에스케이텔레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판을 새로 짤 수밖에 없어 비동기식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엘지텔레콤은 에스케이텔레콤과 한국통신이 동기식으로 가서 힘의 균형이 완전히 깨지면 혼자서 비동기식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진다.
엘지 IMT-2000사업단 이정률 상무는 “공동망을 구축해 투자비를 아낄 수 있는 장점도 사라지는데다 동기식 진영이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데 버틸 재간이 없다”며 “이렇게 되면 결국 국내 표준은 동기식으로 단일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 선정에서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이 바로 장비업체들이다.
표준은 곧 우리나라의 수출경쟁력과 정보통신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만큼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동기식 단일표준 주장 장비업체들 가운데선 삼성전자의 움직임이 가장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계속 동기식 단일표준을 주장하고 있다.
비동기식 시스템과 단말기 개발이 동기식보다 상당히 뒤처져 있기 때문에 국내 표준이 비동기식 위주로 가면 국내 시장을 완전히 빼앗기게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정통부에 제출한 정책제안에서 “비동기 방식은 핵심칩 등 부품과 소프트웨어 기반이 없어 전량 수입이 불가피하고 2005년까지 국산화율 50%를 달성하기도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열면 이미 상용단계에 들어간 일본과 유럽 단말기가 국내 시장을 석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국내 장비업체들이 이 정도까지 성장한 것은 우리나라가 CDMA 단일방식을 선택했던 영향이 큽니다.
세계 단말기 시장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핀란드 노키아와 스웨덴 에릭슨은 유럽 방식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어 방식이 다른 우리나라에는 아예 발을 붙이지도 못했어요. 2위 업체인 모토로라는 아날로그가 주력상품으로 남아 있는 미국 내수시장에 전념하느라 한국 시장에 힘을 집중하지 못하고 주문자생산방식을 통한 공략이 고작이었습니다.
”(단말기 제조업체 관계자)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정보통신 발전 속도에 비춰 시작이 늦었다고 미루면 계속 뒤처지게 된다”며 “장비업체들이 내수를 기반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장기적인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이제 보호 위주의 정책을 버릴 단계가 됐다”고 주장한다.
국내 서비스 기반이 전혀 없는 유럽 방식 단말기도 업체들의 노력만으로 외국에서 훌륭하게 성공을 거두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요즘 비동기식 장비개발에 온통 매달려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에야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한데다 최근엔 부쩍 인력난까지 겪고 있다.
따라서 비동기 표준 선정을 막는 게 삼성전자의 일차 목적이다.
그동안의 수출실적 등을 배려해 정부에 다시 한번 외국 업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엘지정보통신은 비동기식 장비개발에서 상당히 진척을 본 상태다.
단말기의 경우 몇몇 외국 업체와 핵심 칩셋 공동개발에 들어갔으며, 내년 말까지 단말기 완제품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또 시스템 장비부분에서도 삼성전자보다 1~2년 정도 앞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엘지정보통신 관계자는 “내년까지 시스템과 단말기 모두 상용제품을 내놓을수 있다고 하는데도 정부는 우리의 비동기식 기술 수준을 애써 폄하하면서 삼성전자만 싸고 돈다”며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제 퀄컴으로부터 독립할 때” 정부가 표준방식 선정을 늦췄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기술료다.
최대한 몸값을 올려 따낼 만큼 따내자는 전략이다.
하지만 퀄컴이 대표하는 동기식과 에릭슨의 비동기식 진영 모두 구체적인 기술료를 제시하지 않고 뜸만 들였다.
오히려 양쪽 모두 국내 사정을 꿰뚫어보는 듯 표준채택을 자신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그러자 이번엔 정부가 몸이 달기 시작했다.
“도무지 약발이 먹히지 않았어요. 몇번들 다녀가긴 했지만 기술료를 섭섭하지 않은 수준으로 해주겠다는 말뿐 숫자를 제시하는 곳은 없었어요.” (정통부 당국자) 게다가 사업권 신청 업체들은 “표준 선정을 늦춰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는데 왜 질질 끄는지 모르겠다”며 “표준이 늦어져 사업계획서 작성도 못 들어가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급기야 정통부는 표준방식을 7월 초 사업자 선정방법 발표 때 함께 하겠다고 방침을 전면 수정했다.
한 단말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동기식이든 비동기식이든 아직 세계 업체들의 창구가 단일화돼 있지 않아 구체적인 기술료 협상을 벌이기는 어려운 형편”이라며 “퀄컴이나 에릭슨과 기술료 협상을 마무리짓는다 해도 양 진영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특허보유 업체들과도 따로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기술료를 요구할 수 있는 업체는 동기식이 20곳, 비동기 진영은 27곳 정도로 알려져 있다.
퀄컴은 기술료를 요구할 업체가 비동기식보다 적다는 이유로 동기식을 적극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단말기 제조업체의 주장은 다르다.
“퀄컴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동기식 진영 참여업체들은 퀄컴과 크로스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있어 퀄컴 한곳에만 기술료를 지급하면 된다고 밝혔지만, 이는 IS-95C(2.5세대)기술까지만 가능하고 3세대 기술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모토로라, 알카텔 등 다른 업체들과도 기술료 협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나을 게 없어요.”(엘지정보통신 기술료 담당자) 비동기식 특허 보유업체들은 대부분 장비 제조업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업체들이 가지고 있는 특허와 상계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면 퀄컴은 기술료만을 받기 때문에 기술료를 크게 낮춰주지 않는 한 동기식이 우리나라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것이다.
퀄컴은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비동기식의 핵심특허도 보유하고 있는 점을 이용해 비동기식 기술료를 동기식보다 높게 책정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우리나라에 동기식 채택을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삼성전자, 현대전자, 엘지정보통신 등 국내업체들은 지난 93년 퀄컴과 맺은 기술계약에서 우리나라 업체가 개발한 기술은 퀄컴도 사용권을 갖도록 명시해 퀄컴에게 특허권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당시 계약이 지나치게 불평등하게 맺어졌다며 재협상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퀄컴은 전혀 뜻이 없다.
전직 정통부 고위 관료는 “시가총액 500만달러의 중소업체였던 퀄컴이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이냐”며 “옴짝달싹 못하게 하면서 한국을 계속 ‘봉’으로 여기는 퀄컴으로부터의 독립을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한국은 또 사고를 칠 것인가?
“한국은 또 한번의 도박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세계의 이목이 한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에 쏠려 있다.
한국은 지난 95년 디지털 이동전화 표준을 정할 때 세계 어느 나라도 쓰지 않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단일표준으로 정하는 엉뚱한 ‘사고’를 친 나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는 시분할방식(TDMA)의 디지털 이동전화를 쓰고 있었고, 이 방식의 채택을 주저하는 나라는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군사용 통신기술을 응용한 CDMA 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의 조그만 벤처기업 ‘퀄컴’과 손잡고 도박을 감행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에 가까웠어요. 어차피 우리에겐 아무것(기술)도 없었으니깐요. 안전하게 중간이라도 가느냐, 한번 일등을 노려보느냐는 선택이었습니다.
”(CDMA 도입 당시 업계 관계자) 예상은 적중했다.
그로부터 4~5년 만에 한국은 세계 CDMA 단말기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CDMA 종주국이라는 명성까지 얻는 대성공을 거뒀다.
한국이 CDMA 도입을 결정할 때 몇가지 전제가 있었다.
미국이 몇년 안에 CDMA 방식으로 통일될 것이고, TDMA 방식의 세계 시장도 모두 CDMA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만큼 CDMA 기술의 우수성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은 우리의 뜻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미국의 이동통신 시장은 아날로그 60%, TDMA 27%, TDMA에 뿌리를 둔 유럽 방식(GSM) 3%로 복잡하게 쪼개져 있다.
세계 시장은 GSM 방식이 승승장구해 전체의 80% 이상을 독식하면서 세력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예상이 정확히(?) 빗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이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는 세계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세계 어디서나 하나의 단말기로 상대방 얼굴을 보면서 통화할 수 있게 하자는 게 차세대 이동통신의 애초 목표였다.
하지만 CDMA와 GSM으로 양분돼 발전해온 세계 이동통신 시장은 이미 태생적으로 실패를 예고하고 있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노력에도 차세대 이동통신의 단일표준은 물건너가고, 결국 CDMA 계열의 CDMA2000과 GSM 계열의 W-CDMA를 포함해 무려 다섯개 방식이 무더기로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으로 지정됐다.
ITU가 기라성 같은 장비업체들의 입김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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