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6일은 생명공학이 새로 태어나는 날이었다.
인간의 유전정보인 ‘게놈’ 분석을 둘러싸고 경쟁을 벌여온 국제컨소시엄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민간기업 ‘셀레라제노믹스’가 유전자 염기의 배열지도를 공동으로 발표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경이로운 지도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신이 생명을 창조해낸 언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실험실은 없다 기업만 있을 뿐이다 인간 유전의 비밀을 밝혀줄 지도가 모습을 드러냄에 따라 앞으로 30억개의 염기서열과 10만여개의 유전자 기능을 규명해내려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누가 그 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돈과 기술이 없는 쪽이 패자가 된다는 것이다.
유전체 연구는 고가의 대규모 장비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생명공학 초기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소규모 실험실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다르다.
유전체 연구는 대량의 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대규모 자동화 장비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험실에서 기업으로 무대가 바뀐 것이다.
생명공학에 뛰어든 기업들은 정부와 경쟁하기도 한다.
실제 셀레라제노믹스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인간게놈프로젝트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았다.
기업들은 제휴나 합병을 통해 더욱 몸집을 불리고 기술개발의 속도를 높이고 있는 추세다.
이런 과정에서 대용량의 분석장비와 데이터 분석기술은 필수다.
셀레라제노믹스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는 하루 1억쌍의 염기서열을 규명해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컴퓨터 시스템을 24시간 돌린 결과다.
셀레라제노믹스는 한달에 10억개 이상의 염기서열을 분석해낼 수 있다고 한다.
셀레라(라틴어로 신속)라는 회사 이름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유전체 연구에 쓰이는 핵심장비로, 가장 먼저 대용량의 염기서열 분석장치를 꼽을 수 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주된 동력이 바로 염기서열 분석 자동화 장비다.
현재 퍼킨엘머가 개발한 기기(ABI PRISM 3700)가 셀레라제노믹스를 비롯한 미국 주요 연구센터에 설치돼 있다.
애머샴팔머시아바이오테크(Amersham Pharmacia Biotech)가 개발한 기기(MegaBase 1000)는 유럽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쓰인다.
최근엔 한번에 384개의 시료를 분석할 수 있는 대규모 시스템(RISA-384 System)이 일본에서 개발돼 다카라연구소와 리켄연구소 등에 설치될 예정이다.
염기서열 분석의 경우 누가 얼마나 많은 양의 시료를, 얼마나 빨리 분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어서, 이들 기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량 데이터를 누가 빨리 분석하나 경쟁 유전체 연구센터엔 대량의 시료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각종 기기와 장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장비들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서로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간다.
어느 한부분의 처리 능력이 떨어지면 전체 시스템의 효율을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우선 염기서열 분석을 위해서는 많은 수의 세포를 키울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다.
또 이렇게 키운 세포로부터 DNA를 추출하는 기기가 있어야 한다.
추출한 DNA를 재료로 염기서열 분석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PCR 기기도 필요하다.
대량의 게놈 연구를 위해선 자동 염기서열 분석장비 외에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고속장비가 필수적이다.
먼저 세포배양 장비를 갖춰야 한다.
미국 스탠퍼드, 매사추세츠대 등에서 세포배양 장비로 쓰는 기기는 56개의 96웰플레이트를 장착해 세포를 배양한다.
‘웰플레이트’는 DNA를 담는 플라스틱 용기로, 96웰플레이트란 96칸으로 구성됐다는 얘기다.
국내 업체 바이오니아가 최근 개발한 세포배양 장비는 40개의 96웰플레이트를 독립적으로 배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는 배양된 세포에서 DNA를 대량으로 추출할 수 있는 자동 유전자 추출장비가 필요하다.
현재 미국의 진머신이 개발한 ‘레볼루션 프렙머신’의 경우 하루 1천개의 시료에서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오니아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RoboPrep’ DNA 자동추출기의 경우 하루 1920개의 시료에서 유전자를 추출할 수 있다.
추출한 유전자의 염기서열 분석을 위해선 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쓰이는 기기가 PCR이다.
외국의 게놈센터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Dual 9700’(퍼킨엘머)과 ‘PTC-225’(MJ리서치)인데 모두 2~4개의 96웰플레이트 또는 384웰플레이트를 사용한다.
바이오니아는 최근 192개 시료를 한번에 증폭할 수 있는 PCR을 개발했는데, 이 기기는 1.5배 이상 빠른 속도로 유전자 증폭이 가능하다.
구조연구에서 기능연구로 장비개발 흐름 2003년 인간게놈프로젝트가 끝나면 어느 부분이 유전자이며, 그 기능은 어떤 것인지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이런 연구가 마무리되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간단하게 검사할 수 있고, 질병유발 유전자를 찾아내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그것을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일도 가능해진다.
염기서열 정보를 해석하고 정의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까지 유전체 연구는 DNA 배열 결정을 기초로 하는 ‘구조 해석’이 중심이 돼왔다.
이에 비해 앞으로는 기능 해석이 한층 가속화되면서 생물학과 의학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다줄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가 유전자 변이, 즉 SNP에 관한 것이다.
질병 관련 유전자를 찾아내 개인용 맞춤약을 개발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아이디어는 이미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제기해 현재 미국과 유럽의 주요 제약회사 열곳이 모여 SNP컨소시엄을 구성했다.
SNP프로젝트는 우선 DNA로부터 단백질 발현과 기능에 관련된 10만개에서 15만개의 SNP를 찾아내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질병 감수성과 약물 반응과 관련된 유사성을 갖는 SNP 부위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두번째 단계는 확인된 SNP와 질병감수성, 약물 반응의 연관관계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사람에게 흔한 질병인 암 당뇨병 관절염과 심장병 등을 집중적으로 겨냥한다.
이런 구조해석 연구에 꼭 필요한 핵심기술이 바로 DNA칩이다.
DNA칩으로 유전자를 분석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이 대량 유전자 합성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한 칩 제조 기술과 자동화 제조 장비이다.
유전자 전쟁은 돈 싸움 이밖에도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많은 종류의 시약과 대량분석을 위한 기기들이 함께 필요하다.
바야흐로 유전자 전쟁은 엄청나게 비싼 정밀장비들의 집합체인 대규모 시스템의 대리전쟁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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