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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지니스] ‘웹’자 붙은 직업 찬밥신세
[e비지니스] ‘웹’자 붙은 직업 찬밥신세
  • 이경숙
  • 승인 2000.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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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몰락, 사업 구체화 바람에 흔들…조류에 맞춘 재전문화 필요
테헤란밸리 심장부 선릉역 앞. 옷깃을 잔뜩 움켜쥐고 종종걸음을 치는 사람들 발 끝에 광고 전단들이 채여 뒹군다.
“당신을 최고의 웹전문가로 만들어드립니다.
” 웹마스터, 웹디자이너 등 웹제작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들의 안내전단이다.


올 가을 취업길을 나선 웹 관련직 지망생들은 첫발부터 디딜 데가 없다.
기업들이 인터넷 관련 사업을 철수하거나 축소하자 인력시장은 구직대열에 합류한 경력자들로 이미 꽉 찼다.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닷컴들이 우르르 무너지는 형편이라 원서를 들이밀 곳조차 마땅치 않다.
그나마 간간이 나오는 일자리들은 그동안 갈고 닦은 웹 전문실력을 별로 쳐주지 않는다.


웹은 지고 애플리케이션이 뜬다 가장 한파가 심한 직종은 웹디자이너다.
온라인 취업사이트 잡코리아 www.jobkorea.co.kr 에서 올해 1월부터 발생한 IT 분야 구인구직 상황을 보자. 웹디자인은 1월부터 내내 유망직종 1, 2위를 다투다가 9월에 4위, 10월에는 6위로 추락했다.
학원 등 단기코스 수료자들이 나오면서 구직 인원이 늘어난 데 비해 구인 기업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채용시장의 이런 변화는 경력자들조차 위기감을 느낄 정도다.
웹디자인 전문업체 클릭나인 웹디자인 팀장이었던 양현덕(27)씨는 얼마 전 회사가 문을 닫는 통에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웹디자인 쪽에 사람이 너무 많아졌어요. 요즘엔 누구나 자기 홈페이지쯤은 만들 줄 알잖아요. 그나마 경력이 있으면 자리보전은 하지만 신규인력은 발 붙일 데가 없어요. 미장공이 적어도 2~3년 일해야 인정받듯 여기서도 경력이 없으면 먹고 살기 힘들죠. 지금 출발하는 건 늦어요.” 그는 웹디자인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기는 힘들며 웹디자인 전문업체 가운데 적어도 70%는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경기한파에 대비해 웹사이트 관리비용을 예산에 반영하지 않거나 대폭 줄이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97년부터 웹디자인을 해온 양씨는 웹디자인만으로는 자신만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최근 웹마케팅 교육을 받았다.
웹기획이나 웹마케팅, 웹마스터, 콘텐츠 개발자 등 다른 웹 관련 직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편집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영업, 홍보 등 전통 직종이 꾸준히 인기를 회복하고 있다.
잡코리아의 온라인 구인·구직 추이를 보면 상반기에 인력난으로 ‘호시절’을 보낸 웹 관련 직종들이 10월부터는 다른 직종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다.
4월에 5번째 유망직종이던 콘텐츠 개발·웹PD는 반년 만에 11번째로, 웹기획·마케팅은 4번째에서 7번째로, 웹마스터는 3번째에서 5번째로 순위가 떨어졌다.
반면 편집디자인은 6번째에서 1번째로, 인터넷·기술 영업은 8번째에서 3번째로, 그래픽디자인은 9번째에서 4번째로 올라섰다.
이런 현상은 기업들의 주력 분야가 ‘인터넷 사업 개발’에서 ‘수익모델 확보’로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기업들이 이미 충분히 인력을 보유하고 있어 결원이 없으면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웹기획이나 웹마케팅, 서버·DB 구축 분야의 신규인력 채용이 줄어드는 원인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기업 생존과 사업 유지를 위해선 기획, 마케팅, 영업, 데이터베이스 관리 분야의 고급인력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개채용이나 온라인 구인보다는 인맥이나 헤드헌팅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기업간 경쟁이 시작되면 채용시장 요구는 신규인력에서 경력인력으로 옮겨간다.
구직난이 심각해져도 여전히 인기 좋은 직종이 있다.
프로그래머들이다.
이 채용시장은 신규인력도 빨리 흡수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웹 분야 신규인력을 구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고객관리 프로그래밍 등 좀더 세부적인 영역에서 전문능력을 갖춘 인력에 대한 수요가 훨씬 많다.
특히 데이터베이스관리(DBA)나 전사적자원관리(ERP), 고객관리체계(CRM), 네트워크 유지·보수, 애플리케이션 분야는 소위 ‘뜨는 업종’들이다.
뜨는 업종이라 해도 정작 ‘뜨는 사람’들은 경력인력들이다.
사실 IT 업종 전체를 경력자 중심 시장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다.
신규인력은 채용 전엔 경력인력과 경쟁하고, 채용 후엔 경력인력보다 턱없이 낮은 대우를 받는다.
심지어 경력이 없는 웹디자이너는 초봉 40만원에 하루 열대여섯 시간 이상의 노동을 석달 이상 버텨내야 겨우 일반 직종 신참의 임금을 받기 시작한다.
‘팔방미인 되기’ 아니면 ‘새길 찾기’ 이런 ‘사면초가’ 상황을 뚫을 전략은 ‘팔방미인’이 되는 것이다.
잡비전코리아 www.jobvisionkorea.com 이대성 팀장은 “신규인력은 한 분야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하나의 시스템을 혼자 힘으로도 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영역을 섭렵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한다.
가령 프로그래머가 되려는 이는 C++, 비주얼베이식, 자바, SQL 등 네다섯개 언어를 익히면 인사담당자의 호감을 살 수 있다.
B2B나 B2C 전자상거래 실무과정을 수료해 나름대로 기획능력을 키워두는 것도 취업에 도움이 된다.
웹디자이너의 경우 그래픽디자인 능력이나 기획 능력을 보강하면 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럴 땐 인지도가 높거나 공인된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아야 훨씬 유리하다.
긴 안목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도 고려함직하다.
ERP를 5년 이상 다룬 전문인력은 연봉 6천만원 이상을 받는다.
지금 당장보다는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면서 자신을 재전문화하는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길 가운데 하나다.
전문가들은 ERP, CRM, 네트워크 구축·관리, 자바프로그래밍, 시스템 분석과 보안 분야를 추천한다.
아니면 다들 가는 길이 아니어도, 떠들썩한 광고나 소문이 없어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곳을 찾아 초점을 맞춰보자. 가보지 않은 길이 지름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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