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성실 원칙이 지켜지는 경제는 웬만한 외풍에도 흔들림이 없는 법이다.
지금의 산업위기, 금융위기는 바로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신뢰의 결정판이 바로 펀드라는 제도다.
주식, 파생상품 등에 대한 투자는 원금 손실 위험성이 있어 고객과 투신사가 믿음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면 자금 집합체인 펀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나 펀드매니저는 보통 금융기관보다 더욱 엄격한 도덕성과 투명성, 투철한 신의성실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투신사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98년 초 회사채 수익률이 20%를 오르내릴 당시 투신사들은 3년만기 채권형 펀드를 앞다투어 판매하면서 60, 70%를 목표수익률로 내걸었다.
2001년 새해가 밝으면 약속했던 3년이 돌아온다.
이 펀드들은 현재 어떻게 돼 있을까. 일부 펀드를 제외하고 대부분 30, 40%대에 머무르고 있다.
죽었다 깨어나도 만기까지 60%를 넘길 방도는 없다.
더욱 유감스러운 것은 약속한 수익률을 어느 정도 맞추고 있는 펀드들은 외국합작 투신사 관할이라는 데 있다.
토종 투신사들은 그런 약속을 잊어버린 것일까. 국내 투신사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을 한 곳이 적지 않다.
부실채권을 수익을 많이 낸 주식형 펀드에 집어넣어 소각시킨 사례마저 있다.
고객 이익으로 돌아가야 할 돈이 투신사 부실을 메우는 데 이용된 것이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많은 투신사들이 이처럼 부도덕한 행동을 해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투신사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금리입찰과 수익률 보장각서는 흔한 기관 영업방식이었다.
투신사의 보장각서 내지 금리입찰은 타 금융기관의 그것과 달리 일반고객 피해로 직결되기에 문제이다.
정상적인 수익률 그 이상을 주려면 다른 펀드에 있는 고수익 채권을 빼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채권 시가평가제도의 전면도입으로 이같은 폐해는 거의 사라졌다.
왜 아픈 과거를 들추느냐고 항의하면 곤란하다.
신뢰는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복원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그럼에도 투신사들은 아직 무엇이 잘못돼 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주식형 펀드 손실 고객들의 거친 항의와 법정소송 준비 사태는 무지한 고객들 욕심이 만든 단발적 사건이 아니다.
켜켜이 쌓인 투신업계의 삐뚤어진 영업 관행과 불성실한 자산운용 태도가 만든 업보라고 볼 수 있다.
주가 하락으로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은 투신업계 위기가 아니다.
진짜 위기는 고객들 믿음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티끌만큼 남은 고객들 신뢰마저 잃는다면 우리 투신업계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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