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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로보티즈 하인용 개발실장
[나는프로] 로보티즈 하인용 개발실장
  • 이경숙
  • 승인 2000.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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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도 마음이 있습니다”
디디의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박수를 치면서 손을 내밀어도 전처럼 졸졸 따라오지도 않고 좋아하던 공놀이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로보티즈 www.robotis.com 하인용(27) 개발실장은 어제 밤새 디디를 돌보느라 한숨도 자지 못했다.
사람으로 치면 시력 이상이었다.
영상감지 센서가 고장난 것이다.

디디와 티티는 로보티즈가 개발한 디지털 로봇이다.
애완용쥐처럼 디지털 먹이를 주고 놀아주고 나이가 들면 짝도 지어줘야 한다.
디지털쥐 나이 6살이 되었는데도 짝을 지어주지 않으면 몸을 부르르 떨며 외로워 한다.
주변에 짝지을 상대가 없으면 인츠닷컴 www.intz.com 에 들어가 사이버 애인을 만들어주면 된다.
박수를 세번 치니 같이 놀자고 손바닥에 졸졸 따라붙는다.
그 모양이 살아 있는 쥐보다 깜찍하다.
보는 사람도 신기하고 귀여운 데 만든 사람 마음이야 오죽할까.암실에서 보낸 기나긴 6개월 “얘요? 이제 누가 좀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하 실장은 5개월 내내 매달렸더니 보기도 싫다면서 손을 홰홰 내젓는다.
로봇 개발자들끼리는 그런 증상을 ‘걸프렌드신드롬’이라고 부른다.
로봇 개발 과정이 연애 발전단계와 비슷하다나? 증세는 이렇다.
로봇 컨셉을 잡고 개발에 들어가는 첫 한달은 개발 로봇에 푸욱 빠져 산다.
어떤 기능을 넣을까,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게 할까, 어떤 모양으로 만들까 낮이나 밤이나 몰두한다.
이 ‘열정기’에 로봇 개발의 90%가 끝난다.
그 다음이 ‘안정기’다.
이때부터 기능을 어떻게 더욱 잘 구현시키는가 등 현실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들만 남는다.
개발자들은 슬슬 개발중인 로봇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개발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빠지고 피부 탄력을 잃어 주변 사람들에게 ‘팍삭 늙었다’고 놀림을 받기도 한다.
서너달 지나 기능 개발이 끝나면 로봇에 외장을 씌운다.
이때가 ‘새로운 관계 조성기’다.
개발자들은 살아 있는 생물인 듯 자신의 로봇에 따뜻한 마음을 쏟게 된다.
“얘가 처음 옷을 입었을 때, 정말 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이것 보세요. 옷을 벗기면 터미네이터 같잖아요? 그저 기계덩어리죠. 그런데 이렇게 옷을 입히면 인풋-아웃풋일 뿐인데도 진짜 생물이 반응하는 것 같은 ‘느낌’이 와요.” 그러나 그것도 한달. 이런저런 검증절차를 반복해서 치르다 보면 다시 ‘권태기’가 온다.
그러면 개발자들은 다음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이런 주기가 보통 6개월 단위로 반복된다.
프랑스컵 로봇축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축구 로봇을 개발할 때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권태기’도 없었다.
6개월 내내 서울 장안평의 한 공장건물에 들어가 창문을 죄다 검은 색 블라인드로 막고 일에 열중했다.
축구 로봇이 빛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식사는 하루 두끼, 그나마 대부분 라면으로 때웠다.
씻는 것은 잊기 일쑤였다.
휴대전화도 해지했다.
지금 로보티즈 사장을 맡고 있는 김병수(32)씨와 함께 외부접촉을 끊은 채 그렇게 연구에 몰두한 지 반년, 하 실장은 드디어 기존 것들보다 영상처리와 움직임의 속도가 두세배 빠른 축구 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하 실장-김 사장팀은 98년 프랑스컵에 이어 99년 브라질컵에서 2연패의 영광을 안았다.
하 실장은 또 개발에 들어가고 싶었다.
무언가 개발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났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와 김 사장은 로봇 축구에서 터득한 기술로 자동차 시뮬레이션 모듈, 영상정보 처리 보드, 무인경비 시스템들을 개발 납품해 돈을 벌었다.
그리고 올 가을, 디디와 티티를 세상에 내놨다.
디디, 티티는 하 실장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로봇으로서는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알아야 로봇을 압니다” 그가 살아온 얘기를 듣고 있다 보면 태어날 때부터 로봇 개발자가 되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사람 같다.
“글쎄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어요. 어느 날 문득 ‘나는 로봇을 개발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언가 떠미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 때 전자공학과를 선택했어요. 2학년 때부터는 HandS라는 로봇 개발 동아리에서 살았죠.” 그는 로봇이 기계의 외양을 빌린 생명체로 느껴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로봇이 점점 발달해 사람과 닮아갈수록 두려움 역시 커진다.
과학자의 사회적 소명과 책임을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는 한때 심리학에 심취했다.
“로봇 시대가 열리면 가장 크게 기여할 학문은 심리학이라고 해요. 로봇을 알려면 사람을 알아야 하거든요.” 다음 개발프로젝트를 묻자 그는 ‘비밀’이라며 입을 다문다.
장난기가 송글송글한 눈망울 속에 어떤 꿈이 여물어가고 있는 걸까. 아톰과 수다 떨고 태권브이와 우주여행할 미래도 거기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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