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노란 토사물이 너울거린다.
윤전기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신문이 빠른 속도로 포개지면서 일면 기사 주인공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헐벗고 굶주림’이라는 것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찌그러진 양은냄비 옆에 공허하고 그늘진 눈으로 먼 데를 응시하고 있는 부랑자. 너덜너덜해진 양복바지는 오히려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정말 냄새 하나는 국보급이야” 스포르닷컴 개발팀. 올해 들어 기온이 처음으로 영하권에 접어든 탓인지 옷걸이엔 제법 두꺼운 겨울옷들이 제철을 만난 듯 서로 뒤엉켜 부비고 있다.
제일 늦게 도착한 공태만씨가 지각인사 대신, 팀원들이 이미 한마디씩 주고받은 날씨 얘기를 어설프게 꺼내다 사무실 공기를 더욱 썰렁하게 만든다.
오늘은 일용직 프로그래머들이 비번이라 더욱 적요하기만 하다.
오전 회의. 회의 테이블엔 각 일간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일면은 재계 3대 그룹인 태우(太憂)그룹 최종부도에 느낌표를 아끼지 않았다.
신문 전체가 광고와 스포츠면을 제외하고는 온통 우울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었다.
개발팀 분위기도 묵중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얼마 전 스포르닷컴 사이트를 유료화한 데 이어 각종 수익모델을 개발중인 시점에서 대기업 부도가 일파만파 영향을 미칠 것은 명약관화한 셈인데. 게다가 유료화를 단행한 이후부터 가입회원 수는 눈에 띄게 줄고 있는 것. 의례적으로 오전 회의가 취소되고 대회의실에서 전체회의가 소집되었다.
웅성거림을 줌인해보면, 퇴출기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어떤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것인가. 허운동 실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문을 연다.
다행히 그는 침울한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포석으로 회의를 소집한 것이었다.
투자기업과 개인 투자자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회사 재무구조가 투명하고, 아이템과 기술 경쟁력이 있다는 경영분석팀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더욱 분발해줄 것을 당부한다는 내용. 그러나 태우그룹 투자계획이 백지가 된 것은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룹 차원에서 스포츠단 집중육성책과 맞물려 스포르닷컴과 연계사업이 추진중인 상태였다.
허운동 실장은 마지막으로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문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핵심기술력의 해킹을 방지하는 데 각별한 신경을 써달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우리도 해킹 당하면 대책 없지….” 한재능 팀장은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점심시간. 분위기 메이커 남궁용씨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눈을 지그시 감더니 박수 두번을 딱딱 친다.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 도아랑씨가 코를 쥐어잡는 것으로 식당 안 모든 사람들은 박수의 의미를 이내 눈치챘다.
남궁용씨는 싱글벙글이다.
“냄새 하나는 정말 국보급이다.
코스닥에 등록해도 되겠어.” 공태만씨가 촌평을 곁들인다.
다음날 아침. 한재능 팀장은 머리에 뿔다귀가 단단히 났다.
어제 회의 때 허운동 팀장 당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 프로그램이 열린 상태로 컴퓨터가 켜져 있었던 것. 일일이 프로토콜을 조사해볼 수도 없는 일일 뿐더러 이미 해킹 당했다 하더라도 엎질러진 물이다.
불길한 예상이 빗나가기만 바랄 뿐. 한재능 팀장은 당분간 함구하고 추이를 관망하기로 결정한 후 입조심을 시킨다.
하루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는 한 팀장은 집에 전화를 건다.
“응, 난데. 지금 어디야? 그래, 이쪽으로 와.” 한 팀장은 외투를 걸친다.
“저, 점심 먹으러 갑니다.
” 한 팀장이 나가자, 도아랑씨는 한숨을 폭 내쉰다.
“자, 오늘 점심 스폰서십은 공태만입니다.
나가시죠.” 공태만씨가 모처럼 연장자다운 말을 한다.
도아랑씨와 남궁용씨도 엷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남궁용씨 얼굴엔 왠지 수심이 가득하다.
고기 먹을 때는 더 조심해라 “자기가 왠일이야? 점심을 다 사주고.” 한 팀장 아내 나원혜씨는 의외라고 생각하면서도 갈비를 맛나게 쌈 싸서 연신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어제 속이 좀 안 좋아서 안 먹었더니 되게 당기네. 후훗.” 발랄한 나원혜씨를 보는 한 팀장 눈길이 따뜻하다.
그러나 이내 한재능 팀장 코가 바쁘게 움직인다.
“이게 무슨 냄새래?” 나원혜씨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한 팀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순간, 그의 눈에 스파크가 일었다.
그래 이 냄새야!! 한재능 팀장은 얽힌 실타래가 풀렸다는 듯이 두눈에 광채가 난다.
‘맞아. 처음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이상한 냄새가 났었어. 이 냄새보다 약간 특이한, 그러나 낯설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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