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6:14 (목)
[닥터바벤] ⑩ 광우병
[닥터바벤] ⑩ 광우병
  • 허원(강원대 교수)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앙은 성공의 어머니 바이오벤처들, 광우병 연구 활발…화장품 원료인 쇠골·태반 대체물질 찾기 노력도 정말 끔찍한 일이다.
쇠고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인간이 치명적인 병에 걸린다면 말이다.
실제로 지난 96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사람이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건이 일어났다.
그 뒤로 영국에서 87명, 프랑스에서 2명이 이 병에 걸려 숨졌다.
인간광우병은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며, 일단 발병하면 1년 안에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적절한 치료법이 없다.
잠복기가 긴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계속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광우병은 유럽 외에서는 발병하지 않아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유럽의 축산방식이 원인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 15개 회원국은 올해부터 소는 물론이고 양이나 돼지 등 모든 가축에 식물성 사료만을 먹이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만들어놓은 동물성 사료를 모두 폐기해야 하고,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가축까지 불태워 방제해야 하므로 엄청난 비용을 낭비해야 한다.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 통상마찰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무서운 광우병을 바이오 기술로 해결할 수 없을까. 원인은 미분해 단백질 ‘프리온’ 광우병은 ‘프리온’(prion)이라는 단백질 조각이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온을 알기 위해선 먼저 단백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단백질은 우리 몸을 이루는 피부나 살, 근육, 머리카락의 주성분이다.
비단의 주성분도 단백질이고, 계란 흰자도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단백질은 20여 종류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고분자 물질로, 아미노산의 조합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형태를 띤다.
플라스틱이 투명한 비닐부터 가전제품의 딱딱한 외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갖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음식물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면 위에서는 분해효소가 단백질을 조각조각 쪼개 아미노산을 만든다.
아미노산은 다시 사람의 살이나 머리카락 등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론적으로 단백질은 분해효소에 의해 모두 아미노산으로 분해돼야 한다.
하지만 단백질 종류에 따라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 단백질이나 일부만 분해된 단백질 조각이 생길 수 있다.
이렇게 잘 분해되지 않는 단백질 가운데 광우병과 같은 전염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을 프리온이라고 부른다.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원래 모든 동물의 뇌에 존재하는 어떤 단백질의 구조가 비정상적으로 변형돼 생긴 것이다.
확률은 낮지만 돌연변이 따위의 자연발생적 이유로 병원성을 가진 프리온이 소의 뇌 속에 생기면 우리가 광우병이라고 부르는 ‘우해면양뇌증’(牛海綿樣腦症)이 생긴다.
광우병에 걸리면 소의 뇌가 스펀지처럼 흐물흐물해지고, 결국 소는 죽고 만다.
이렇게 죽은 소가 땅 속에 묻히면 그저 소 한마리의 죽음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선 소를 도축해 고기를 얻은 뒤, 나머지를 다시 소의 사료에 혼합해 사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의 뇌 속에 있는 병원성 프리온이 다른 소에게 전염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전염된 병원성 프리온은 다른 소의 뇌 속에 있는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 구조를 병원성을 갖도록 변형시키는 놀라운 역할을 한다.
따라서 동물성 사료를 먹은 소들은 비정상적인 병원성 프리온이 축적되면서 광우병에 걸리고 만다.
더 많은 수의 소들이 동물성 사료를 먹으면서 광우병은 점차 확산된다.
그리고 끝내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은 인간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진단 및 치료법 연구에 뛰어든 기업들 세균은 항생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바이러스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적절한 약은 없다.
마찬가지로 프리온에 의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적당한 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진단도 쉽지 않다.
임상적으로 판단하거나, 아니면 죽은 뒤 뇌 조직을 검사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하지만 광우병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파장이 워낙 크다보니 광우병 진단법을 개발하려는 바이오 기업의 숫자도 늘고 있다.
바이엘처럼 큰 제약회사를 비롯해 20여개의 생명공학 회사들이 진단법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프리오닉스(Prionics)는 다른 회사들이 진단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광우병 프리온’을 생산·판매하기도 한다.
프리온이 소화과정에서 분해되지 않고 흡수돼 비장에 전달되고, 다시 임파선과 신경계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과정도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이 과정을 차단하는 신약을 연구하는 생명공학 기업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미국의 RML이라는 생명공학 회사는 ’사이클릭 테트라피르롤’(CTP, Cyclic tetrapyrrole)이란 물질이 초기단계에서 광우병의 진행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치매의 한종류인 알츠하이머도 뇌 속의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돼 발생한다.
시험관 실험에서 CTP는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과정을 억제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광우병 파동으로 소의 내장이나 태반을 원료로 사용하는 화장품이나 의약품, 식품회사들은 퇴출위기를 맞고 있다.
소의 뇌나 태반을 원료로 사용하는 노화방지 화장품이 인간광우병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소의 피부세포 물질인 콜라겐으로 만든 입술화장품 및 식품첨가제도 비슷한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말의 비장에서 분리한 페리틴이란 물질로 만든 빈혈치료제를 소의 비장으로 만들어 제조허가가 취소된 적이 있다.
앞으로 유럽에선 화장품이나 식품첨가물, 의약품 원료 따위를 소의 내장 등에서 추출·생산하기가 어렵게 될 전망이다.
바이오 벤처에겐 기회가 될 듯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광우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바이오 벤처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의약품의 대체물질을 개발하려는 바이오 벤처들도 생겨나고 있다.
소의 뇌에서 주로 추출하는 특수한 지방 성분은 미생물 발효를 통해 생산할 수 있다.
소의 태반에서 추출하는 단백질도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미생물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광우병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바이오 벤처에게는 기회가 되고 있는 셈이다.
프리온 발견한 ‘인류의 은인’
스탠리 프루시너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스탠리 프루시너(Stanley Prusiner) 교수는 지난 97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광우병과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비정상적으로 변형된 프리온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지식으로는 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병원성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따위였다.
하지만 프루시너 교수의 연구로 전혀 새로운 병원성 인자인 프리온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프리온 발견으로 알츠하이머와 같은 치매 질병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비슷한 메커니즘을 갖는 광우병이 전염되는 이유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프리온과 광우병에 대해선 좀더 자세한 연구와 많은 사실들이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프루시너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전염성 질환의 원인을 밝혀내 의학적 치료과 약품 개발의 근본적인 토대를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