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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싸이와처
[현장탐방] 싸이와처
  • 김윤지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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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루머 사냥꾼

네티즌 의견 수집, 분석해 해당 기업에 제공... 7개월 만에 의뢰 물밀 듯

사례 하나. 99년 일본. 도시바 서비스센터에서 불만을 털어놓던 한 고객은 너무 불친절한 서비스 직원의 태도에 분개했다.
이 고객은 그 직원의 폭언을 녹음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음성파일로 올렸다.
파일은 순식간에 여러 게시판에 전파됐고 결국 도시바의 최고경영자가 그 고객에게 공개사과를 하기까지 이르렀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는 동안 수수방관하던 도시바는 기업 이미지 실추로 약 3억달러의 손해를 입어야 했다.

사례 둘. 2000년 미국. 오라클 내부에 문제가 생겨 CFO가 곧 사퇴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다.
오라클 주가는 바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케이블TV가 이 루머를 보도하고 나서자 주가는 32달러에서 27달러로 16%나 급락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오라클에 대한 정보를 모니터링하던 넷커런츠라는 전문업체가 사태를 조기에 파악하고 이 사실을 오라클에 알렸다.
오라클은 긴급히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에 연락해 정정문을 게시하도록 했다.
루머가 사실무근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주가는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됐다.
이 모든 일이 단 하루 만에 벌어지고 수습됐다.
사이버 떠도는 소문 모으는 게 일 인터넷은 이제 각종 루머의 발원지이자 창고이다.
좋은 이야기이든 나쁜 이야기이든 인터넷은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확실히 해낸다.
어떤 소문이든 인터넷에 한번 ‘뜨면’ 순식간에 게시판을 통해 전파된다.
소문이 퍼지면서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난도질하기도 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인터넷 안에서 돌고 도는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싸이와처 www.cywatcher.com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이런 이야기들을 모은다.
이른바 온라인 모니터링 서비스 업체다.
자체 개발한 게시판 정보 자동수집 에이전트를 통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특정기업이나 기관, 인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다.
매일매일 터져나오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모니터링해 일일 보고서를 만들고, 긴급한 사안이면 실시간으로 사태를 알려 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고객이라면 매일매일 인터넷에 떠도는 삼성전자에 대한 루머, 불만, 호평 등을 수집하고 분석해 삼성전자에 알려주는 것이다.
자동화된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만 긁어모아 분석하기 때문에 사람이 개별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새학기의 파릇파릇함이 넘쳐나는 세종대 창업보육센터 한편, 싸이와처의 작은 사무실에선 하루종일 이런 인터넷 항해가 펼쳐진다.
풋풋한 젊은이 아홉명으로 구성된 싸이와처는 이제 생긴 지 7개월밖에 안된 병아리 벤처다.
그러나 이들의 독특한 서비스가 알려지면서 요즘엔 기업들의 서비스 의뢰를 뒤로 미뤄야 할 정도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서비스를 제대로 발굴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싸이와처의 사업모델은 99년 연세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탄생했다.
‘전자상거래와 정보산업’이라는 수업을 함께 듣던 94학번 동갑내기 다섯명이 과제물로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싸이와처의 사업모델이 담겨 있었다.
“어떤 사업이 좋을까 궁리를 하다가 O양 사건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자신도 모르는 새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가는 소문에 속수무책으로 명예를 훼손당한 거잖아요. 이게 만일 기업과 관련한 루머였다면 그 여파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 아이디어를 낸 송완주(26) 사장은 기업과 관련한 루머는 일단 해당 기업이 제일 먼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현재 미국 500대 주요기업들은 모두 이런 서비스를 받고 있고, 이워치(eWatch), 넷커런츠(Netcurrents), 사이버얼러트(CyberAlert) 등 전문업체들도 여러 곳이다.
강의실서 떠올린 아이디어로 의기투합 수업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싸이와처 멤버들은 지난해 6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경진대회에 이 모델을 들고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으로 나온 전문가들로부터 다시 한번 검증을 받은 셈이다.
“심사위원들 모두 사업 아이템은 기발한데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하시더군요. 초기 개발비용으로 한 10억은 들겠다는 말들을 하셨죠.” 그러나 송완주 사장을 비롯한 멤버들의 생각은 달랐다.
기술은 개발만 하면 가능할 것 같았다.
오히려 다른 문제가 더 걸렸다.
“멤버들 가운데 세명이 올 2월 졸업예정이고 두명은 학교에 더 다녀야 했거든요. 우리가 지금 창업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선택일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한 한달 동안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사회생활을 하고 나면 용기가 더 안 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죠. 지금 시작했다가 실패하더라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낸 만큼 얻을 게 더 많을 거라며 의기투합했습니다.
” 젊음과 용기, 그리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다섯 동갑내기들은 지난해 7월 창업했다.
아무도 창업 과정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처음엔 인터넷만 뒤지면 다 나올 줄 알았는데 웬걸요. 학생창업이 힘든 게 아이디어는 많은데 사업화하는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거예요.” 원준연 전략기획팀장은 지난 7개월 동안 부딪혔던 일들을 돌이키며 혀를 내두른다.
그래도 다섯 멤버의 전공이 행정학, 법학 등 비교적(?) 사업과 가깝고 사법고시, 회계사 준비 등을 했던 경험들이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젠 같은 보육센터 안의 다른 업체들에게 조언을 해줄 정도라며 자랑이다.
이들에게 창업은 공짜로 얻는 것 없이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일구는 것을 의미했다.
관건이라던 자체 에이전트 개발이 완료되자 서비스를 알리는 게 중요해졌다.
신문사에 계속 전화를 해 담당기자를 알아내면 달려가 설명을 했다.
신문사 앞에서 하염없이 담당기자를 기다리기도 했다.
다행히 사업을 설명하면 다들 솔깃해하며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며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언론에 한두번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서비스를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도 하나둘 연락이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제대로 서비스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선 투자를 받지 않을 계획이다.
제대로 평가를 받은 상태에서 규모에 맞게 투자를 유치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스템 안정화를 마치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면 그런 모양은 단번에 갖추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바닥부터 차근차근, 몸으로 배운다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많았다.
“기업, 정치, 연예계가 주 타깃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공공기관쪽에서 더 관심을 보이더군요. 군이나 수사기관에서도 의뢰가 오고요.” 송완주 사장은 기업보다는 오히려 공공기관들이 여론에는 더 민감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기업들도 주가 관련 정보보다는 총수와 관련한 루머에 가장 민감하다고 말한다.
주가정보는 팍스넷과 씽크풀 같은 일반투자자 커뮤니티에 오르면 확산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것도 살짝 알려준다.
99년 말쯤 붐이 일었던 대학 벤처창업은 싸이와처가 창업을 할 무렵엔 한풀 꺾였다.
주위에선 아직도 허황된 벤처의 꿈을 꾸느냐며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그런 붐에 편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자신있다고 말한다.
“올해 졸업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 취업한 친구들이 많아요. 대기업에 들어가 월급받은 걸로 술 한잔 멋지게 사는 걸 보면 순간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그 친구들은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우린 스스로 생각해서 일을 만들어가는 것이고요.” 이곳저곳 은행문을 넘나들면서 세상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는 김배년 경영지원팀장 이야기이다.
누구에게서도 배우기 힘든 것들을 직접 겪고 있는 걸 내심 뿌듯해하는 눈치다.
누구에게든 사회에 내딛는 첫발의 기억은 강렬하다.
싸이와처 동갑내기들은 그 누구보다 더 강렬한 기억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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