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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진짜 같은 사이버 커플들 "자기야~"
[문화] 진짜 같은 사이버 커플들 "자기야~"
  • 오철우
  • 승인 2000.07.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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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사회의 가상결혼식까지 올린 가상 커플들 가운데엔 이렇게 ‘튀는’ 닭살 커플도 많다.
온라인게임 ‘바람의 나라’ baram.nexon.co.kr 마케팅팀의 이윤임(24)씨는 “가상 커플들 가운데엔 시도 때도 없이 ‘자기야’를 연발하는 바람에 다른 사용자들에게 눈총을 받는 닭살 커플들이 상당수 있다”며 “하지만 이들은 결혼하지 못한 독신자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가상 커플은 이제 인터넷 온라인게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화로 자리잡았다.
남자와 여자 캐릭터가 사냥터에서 ‘다정하게’(?) 도끼를 들고 뛰어다니며 괴물을 잡거나, 인적이 드문 바닷가나 동굴에서 밀어를 속삭인다.
재산(아이템)을 한집에 쌓아두고 함께 쓰는 커플들 사이에선, 손이 헤픈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어대는 아내의 잔소리도 들려온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영웅문’ ‘퀴즈퀴즈’ 등 온라인게임의 회원들이 각각 수십만~수백만명씩이고 상당수가 커플을 이루고 있으니, 가상 커플은 모두 수십만쌍에 이른다.
‘남초현상’ 짝짓기 경쟁 치열 남자 캐릭터들에게 가상 커플을 이루기란 쉽잖은 일이다.
인터넷 사용자층에서도 ‘남초현상’이 심한데다가, 특히 온라인게임에선 더더욱 여자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 캐릭터가 나타나면 치열한 구애작전이 펼쳐진다.
게임 수준(레벨)이 낮은 여자 캐릭터에겐 “쌍가락지를 주겠다” “갑옷을 주겠다”는 식으로 갖가지 선물공세를 펴는 환심파들이 있는가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나, 너 좋아”라며 청혼하는 돌격파도 있다.
여자 캐릭터가 바람을 피워 시끄러운 말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리지니 lineage.ncsoft.co.kr 운영팀 관계자는 “워낙 여자 캐틱터들이 적다 보니까 남자들은 뜸들이고 할 틈이 없다”며 “먼저 여자 마음을 차지하려고 온갖 방법들을 동원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여자가 귀하다 보니, 여자인 것처럼 흉내내는 ‘성 전환’ 남자 사용자도 생겨난다.
대부분 가상 커플들은 상대방의 실제 얼굴을 모른 채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에 실제론 남자끼리 결혼하는 커플도 적지 않다.
리니지 관계자는 “남자친구끼리 서로 알면서 짝을 짓는 경우도 많지만 여자인줄 잘못 알고 커플을 맺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전화통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여자 캐릭터는 남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한다.
일부 여자 사용자들은 독신을 고집한다.
하지만 아무나 독신생활을 하는 건 아니 다.
‘영웅문’ heroes.co.kr의 게임마스터 이상훈(27)씨는 “독신여성들은 대개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씩씩하게 살아갈 정도의 게임 실력을 갖췄거나, 재산을 많이 모은 부자들인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여러 남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독신을 고집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 캐릭터에게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대신 전해달라는 여자 캐릭터의 애교 있는 부탁글이 게시판에 오르기도 한다.
성대한 결혼식, 초라한 결혼식 오늘은 결혼식이 있는 날. 어느 온라인게임에서건 결혼식은 떠들썩하고 화려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신랑은 전체알림을 통하거나 자유게시판을 통해 모든 사용자들에게 자기 결혼식을 알려 많은 하객들이 모이도록 애쓴다.
결혼식날 신랑 신부쪽 하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식장은 점점 분주해진다.
하객들은 준비해온 축하 선물로 하트나 카펫 모양의 장식물을 꾸며 식장 분위기를 한껏 돋우곤 한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랑과 신부는 하객들의 축하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신부를 짝사랑했던 다른 남자 사용자의 뒤늦은 구애의 독백이 식장 한구석에서 들리기도 한다.
축하 선물로 가져온 금, 물약 등 아이템들이 여기저기 즐비하다.
‘퀴즈퀴즈’ www.quizquiz.com 결혼식에선, 예물을 가만두면 4분 뒤엔 없어지는 자동삭제 기능을 피하기 위해 축하객들이 하트 모양 등 장식에 쓰인 예물들을 결혼식 내내 들었다 내렸다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리니지의 결혼식에선 물약을 먹으면 화면이 번쩍이는 기능을 이용해, 하객들이 일제히 물약을 마셔 식장을 번쩍거리게 만드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간단한 주례사가 끝나면 신랑·신부는 왁자지껄한 축하의 말을 뒤로 한 채 결혼식장을 빠져나가 괴물을 잡으러 가는 신혼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가상공간에서도 부자들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진다.
많은 재물을 소유한 사용자는 특별한 옷을 사입고 결혼식장에 나온다.
넓은 장소나 영주가 사는 성채를 통째로 빌려 결혼식을 치르기도 한다.
돈과 예물로 식장 주변을 화려하게 꾸며 신혼의 기쁨을 과시하기도 한다.
으레 이런 결혼식엔 하객들도 발 디딜 틈 없이 밀려든다.
반면 돈 없는 초보 게이머들의 결혼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리니지 관계자는 “한번은 한 결혼식에 초청을 받아 찾아갔는데,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하객도 없이 결혼식을 올리는 걸 보고, 돈도 없이 결혼한 이 커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앞섰다”고 말했다.
혼인빙자 사기꾼, 축의금 노린 얌체족도 현실사회든 가상사회든 약싹빠르게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결혼을 빙자해 재물을 빼앗아가는 속칭 ‘꽃뱀’들은 가상사회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자유게시판엔 이런 사기꾼들에 대한 경고문들이 심심찮게 오른다.
“앤(애인) 하자고 해서 앤 했습니다.
근데 갑작이 커플 아이디를 만들자고 해서 만든 뒤 선글라쓰를 가지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아줌마1호’ 아이디 다들 조심하세요.” 온라인게임 운영자들은 “많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재물을 탐내 결혼하고 나서 울거먹을대로 울거먹은 뒤 이혼하는 식으로 재물을 모으는 캐릭터들도 종종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기꾼들은 금세 아이디가 공개돼 가상결혼을 꿈꾸는 많은 게이머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곤 한다.
화려한 부자들의 결혼식장에 나타나 예물을 주워가는 얌체족들도 많다.
일명 ‘집자족’이다.
이들은 하객들이 가져오거나 결혼 주최쪽에서 준비한 예물들을 염치없게도 꿀꺽 삼켜버리고는 달아난다.
리니지 관계자는 “결혼식날 오지 않았으면 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들 집자족”이라며 “최근엔 이들 외에 결혼식장 문을 막고 서서 하객들에게 통행세를 울거내는 이른바 ‘문막자’ 캐릭터도 생겨나 결혼 커플들에게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에겐 ‘요지경’처럼 보이기도 하는, 현실 같은 가상사회의 가상 커플 문화는 온라인게임에 빠져드는 게이머들에겐 새로운 오락과 문화를 제공한다.
온라인게임 업체들은 요즘 가상결혼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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