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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애니메이션의 정수, 라인업
[문화] 애니메이션의 정수, 라인업
  • 임범 <한겨레> 문화부 기자
  • 승인 2001.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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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미이라 2> <툼 레이더> <혹성탈출> <쥬라기공원 3>…. 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유달리 블록버스터 영화가 많은 올 여름 극장가에 결코 얕잡아보기 힘든 변수가 또 있다.
사람이 나오지 않는 영화, 애니메이션의 라인업이 그 어느 해보다도 막강하다.
월트 디즈니의 강력한 맞수로 떠오르고 있는 드림웍스의 네번째 애니메이션 <슈렉>(7월7일 개봉)은 디즈니가 제시해왔던 기존 애니메이션의 고정관념을 깨고 상상의 허를 찌른다.
애니메이션으로는 매우 드물게 올해 칸영화제 본선에 진출했고, 5월 말 미국에서 개봉해 한달 동안 제작비 6천만달러의 세배가 넘는 2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컬럼비아사가 일본의 제작진을 데려다 만든 <파이널 판타지>는 3D 기술이 만든 디지털 배우로 실제 배우를 대체하겠다는 야심 아래 1억37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역작이다.
7월 초 미국에서 개봉하지만(국내 개봉은 7월28일 예정) 미리 본 현지 언론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다이너소어>로 애니메이션 시장을 평정했던 월트 디즈니는 <해저 2만리> 처럼 바닷속 모험을 그린, 제작비 9천만달러짜리 <아틀란티스>(7월14일 개봉)를 들고 왔다.
하지만 이들 애니메이션보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88년에 만들어졌고 3D 기술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순수 셀 애니메이션에 제작비는 앞의 세 애니메이션의 10분의 1에도 못미친다.
그러나 왜 일본 애니메이션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지 이 만화영화를 보지 않고는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이 작품이 열어 보이는, 그 어디서도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방문해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요즘같은 영상시대에 문화적 문맹이 될지도 모른다.
이웃집 토토로 데스카 오사무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걸 정점까지 끌어올린 사람이다.
학창시절 일본 공산당 기관지에 기고하기도 했던 이 진보적 지식인이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들어와 찾은 출구는 자연이었다.
피해갈 수 없는 공격성으로부터 어린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곤충과 동물과 숲의 정령을 그들 옆으로 데려왔고, 이게 거꾸로 어른들의 피폐해진 심성까지 위로하고 구제했다.
<이웃집 토토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연관과 어린이들의 천진한 동심이 가장 화목하게 만난,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의 정수로 꼽힌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아버지와 함께 삶을 꾸려가는 두 자매. 그러나 아직 세상의 비극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다.
시골집에 이사와 그곳의 모든 것이 신기해 달리고 깡총깡총 놀기에 바쁘다.
그들의 천진하고 맑은 눈에 숲의 정령 ‘토토로’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숨을 크게 내쉬면 마을에 바람이 불고, 손을 합장하고 기원하면 나무가 새싹을 틔운다.
투실투실한 곰같이 생긴 토토로는 그러나 인간들의 세계에 좀처럼 간섭하지 않는다.
큰 나무 뿌리 아래 동굴에 드렁지게 누워 낮잠을 자기 일쑤인 토토로는 표정부터 낙천적이고 천하태평이다.
이 토토로는 가끔 자매 옆에 나타나 동그란 눈에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기 일쑤지만, 자매가 힘들 때 그 사정을 알고 기적같은 도움을 베푼다.
자매가 도토리 열매를 심고 싹이 트기를 눈 빠지게 바랄 때 밤에 나타나 싹을 틔워주고, 동생이 길을 잃었을 때는 고양이 버스를 불러 동생을 찾아준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고양이 버스가 지나갈 때면 주변에 돌풍이 인다.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갑자기 바람이 불 때는 이런 정령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사회에 끼어들지 않기 때문에 공격적일 이유가 없고, 어린이들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힘들 때 약간의 도움을 베푸는 정령들이 바람 속에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을 바라보면 그 자연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하물며 그 정령들과 함께 노는 어린이들이야. 경쟁해서 이기고,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쳐부숴야 옳은 어린이라고 말하는 미국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붓자국이 살아 있는 유화풍의 배경과 테두리선이 분명한 만화체 캐릭터가 일견 잘 어울리지 못할 것 같지만, 시골 햇빛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녹음과 어린이들의 천진한 표정을 함께 담기에 더없이 적합한 화면을 선보인다.
어린이, 어른 함께 볼 영화로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을 찾기가 힘들 듯하다.
슈렉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미녀와 야수>를 한데 섞었는데, 원래 동화를 충실히 따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는 영 딴판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키스로 깨어나게 하는 건 잘생긴 왕자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못생긴 데다가 방귀 잘 뀌고 입 냄새 심하고 아무데서나 귀지 파는 게 습관이기까지 한 괴물 같은 슈렉이 공주를 깨운다.
당연히 낭만적인 입맞춤도 없다.
어쨌거나 슈렉과 공주 사이에 연정이 생겼다.
그러면 둘이 참사랑의 키스를 한 뒤에는 야수같은 슈렉이 잘 생겨져야 한다.
그러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노골적으로 뒤튼 셈이다.
뻔할 것 같은 결말로 안 가고 뒤통수를 치는 게 웃기기도 하거니와 정치적으로 더 올바르다는 느낌도 준다.
그래도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 플롯은 디즈니뿐 아니라 여타 할리우드 로맨스물과 궤를 같이한다.
슈렉이 개구리 똥구멍에 바람을 불어 풍선으로 만들자, 어여쁜 공주가 뱀 입에 바람을 집어넣어 팽팽하게 만들고는 그것을 꼬아서 강아지 인형으로 만든다.
둘이 사이좋게 그걸 들고 산보하는, 앞뒤 문맥을 떠나 배꼽 잡게 만드는 모습은 영화사에 남을 한장면이 될 듯하다.
파이널 판타지 외계인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에 이른 인류의 한무리가 외계인과 맞서기 시작한다.
많이 보아온 이야기지만, 이 영화에서 독특한 건 인간들 내부에서 무력 일변도의 공격을 감행하는 쪽과 얼마 남지 않은 지구상의 자연에서 ‘제7의 영혼’을 찾아 외계인들의 언어코드를 깨는 전략을 택하는 쪽 사이의 갈등이다.
후자를 대표하는 이는 여성과학자 아키이다.
생명을 중시하고, 그 주인공으로 여성을 택한 전략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현지 언론의 평을 보면, 이런 구성이 내러티브에 서사성을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유사한 영화나 애니메이션과 차별짓게 한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이런 내러티브보다 <파이널 판타지>가 관심을 끄는 건 3D로 인간의 미세한 동작과 표정까지 살려내겠다는 의도가 어떻게 살아나고 있느냐이다.
일반 관객들의 평가가 남아 있지만, 평단의 반응을 보면 결코 만만치 않은 다크호스임은 분명하다.
아틀란티스 올해 디즈니가 내놓은 <아틀란티스>는 아무래도 지난해 <다이너소어>보다는 힘이 부쳐 보인다.
아직 국내에서 시사회를 갖지 않았지만, 지난 6월10일 미국에서 개봉한 뒤의 흥행결과를 보면 <슈렉>보다 많이 뒤처진다.
수천년 전 거대한 해일에 휩싸여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으로 전해지는 아틀란티스 제국이 실재한다고 믿는 언어학자 마일로 싸치는 가까스로 이 제국으로 가는 길이 적혀 있는 고대의 책자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탐험가 루크 함장과 함께 일행을 꾸려 갖은 난관을 뚫고 그곳에 도착한다.
그러자 루크 함장이 다른 야욕을 드러내고 일행과 제국은 위기를 맞는다.
여름 애니메이션들에서 눈여겨볼 만한 또다른 항목은 목소리 연기자들의 대결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뺀 세편은 블록버스터답게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마이크를 잡았다.
<아틀란티스>는 마이클 폭스와 제임스 가너를, <파이널 판타지>는 알렉 볼드윈과 제임스 우즈, 도널드 서덜랜드를 기용했다.
<슈렉>은 마이크 마이어스와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로 이에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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