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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기술로 장사하는 방법 배웠다”
[비지니스] “기술로 장사하는 방법 배웠다”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1.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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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기술 김동우 사장의 코스닥 1년… 주가 연연하지 않고 내실 다질 것
기자가 처음 우리기술을 찾았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우리기술이 코스닥 등록을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다.
정직하면서도 고지식한 회사라는 게 첫 느낌이었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박사 출신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 이런 든든한 학벌에 대한 자부심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기술력 있는 회사로도 인정받기를 원했던 회사였다.
그러나 이 회사의 그뒤 1년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리기술은 한국전력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갈 제어계측기기나 한국통신에 납품할 전원집중관리시스템 등을 만드는 회사로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보통신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벌였던 이런저런 사업들은 큰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실적은 기대에 크게 못미쳤다.
그때 예비사업설명서에서 우리기술은 지난해 매출과 당기순이익을 각각 334억원과 45억원으로 예상했으나 결국 절반에도 못미치는 137억원과 13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성장성 없는 굴뚝 기업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투자자들 인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공모할 때 1만6천원을 받았던 주가는 등록할 때 잠깐 3만원을 넘어섰다가 이내 추락, 한때 5천원 밑으로 떨어졌고 지금은 1만원을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장은 기술력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실적과 성장성으로 기업을 평가하고 그러한 평가는 냉정하게 주가로 드러났다.
성장성 높은 기업이라면서 한참 치켜세웠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어느새 모두 등을 돌렸다.
이제는 담당하는 애널리스트를 찾기도 힘들 정도다.
그나마 관심을 보이던 대신증권 이병창 연구원은 우리기술이 아직도 고평가돼 있다고 잘라 말한다.
“마케팅이 필요할 땐데 사람도 없고 노하우도 없어요. 신규 사업쪽도 수익성이 별로 안 좋고요. 많이 빠지긴 했지만 매출이나 성장성을 보면 아직도 다른 업종보다 30% 정도 높습니다.
” 거품이 꺼지는 과정을 아프게 겪었던 많은 기업들처럼 우리기술에게 지난 1년은 특별한 한해였을 것이다.
김덕우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 1년 동안 우리기술에 일어났던 많은 변화는 모두 시장이 만들어준 겁니다.
코스닥에 올라가면서 회사 전체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장은 변덕스러우면서도 의외로 합리적이죠. 시장의 모진 질책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숨가쁘게 달려오지 못했을 겁니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가 코스닥에 올라가던 때는 코스닥 공모 열풍이 끝물로 치닫던 무렵이었죠. 처음 공모 희망가는 1만원이었습니다.
주당순이익 267.4원에 코스닥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인 42.4배를 적용해서 나온 수치였지요. 그런데 벤처기업 평균 주가수익비율 78.2배를 적용하면 2만원이 넘죠? 그래서 우리는 2만원으로 해달라고 했는데 주간사에서 애써 낮춰잡았던 겁니다.
우리 회사는 언뜻 굴뚝 기업처럼 보였으니까요. 시장이 조금씩 얼어붙고 있을 때였고 그때 새로 만들어진 수요예측이라는 제도도 내심 부담이 됐을 테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수요예측에서 기관 투자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어요. 마침 닷컴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질 때였으니까요. 굴뚝 기업처럼 보이는 우리 회사가 상대적으로 돋보였겠죠. 우리 회사는 제법 기술력도 있어 보이고 실적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으니까요. 시장 분위기만 좋으면 20만원까지도 갈 수 있을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져나왔어요. 기관들이 너도나도 높은 가격을 써내는 통에 공모가가 1만6천원으로 뛰어올랐지요. 그런데도 공모주 청약 경쟁률이 무려 563.8 대 1이나 나왔어요. 그때만 해도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요. 모처럼 신문에도 날마다 회사 이름이 오르내리고 우리 사주를 받은 직원들도 신바람이 났지요. 시장 변덕에 곤두박질한 주가 회사를 설립한 지 7년째, 꾸준히 한우물을 파온 덕분에 원자력 발전소 제어계측기기쪽에서는 국내 마땅한 경쟁자가 없을 만큼 튼튼한 입지를 다졌지요. 조금씩 정보통신쪽으로 발을 넓혀가고 있을 때였고요. 시장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던 겁니다.
그런데 왠걸, 주가가 며칠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3만원을 훌쩍 넘더니 이내 고꾸라지기 시작했어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새로 들어온 회사들이 다들 죽을 쒔지요.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신규 등록 종목들이 제일 먼저 된서리를 맞은 거지요. 잠깐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공모가만 높여잡는다고 좋은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변덕스러운 시장에서도 주가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이니까요. 일년이 지난 지금 주가는 겨우 1만원을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그나마 다른 회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빠진 거라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아직도 주가수익비율은 45.12배로 다른 코스닥 기업들보다 훨씬 높은 편이니까요. 증권가쪽에서는 툭하면 우리기술이 고평가돼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죠.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시장의 기대를 만족시키려면 실적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사업은 수익성은 높았지만 시장이 너무 좁았지요.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한국전력과 한국통신에 의존하고 있었으니까요. 언제까지나 계속 이쪽에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몇 대형 사업에만 의존하다보니까 현금 유동성도 좋지 않았어요. 주가는 그런 한계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지요. 아니나 다를까 다급하게 사업 확장을 서두르던 차에 지난해 12월 한국통신쪽에서 난데없이 전원집중관리시스템 계약을 다음해로 늦추자고 통보해왔어요. 하루하루 계약을 미루던 게 수상쩍기는 했지만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죠. 하루 아침에 매출액이 150억원 가량 줄어들게 되는 셈이니까요. 2003년까지 1300억원 가량 물량을 주겠다고 약속하길래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말이죠. 분명히 예산이 잡혀 있는 걸 확인까지 했는데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150억원이면 그쪽은 껌값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전체 매출의 절반이나 됩니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죽는 격이죠. 지금 같아서는 올해나 내년이나 사업이 계속 진행되기나 할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동안 쏟아부은 개발 비용 20억원은 이제 어디 가서 찾죠? 더 큰 문제는 투자자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매출액이 절반이나 줄어든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참 망설였지요. 다음해 3월 실적발표 때까지 묻어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고민 끝에 속 시원히 털어놓기로 했어요. 결국 언젠가는 드러날 일 아닌가요?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큰맘 먹고 찾아갔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코스닥시장에서는 좋지도 않은 일을 굳이 드러내놓고 밝힐 일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어요. ‘중요한 경영상의 변동’에 해당하는 공시 의무사항 아니냐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아니라고 하던데요. 가뜩이나 얼어붙은 시장에 찬물을 더 끼얹을 필요가 있느냐고 면박까지 주던데요. 결국 공시는 포기하고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몇몇 언론에 돌렸습니다.
한국통신쪽 계약이 미뤄져서 올해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됐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신문기사가 나간 날부터 며칠 동안 전화통에 불이 났지요. 애널리스트들 항의 전화가 빗발쳤어요. 죄송하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 용기 있는 발표를 했다면서 칭찬해주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증권사마다 투자 등급을 낮췄고 주가는 내리 곤두박질쳐서 12월 한때 5천원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절반 가까이 빠졌던 주가는 두달 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으니까요. 이래저래 웃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지난 2월에는 중국이 교통제어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신증권에서 수혜주로 우리 회사를 포함해 몇몇 회사를 꼽았지요. 다음날 주가가 상한가로 뛰어오르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우리 회사도 교통제어시스템을 만들기는 하지만 중국 시장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시장이 얼마나 호들갑스러운지 새삼 실감했지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모든 직원들이 언론에 신경을 쓰게 되죠. 하다못해 증권 정보 사이트 게시판에 오른 엉터리 루머 하나로도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판이니 말이죠. 정보통신 기업으로 거듭날 것 대책 없이 후들거리던 주가를 끌어올린 건 자회사 행복한아침이었습니다.
모닝365 www.morning365.co.kr 라는 사이트는 다들 알고 계시죠? 인터넷에서 주문하고 퇴근길 동네 지하철역에서 찾아가는 이 기발한 물류 시스템을 생각해낸 건 우리 회사 말단 직원이었습니다.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물품을 찾으면서 계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한마디로 물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해 12월에 문을 연 모닝365는 잠깐 사이에 인터넷 서점 순위 6위로 올라섰습니다.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거뜬히 3위로 올라설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하루 2천건 정도 주문을 받으면 배달 비용을 300원까지 낮출 수 있어요. 반면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아직도 건당 비용이 3천원을 넘어설 겁니다.
한마디로 게임이 안 되죠.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아이디어를 들고 서울시 지하철공사를 찾아갔더니 공개입찰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아무런 혜택도 없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13억원을 써냈고 사업권을 따냈지요. 무리를 한 셈이지만 오는 9월이면 얼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EBS나 벅스뮤직 등과 꾸준히 제휴를 맺고 있고 인터넷 서점들과도 손을 잡을 용의가 있습니다.
종합물류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우리는 사업영역을 꾸준히 넓혀왔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교통제어시스템말고도 아이스페이라는 IC카드형 전자화폐 솔루션쪽에도 뛰어들었고 얼마 전부터는 가정용 로봇 사업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려하시는 것처럼 무분별한 사업다각화는 아닙니다.
이게 모두 원자력발전소 제어계측기기에 들어가는 한부분일 뿐입니다.
그동안 50명이 한 제품에 달려들어 1년에 70억을 벌었다면 이제는 두세명이 하나의 제품에 매달려 수백억원씩을 벌어들이게 될 겁니다.
그동안 쌓아올린 기술력을 제대로 상품화하는 방법을 찾은 거죠. 물론 실패도 많았습니다.
1년에 175억원을 벌겠다고 큰소리쳤던 도청감시 시스템은 한달에 10개 정도, 다해서 2억원어치도 못 팔았습니다.
시장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런 시행착오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시장과 부딪히고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많을 겁니다.
지난달 DVD플레이어가 내장된 디지털 셋톱박스를 모토로라에 납품하기로 했다는 소식 들으셨죠? 적어도 한해 3천만달러 규모는 될 겁니다.
이밖에도 조만간 다시 한번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저지를 겁니다.
우리는 셋톱박스에 모든 디지털 가전제품들을 다 집어넣을 계획이니까요. 코스닥 생활 1년은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변덕스러운 시장 흐름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시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발빠르게 변화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제 시장의 요구에 따라 굴뚝 기업에서 본격적인 정보통신 기업으로 변모하려 합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한 것처럼 마케팅을 강화하고 사업모델을 좀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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