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6:14 (화)
[특집] 두산 “이젠 캐시플로 경영”
[특집] 두산 “이젠 캐시플로 경영”
  • 장근영 기자
  • 승인 2001.07.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업재·소비재 모두 수익성 위주로 구조조정… 중공업이 핵심 성장엔진 역할할 듯
한 임원은 자식을 외국인에게 시집보내는 것 같았다고 아쉬운 심정을 토로한다.
다른 직원은 그룹 구조조정의 ‘대미’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외부에선 아무리 구조조정도 좋지만 그룹이 받은 충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주)두산에서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그룹 구조조정의 과정일 뿐”이라고 맞받아친다.
오히려 90년대 중반부터 계열사들을 팔아치운 것이나, 98년 그룹의 상징이던 OB맥주의 지분 50%와 경영권을 벨기에 맥주회사인 인터브루에 넘길 때보다 훨씬 충격이 덜하다는 것이다.


두산은 6월 말 OB맥주의 지분 45%를 유럽계 투자회사인 홉스에 팔아넘겼다.
그 대가로 5600억원 규모의 외자를 손에 넣었다.
이로써 지난 50년간 두산그룹을 이끌어왔던 OB맥주가 완전히 외국계 회사로 넘어갔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꼽혀왔던 두산그룹은 이제 다시 생산재 위주로 사업방향을 틀고 있다.
올해 3월 회사 이름을 바꾼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과 그밖의 돈되는 사업들 위주로 그룹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선수 OB맥주마저 매각 두산이 자신있게 변신을 할 수 있게 된 사연은 IMF 사태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두산그룹은 96년 말 부채비율이 600%를 넘으면서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몸집만 크게 불린 공룡이었던 것이다.
하기야 그때까지만 해도 자산규모가 그룹의 역량을 말해주던 시절이라 다들 덩치 키우기에 바빴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룹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불거진 그룹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은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두산의 차입금은 1조원에 이르러 그룹 전체 매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투자 대비 이익을 말해주는 투하자본수익률(ROIC)도 5%를 밑돌아 은행이자를 대기에도 벅찬 상태였다.
당시 은행의 대출이자율은 13%였다.
따라서 두산이 사업을 하느니 차라리 저축을 하는 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두산그룹은 그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것보다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는 게 훨씬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했다.
급기야는 두산그룹은 외과의사에게 진단과 처방을 부탁한다.
당시만 해도 낯설던 외부 컨설팅을 받기로 한 것이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와 머리를 맞대고 구조조정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가장 커다란 깨달음은 기업가치의 핵심이 캐시플로(현금흐름)라는 거였다.
때문에 구조조정을 위해 돈이 되는 사업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물론 장사가 잘 되는 사업들이라 아쉽기는 했다.
96년부터 이듬해까지 코카콜라, 한국3M, 한국네슬레, 한국코닥 등 알짜배기 기업들의 지분을 모두 매각했다.
특히 당시 잘 나가던 코카콜라를 판 일은 두고두고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현금흐름에 제법 숨통이 트였다.
IMF 사태가 터진 97년, 현금흐름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투하자본수익률도 5.9%까지 끌어올렸다.
세전 이익도 708억원이나 남기는 성과를 기록했다.
하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었다.
부채비율은 여전히 600%를 넘었고, 연말엔 IMF 사태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마저 찾아왔다.
좀더 커다란 대책이 필요했던 것이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두산은 그룹의 대표선수까지 트레이드하기로 결정한다.
98년 OB맥주의 지분 절반과 경영권을 인터브루에 넘기고, 두산씨그램의 지분을 팔아 4500억원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OB맥주를 팔 때는 직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OB맥주를 살리는 게 급선무가 아니냐는 생각들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맥주에 대한 애정과 우려는 곧 체념으로 바뀌었다.
당시 구조조정 실무를 지휘했던 전략기획본부 이상하(41) 상무는 “경영진 사이에는 구조조정을 위해선 어떤 성역도 버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고 회고한다.
주류회사로서의 자존심보다는 현금이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OB맥주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맥주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했지만, 하이트와 카스의 추격으로 계속 시장점유율을 까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구조조정의 결과 두산그룹은 IMF를 모범적으로 벗어난 기업으로 손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팔아치우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조조정은 이익을 내기 위한 정지작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을 주축으로 두산 일가를 꾸려나가는 일이 필요했다.
소비재 위주의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중간생산재 산업으로 뱃머리를 돌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캐시카우 확보 위주로 신규사업 그 결정판이 두산중공업 인수였다.
99년 한국중공업의 민영화가 결정됐고, 지난해 12월에는 두산이 그 최종 인수자로 결정됐다.
당시 삼성이나 현대 등 훨씬 더 큰 공룡들도 한중 인수에 눈독을 들였지만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분 때문에 두산이 한중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한국중공업은 두산그룹의 핵심인 (주)두산보다 덩치가 컸고, 말 그대로 성장 엔진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두산중공업이 앞에서 끌어가도록 하면서, 그밖의 돈 되는 사업 위주로 경영혁신을 이룬다는 밑그림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2.5% 늘어난 626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153% 늘어난 408억원에 이르렀다.
또한 IMF 이후 꽁꽁 묶여 있던 한국전력의 수주 물량도 앞으로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영업환경이 더욱 좋아지는 것이다.
특히 올해 1분기에는 중동지역의 담수화 설비 프로젝트에 참여해 톡톡히 재미를 보기도 했다.
물론 두산은 한국중공업을 인수하기 전에도 98년 코오롱전자를 인수해 중간재산업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동막적층판 등을 만드는 이 산업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두산으로선 소비재 위주의 사업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방편이 됐다.
이때부터 구조조정의 초점을 현금 확보보다는 새로이 돈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의 확보를 위해 신규사업을 사들여 키우는 것에 두게 된 것이다.
현재 소비재 관련 산업은 두산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사업구조가 많이 바뀐 셈이다.
두산 관계자들은 생산재 부문에 치중한다기보다 현금흐름이 좋은 사업에 역량을 투입하는 경영전략으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버커킹과 KFC와 같은 패스트푸드 사업이나 김치 등 소비재 부문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이 가운데 최근 잘 나가고 있는 김치 사업에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다.
종가집 김치는 1999년 280억원의 매출을 올린 뒤 지난해는 5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는 1천억원의 매출액 달성을 예상하고 있다.
처음 김치 사업을 시작할 때는 구멍가게 정도로 여겼는데, 뜻밖에 이것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산 관계자는 국내 김치시장 규모가 2조원에 이른다며 앞으로 김치시장의 팽창을 낙관했다.
두산은 또한 맥주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뒤 소주나 청주 등 나머지 주류 부문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도 안간힘을 쏟고 있다.
올해 1월 말 시판된 ‘산 소주’는 과거 경월이나 그린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두산은 현재 내부적으로 수도권 소주시장 점유율을 13%까지 끌어올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연말까지는 이것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두산의 전략이다.
한편에선 두산이 주류 사업을 결국 팔아치울 것으로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마케팅 전략은 미래의 매각에 대비한 가격 올리기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산 내부에선 이런 얘기를 흑색선전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청주나 와인 등 강점을 갖고 있는 주류 부문을 굳이 매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조직도 인사도 내부 경쟁 도입 두산그룹이 소비재에서 생산재로 탈바꿈하는 것은 분명 커다란 변신이다.
여기에다 돈되는 소비재 부문 역시 계속 역량을 강화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결국 소비재든 생산재든 현금흐름이 경영의 초점이라는 얘기다.
부동산이야 자산가치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제때에 팔리지 않으면 대차대조표에 표시되는 수치에 불과하다.
서울 을지로의 두산 사옥을 팔아치운 것도 그룹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영등포 맥주공장을 매각한 것도 다 현금흐름을 중요시하는 경영전략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경영진이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도 내부 경영혁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두산은 아직 작업이 진행중이기는 하나 내부 경영혁신을 이루고 있다고 자부하는 분위기다.
두산그룹의 모기업인 두산은 운영체제를 비지니스그룹(BG) 형태로 바꿔 독립채산제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두산에는 상사, 전자, 주류, 생활산업 등 8개의 BG가 모여 있다.
특히 각 BG와 BG, 그리고 BG 안의 팀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예컨대 상사와 전자만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상사 내부의 식료사업 담당 팀과 외식설비 담당 팀끼리도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BG 형태의 운영 방식은 맥킨지와 컨설팅 과정을 거쳐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어찌됐든 과거에 인화를 중시하던 경영방식은 경쟁과 실적보상 위주로 바뀌었다.
조직개편 이전에 이미 인사 부문에서 경쟁체제를 도입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두산은 94년 대기업 최초로 과장급 이상 사원들에 대해 연봉제를 실시한다.
그뒤 전사원으로 확대된 연봉제는 경쟁심을 유발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입사할 때는 연봉이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차에 따라 연봉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연봉 책정에는 개인 성과와 팀 성과를 동시에 반영한다는 게 인사담당자의 설명이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OB맥주 부문에서 7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그룹 전체 적자가 400억원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OB가 일종의 부실덩어리였던 것이다.
이제 OB맥주를 외국계 회사에 넘기면서 사실상 또하나의 부실을 정리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맥주가 그룹 전체에서 갖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캐시플로를 창출하지 못하면 그것을 팔 수 있다는 게 이 그룹 경영진의 신념이다.
“‘밸류’따라 구조조정” 인터뷰/ 두산 전략기획본부 이상하 상무 두산 전략기획본부 이상하(41) 상무는 96년부터 시작된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두산의 구조조정을 지휘해온 그는 ‘가치’를 내지 못하는 사업부문은 모태기업이든 어디든 모두 구조조정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은 어떤 철학을 갖고 진행됐나. =두산그룹 구조조정의 핵심은 ‘밸류’(가치)다. 밸류를 내지 못하는 사업은 어디든 구조조정 대상이다. 모태기업인 OB맥주의 지분을 넘긴 것도 밸류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6년 당시 두산은 한국3M 등 알짜기업의 지분을 매각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지분을 통해 들어오는 배당액만 해도 꽤 큰 돈이었다. 그것도 밸류 아닌가. =가치라는 것이 단순한 이익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밸류는 지금 당장의 수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3M도 배당을 통해 이익을 내고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밸류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을 팔기만 하면서 자체 수익구조 개선은 소홀히 한 것 아닌가. =밸류를 낼 수 있다는 판단이 드는 것은 철저히 밸류를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99년 두산은 3단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1단계 구조조정이 매각을 통해 캐시플로를 플러스로 만드는 것이었고, 2단계가 선진적 재무제표를 만드는 구조조정이었다면 3단계는 핵심사업 보강이었다. 당시 3단계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코오롱전자와 버거킹을 인수했다. 소비재 중심이었던 두산의 구조와 생산재로 변화를 모색하는 두산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 진행된 수익구조 개선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당시 두산의 영업이익률은 5%에 불과했다. 이를 10%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였다. 우선 경영 업무를 철저히 점검하기로 했다. 주주와 경영자가 만나 경영자를 평가하고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임팩트 미팅’ 제도를 도입해 경영자에게 자극을 가하기도 했다.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두산이 갖고 있는 원칙도 포기했다. 두산은 자체 승진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는데 마케팅처럼 두산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분야는 경쟁사에서 인물을 영입하기도 했다. 당시 식품BG의 사장으로 경쟁사인 제일제당의 백승래씨를 영입한 게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1년 만에 두산의 영업이익률을 10%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최근 OB맥주 지분을 5%만 남기고 다 매각했다. 하지만 99년 OB맥주는 경쟁사인 카스를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OB맥주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 아니었나.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OB맥주를 그대로 끌고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룹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당시 카스를 인수한 것은 국내 맥주시장은 3개사 체제로는 모두 망한다고 판단해서였다. 2개사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고, 여전히 맥주사업을 진행할 생각으로 인수를 했다. 하지만 두산의 성장엔진을 발굴하다보니 OB맥주를 팔 수밖에 없었다. 경영권에 집착하지 않고 구조조정에 성역을 두지 않는다는 것으로 봐달라. >두산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컨설팅 업체의 지원을 많이 받았다. =지원을 받았다기보다는 컨설팅 업체와 ‘함께’ 작업을 진행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기업 구조조정의 답은 기업 내부에 이미 다 존재하고 있다. 사원들이 커피를 마시며 ‘궁시렁’대는 말 속에 이미 구조조정의 바람직한 방향이 다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뽑아내 계획을 만들고 경영진을 설득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컨설팅 업체를 이용했다. 경영진의 열린 자세도 컨설팅 업체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두산 청사진은 컨설팅사 손에?
두산그룹 구조조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가운데 하나가 다국적 컨설팅 업체들이다.
맥킨지를 비롯해 액센추어(옛 앤더슨), 왓슨와이어트 등의 컨설팅 업체가 두산의 구조조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다른 대기업은 컨설팅 업체들의 건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두산만큼은 컨설팅 업체의 컨설턴트들과 머리를 맞대며 구조조정에 관한 생각을 나누었다.
최근에는 맥킨지와 함께 구매·생산비용 절감 컨설팅 업체인 ‘노보스’를 만들 정도로 두산은 구조조정 컨설팅에 관한 한 전문가가 돼버렸다.
두산이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와 인연을 맺은 것은 95년이었다.
창립 100주년이 되는 96년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할 것을 맥킨지에 부탁하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됐다.
그뒤로 알짜 기업인 한국3M, 한국네슬레, 한국코닥 지분 매각에도 맥킨지의 조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구조조정을 더욱 원활하게 하기 위해 도입한 독립사업부제인 ‘비지니스 그룹’제도에도 맥킨지가 관여했으며, 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임팩트 미팅’ 제도의 도입까지 맥킨지와 두산은 함께 작업을 진행해왔다.
두산은 지금도 프로젝트 별로 맥킨지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앤더슨은 99년 IT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왓슨와이어트는 직원들에 대한 성과보상 시스템을 세울 때 두산과 함께 작업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