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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글로벌 코리아, 디지털 코리아
[커버스토리] 글로벌 코리아, 디지털 코리아
  • 뉴욕=김윤지 기자
  • 승인 2001.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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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실리콘밸리서 바라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 초라하지만 희망은 있어
월가. 미국 땅에 정착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인디언의 침입으로부터 맨해튼을 지키기 위해 방벽을 쌓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뉴욕의 월가는 런던의 롬바르드가와 함께 국제금융의 2대 중심지를 이룬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상업은행, 투자은행, 증권회사, 증권거래소가 모두 이곳 월가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 좁은 거리에 모인 기관들이 현재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며 세계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지난 7~8년간 신경제의 혜택으로 흥겨웠던 월가는 지난해 4월 나스닥이 붕괴한 이후 ‘신경제 신화’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럽다.
미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런 논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큰 방향도 그렇지만, 손 큰 투자자들로 가득찬 월가의 분위기는 ‘바이 코리아’ 전사들에게 압도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우물 안 경쟁 벗어나야 아직까지도 미국에서 한국 시장을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와 삼성전자를 떠올린다.
반도체를 빼놓고 한국 시장을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한국 시장에서 반도체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반도체주에 대한 매수주문이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건 아니다.
예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버린 종목이라 현재의 투자를 고려하는 사람들은 반도체가 아닌 새로운 종목을 발굴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반도체와 철강 외에, 최근에는 SK텔레콤 덕에 통신쪽도 주목받고 있다.
현대모비스, 한라공조 등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부품 업체들도 관심을 끈다.
한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본은 주로 것은 헤지펀드들이다.
미국에는 연금으로 운영하는 펜션펀드나 개인 투자자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뮤추얼펀드 등 전통적인 펀드가 많다.
이들은 수십억달러 단위의 대규모 자본을 움직이지만, 수익률과 인덱스 등을 기준으로 한 까다로운 투자 가이드 라인에 따라 투자를 하기 때문에 주로 미국 주식시장에만 투자한다.
반면 헤지펀드나 벤처캐피털은 전통적인 펀드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수익률만 보고 투자를 하기 때문에 좀더 자유롭다.
이들은 돈만 된다면 어떤 종목이든 뛰어들기 때문에 루머에 많이 좌우되고 투자기복도 심한 편이다.
몇년 전 한국에 투자하면서 국내에 갖은 뉴스를 뿌렸던 타이거펀드, 현재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조호펀드와 퍼트넘펀드 등은 모두 헤지펀드다.
헤지펀드가 아닌 금융회사들 가운데 캐피털그룹, 피델리티, 모건스탠리 등도 한국 투자에 적극적인 편이다.
알파인베스트먼트라는 헤지펀드에서 10억달러(약 1조원)를 운용했다는 베니 마도 한국 시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은 장이 좋지 않아 펀드의 50% 이상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베니 마는 텔레콤,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 약 30개 업종의 테크놀로지 분야에 투자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매스컴퍼니로 자리를 옮긴 베니 마는 그러나 지금은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그는 그 이유로 몇가지를 들었다.
“한국 기업은 우선 펀더멘털이 별로 좋지 않다.
한국에 투자할 때는 한국 내 투자자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봐야 하는데 미국처럼 시장에 많은 투자자들이 있지 않아 판단하기 힘들다.
한국 시장은 항상 미국 시장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는데 요즘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국내 이슈가 시장을 많이 좌우하는 것 같아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
” 베니 마가 한국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로 든 것 가운데는, 한국 기업은 한국 고객만 쳐다보고 있다는 점도 들어 있다.
“어느 업종에서든 한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부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기업들 가운데 그런 기업은 드물다.
최근 투자를 하기 위해 한 한국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회사 사람들에게 경쟁사의 상황을 물었더니, 모두 한국 내 기업 이야기만 했다.
이런 자세라면 1~2년은 버틸지 모르지만 실력있는 외국 기업이 한국에 들어가면 모두 무너진다.
” 베니 마는 몇년 전 LG가 이동통신 단말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이미 28개나 되는 업체들이 판을 벌이고 있는 분야에 왜 뛰어드냐”고 물었더니 “삼성과 경쟁하려고 그런다”고 답변하더라며 매우 걱정스러워했다.
그는 “에릭슨, 노키아 같은 업체들이 진짜 경쟁자인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한 경쟁력을 갖추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한국 사람들은 미국 경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미국에 있는 경쟁자를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에서 현재 두드러지는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기업은 첨단기술 분야의 원천기술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기초부터 고급까지 다양한 기술을 잘 갖추었다고 평가받는다.
본사는 미국에 두고 연구는 이스라엘에서 한다는 이스라엘식 사업 스타일이 이미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인정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 기업들은 애초 자기 나라 주식시장이 미약해서 미국 진출에 더 적극적이었다지만, 지금은 펀딩 받으려면 반드시 뉴욕에 오고 뉴욕에서 기업공개(IPO)까지 해 이곳에서 돈을 긁어모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투자나 IPO를 쉽게 하는 것에 대해 유대인이 뉴욕 월가의 중요 위치에 많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골드만삭스, 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이름에서부터 유대계임을 드러내는 투자회사나 유대계 투자자들이 뉴욕에 많고, 이들은 이스라엘 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술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지만, 미국에서도 머리 좋고 교육에 열성인 것으로 이름난 유대인들이 월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스라엘 기업의 뉴욕 진출을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고 있다.
신경제 수혜자는 생산성 높은 기업 뜨거웠던 신경제 논란은 월가에선 이제 좀 사그라진 듯했다.
모건스탠리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미 신경제와 구경제를 구분하는 것조차 힘들어질 정도로 많은 회사들이 변모했다”며 신경제에 대한 논의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얼마나 더 진행될지, 바닥은 언제가 될지가 애널리스트들의 주요 관심사라고 이야기한다.
실용적인 것을 강조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다웠다.
신경제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한 방향으로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생산성 개선이란 그리 빨리 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생산성 개선 속도에 비해 기술주에 대한 투자가 과잉됐던 게 문제였다.
결과가 금방 나올 것같이 행동한 게 잘못이었다.
이제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기술주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나 예전과 같은 열풍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 메릴린치의 전략담당 애널리스트인 카림 바스타는 과거와 같은 기술주 붐은 더는 없겠지만 지금과 같은 기술주의 무차별 하락 상황도 계속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골드만삭스의 리서치 애널리스트인 앤드류 세즈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그것은 생산성 향상에 큰 기여를 했다.
철도나 자동차가 그랬고, 요즘의 신경제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년간은 이런 상관관계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
그러던 것이 이젠 현실적인 인식으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 신경제를 이야기하려면 생산성을 반드시 함께 논해야 한다는 시각도 분명했다.
신경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투자를 유치한 닷컴기업들이 아니라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이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린 전통 기업이라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이며, 앞으로 미국 경제를 이끌어갈 것도 생산성 향상에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는 기업들이라고 이곳 애널리스트들은 평가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주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 주식시장을 이끌어나갈 대표주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기술주들은 그동안 미국 증시에서 3분의 1 정도의 기여를 했다.
그동안 약 30%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아무리 조정이 된다 해도 15% 정도는 남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전체 미국 증시에선 주목할 만하다.
” 메릴린치의 국제담당 애널리스트인 매튜 히긴스의 평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금은 불황”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데도 미국 경제가 강한 측면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도 신경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이 깔려 있다.
“논리적으로 보면 더 나빠야 하지만 시장을 보면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신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월가의 대표적인 한국인 펀드매니저 가운데 한명인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즈(IIA)의 용 김 이사는 현재 경기바닥 논쟁이 분분한 것도, 드러나는 수치에 비해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강해 판단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이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경기바닥 논쟁이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 아니다로 갈린 이 논쟁은 양쪽을 각각 지지하는 전문가들이 거의 정확히 반반씩으로 갈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있다.
대체로 올해 4분기쯤에는 상승세를 분명히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게 공통점일 뿐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미국 경제가 다시 상승하는 데 작용할 가장 큰 변수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꼽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 경제의 3분의 2는 민간소비가 차지하고 있어, 민간의 구매력이 살아나야 전체 경기가 탄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대기업 중심 전략은 실패 미국 신경제의 관점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미국과 많은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에서의 신경제가 생산성 향상이라는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한국에서 신경제라면 경제구조의 변화와 관련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신경제의 영향으로 많은 벤처기업들이 생기고 투자도 활성화돼 오랜 재벌 중심 경제구조가 바뀔 수 있었는데 그들이 더 크지 못한 게 아쉽다.
한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은 내세울 만한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해 쉽게 사그라든다.
이런 기업들은 파이낸싱이 안 되면 금방이라도 쓰러진다.
” IIA의 용 김 이사는 한국 경제의 체질이 개선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벤처기업들이 더 힘을 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월가에서 바라본 한국 경제의 모습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어느 한 분야에서나마 뛰어난 두각을 보이지 않는 한 세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을 주목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눈에 확 뜨일 만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려면 연구개발(R&D)에 매출의 15% 이상을 쓰는 미국 기업들을 따라가야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 이것이 그렇게 간단히 이뤄질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영원히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야 하는 걸까. 용 김 이사는 그래도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뚜렷하다고 이야기한다.
“미국과 일본은 80년대에 다른 길을 선택했다.
미국은 테크놀로지 중심 전략을, 일본은 정부 주도로 대기업을 보호하면서 성장시키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미국은 연평균 3~4%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일본은 미국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런 실수를 우리가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에게 신경제는 죽은 신화가 아니라 현실에 남겨진 과제라는 것이다.
“은행의 체질 변화가 절실”
월가에서 말하는 국내 금융시장 월가의 애널리스트 가운데 한국 상황에 밝은 이들은 한국 경제를 위해선 특히 은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톰슨뱅크워치 소속으로 일하던 시절에 금융회사 신용 평가를 위해 한국을 서른 번 이상 방문했다는 골드만삭스의 한 애널리스트는 한국 은행들의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며, 이것은 정부가 직접 나서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이 한 재벌에게 너무 많이 물려 있다.
이른바 ‘집중의 위험’(concentration risk) 때문에 그 재벌이 흔들리면 은행도 함께 흔들린다.
정부의 간섭으로 은행 신용도가 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진행돼온 은행간 합병은 긍정적이라고 본다.
” 이 애널리스트는 은행이 모든 위험을 떠안아서는 안 된다며, 그 해결책으로 ‘건전한 채권시장’의 형성을 꼽았다.
채권시장을 발달시켜 기업들이 채권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도 지난 70~80년대에 계속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정부 채권을 꾸준히 발행하면서 채권시장 조성에 힘썼다.
기업체가 발행하는 채권은 신용이 문제다.
이를 위해 ‘투명한’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이제야 채권시장을 개발하고 있고 규모도 작지만 앞으로 점점 채권시장을 확대해가는 게 필요하다.
” IIA의 용 김 이사는 “정경유착이 심한 나라일수록 은행은 쓰레기통이 된다”며 “미국 경제도 은행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건강한 체질로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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