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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머리만 신경제, 몸은 구경제
2. 머리만 신경제, 몸은 구경제
  • 뉴욕=김동기 KOAM
  • 승인 2001.07.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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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위주의 설립요건, 투자재원 이원화 등 구조적 문제 해결 시급
한국과 미국은 벤처 투자기관의 구조에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벤처 투자의 성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먼저 투자기관 설립요건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벤처 투자기관을 설립하는 데 엄격한 법률적 제한을 가하지 않는다.
외부의 투자자들로부터 투자재원을 확보해 벤처펀드(투자조합)를 결성할 자신만 있다면, 누구나 벤처펀드를 만들 수 있다.
벤처펀드를 결성하면서 펀드 운용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그 펀드의 1% 정도만 부담할 뿐 나머지는 외부 출자자들이 공급한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벤처펀드가 투자조합 형태를 취한다.
펀드 운용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조합 운용을 책임지는 업무집행 조합원(General Partner)이 되고, 투자자금만을 제공하고 펀드 운용에 대해서는 제한적 책임만을 지는 출자조합원은 유한책임 조합원(Limited Partner)이 된다.
펀드 운용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펀드 운용에 따른 기본 보수 외에 펀드 운용실적에 따라 수익의 20~30%를 성과급으로 받는다.
벤처펀드 출자자의 이익과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이익이 일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반면 한국의 창업투자회사는 자본금 100억원 이상을 갖춘 법인이어야 한다.
벤처투자 전문가라도 자본금이 없으면 외부 주주들로부터 자본금을 조달해야 한다.
한국에선 주주들이 주도적으로 창투사를 만들어 투자전문가를 고용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보통이다.
주주와 고용된 투자전문가로 이뤄진 이원적 구조 때문에 여러 문제가 파생된다.
우선 투자실무자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주주들이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창투사의 두가지 투자재원도 문제다.
창투사의 투자재원은 회사 자본금과 투자조합의 자산이다.
주주들은 당연히 좋은 투자기회가 있으면 먼저 창투사의 자본금으로 투자를 하고 그 다음 투자조합의 자산으로 투자하기를 원한다.
심지어 창투사의 자본금으로 저가에 산 주식을 자신들이 운용하는 투자조합에 고가에 팔아넘기기도 한다.
그 결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외부 투자자들이 희생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우수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투자실적을 근거로 연금, 기금, 재단 등 거대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들이 벤처펀드에 출자한다.
이런 기관들이 벤처펀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기관들이 공급하는 대규모의 자금과, 그 자금을 성공적으로 운용한 우수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존재야말로 미국 벤처 시스템의 성공을 가능케 한 기둥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정부에서 연금 등 기관 투자가가 벤처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관에서 벤처기업에 직·간접 투자를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위험에 비해 수익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벤처투자 회사들이 기관들을 설득할 만한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앞서 지적한 구조적 문제점 때문에 우수한 투자전문가들이 부족하고 투자가 주주들 이익 중심으로 이뤄진 탓이다.
따라서 펀드 운용을 담당할 창업투자회사 선정 기준을 좀더 선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자본금이 많다는 것과 그 투자회사가 운용하는 투자조합의 실적이 좋다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히려 자본금이 많을수록 좋은 기업에 대한 투자가 투자조합 자산이 아닌 자본금으로 이뤄질 수 있다.
또한 기존에 운용하는 투자조합 숫자가 많을수록 신규로 결성될 투자조합의 재원이 좋은 기업에 투자될 가능성이 낮아지고 자원도 분산돼 신규 조합에 우선적 배려를 하기 힘들다.
자본금, 투자조합 결성 수 등 외형을 근거로 한 태도에서 벗어나 투자 실무자들의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꿀 때 우수한 투자전문가도 배양된다.
미국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의 인적 능력을 신뢰하는 사회, 즉 개인의 능력 중심 구조인 데 반해 한국은 아직도 화폐자본 중심의 낡은 구조다.
신경제가 인간의 능력에 기반한 체제라고 볼 때 한국의 현실은 아직도 신경제의 이념적 모습과 한참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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