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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주] IP공유 허용돼야 한다
[첨단기술주] IP공유 허용돼야 한다
  • 신동녁(IT애널리스트)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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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에 가서 사과를 한상자 샀다고 하자. “이 사과는 혼자 먹어야 합니다.
집안식구와 나눠 먹으면 앞으로는 사과를 팔지 않겠습니다.
” 주인이 이렇게 말한다면? 십중팔구는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별 미친 놈 다 보겠네. 내 돈 주고 산 사과를 혼자 먹든 나눠 먹든 무슨 상관이야?” 상품의 구매는 소비자와 가게주인의 문제이지만 일단 거래가 끝나면 상품에 대한 권한이 소비자에게 넘어오기 때문에 구매한 상품을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소비자가 결정할 문제이다.


그런데 최근에 ADSL이나 케이블모뎀과 같은 초고속인터넷 이용방법을 둘러싸고 이와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1Mbps급 혹은 8Mbps급의 초고속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집안 내 다른 컴퓨터와 연결해 사용하는 것(IP공유)은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반면 소비자단체나 IP공유기 판매업체들은 소비자가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1Mbps 또는 8Mbps 대역의 인터넷 서비스를 구입했는데 한대의 PC에 물려 사용하든 혹은 여러대의 PC에 물려 사용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맞서고 있다.
논란을 풀어야 할 정보통신부는 어정쩡한 결론으로 오히려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정통부는 지난 3월13일 한국통신 등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IP공유를 금지한 인터넷 서비스 이용약관을 만든 것은 불공정하지는 않으나 소비자의 편익증진과 기술발전 등을 고려할 때 IP공유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직 공정거래위원회의 최종심판이 남았지만 IP공유를 둘러싸고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IP공유기 제조업체간의 싸움은 한층 뜨겁게 전개될 전망이다.
IP공유란 ADSL이나 케이블모뎀 등 초고속인터넷 이용자가 집안에 들어온 하나의 인터넷 연결선에 IP공유기 또는 윈도우98SE에서 제공하는 공유소프트웨어 등을 연결해 여러대의 PC에서 인터넷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두개의 랜카드와 공유케이블 그리고 공유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하나의 ADSL을 두대의 PC에서 공유하고 있다.
두 아이는 안방과 거실에 있는 각각의 PC로 인터넷에 접속해 온라인게임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고 각자 좋아하는 사이트를 검색하기도 한다.
이런 활용법은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인터넷이 전화처럼 회선(서킷) 접속방식이 아니라 데이터를 이용한 패킷 접속방식을 쓰기 때문이다.
즉 전화는 한 사람이 전화를 거는 동안은 그 선로를 완전히 점령해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지만, 인터넷은 필요한 정보만 여러 조각으로 끊어서 뿌려줄 뿐 타인의 회선을 점령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용자가 인터넷에 접속했다고 하더라도 다운로드나 업로드를 제외하고 실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시간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용권한이 주어진 1Mbps 또는 8Mbps의 대역폭에서 여러대의 PC로 접속한다고 해도 속도가 줄어드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들은 한개의 인터넷 선로에 대한 평균 이용시간을 계산하고 네트워크를 설계했기 때문에 한 선로에 두대 이상의 PC가 접속할 경우 전송정보량이 늘어나 한정된 용량의 네트워크에 과부하가 걸리고, 따라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의 이런 논리는 설득력이 약하다.
즉 한대의 PC에서 두개의 사이트에 동시 접속하는 것은 허용되고,(예를 들어 한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를 받으면서 다른 사이트의 게시판을 검색하는 것) 두대의 PC에서 두개의 사이트에 동시 접속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에 주는 부하량은 똑같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 서비스 업체의 주장은 식구가 많은 집의 경우 전화번호가 다른 두대의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ADSL이나 케이블모뎀을 두개 신청하라는 얘기인데 이는 패킷 네트워크를 서킷 네트워크적 발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각 가정의 IP공유는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10여년 전에 TV시청료를 TV당 부과해야 할 것인지 가구당 부과해야 할 것인지로 논란이 많았으나 TV 보급 확대와 PC상의 TV카드 등 TV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결국 가구당 부과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초고속 인터넷이 좀더 확산되기 위해서는 홈네트워킹이나 블루투스 도입이 필수적이고, 이는 가구 내 인터넷의 복수이용을 불가피하게 하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로서는 복수가구를 겨냥하기보다는 이용가구 수를 늘리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이들은 현재 각 기업에 ADSL보다 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T1급(1.544Mbps) 전용회선를 제공하고, 사용료로 월 200여만원을 받고 있는데, IP공유를 허용할 경우 기업이나 PC방에서 원가절감 차원에서 월 3만8천원짜리 ADSL로 전환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들로서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ADSL이나 케이블모뎀의 판매범위를 가정용으로 제한하고, 일반 기업이나 PC방 등 영업업체는 회선재임대 개념에서 금지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정의 IP공유는 굳이 IP공유기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P2P를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공유할 수 있다.
3대 이상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4~5만원짜리 허브 한대면 문제가 없다.
따라서 일반 기업이나 PC방 등에서 ADSL이나 케이블모뎀의 IP공유가 불허된다면 IP공유기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현재 IP공유기 제조업체는 닉스전자, S&S테크놀로지, 에이엘테크, 웨이코스 등이 있다.
닉스전자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업체와 맞서 IP공유 허용을 주장한 업체이다.
이 업체가 홈네트워킹을 겨냥해 내놓은 ‘사이넷PC팩’이란 제품을 활용하면 네트워크를 설치하지 않고도 전화선 콘센트에 PC를 연결해 가정 내 모든 PC를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하고 PC끼리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다.
통신용 반도체 업체인 S&S테크놀로지는 최근 통신장비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포항공대 연구팀과 공동으로 ‘IP게이트웨이’란 IP공유장치를 개발했다.
이 제품은 하나의 인터넷 선로에 최대 2047개의 인터넷 접속장비를 연결해 PC뿐만 아니라 PDA, 웹폰, 비디오폰 등 인터넷 접속장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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