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실적장세는 없다

2001-01-31     이정환
첨단기술주 83개 분석, 매출 늘었지만 수익성 둔화 뚜렷
미국 나스닥시장이 실적발표 기간에 들어서면서 일희일비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증권시장은 여전히 미국 눈치보기에만 바쁜 모습이다.
3월 말 공식 실적발표까지 한참 시간이 남아 있는 탓도 있지만 올해는 유난히 눈에 띄는 기업이 없다.
이맘 때면 흘러나오기 마련인 실적장세에 대한 기대감도 찾아보기 어렵다.


증권전문가들 견해도 크게 엇갈린다.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는 전망이 있는가 하면 이에 못지않게 실적부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증권전문가들은 “어차피 올해는 유동성장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실적호전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더이상 주가를 끌어올리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닷21>은 실적발표를 2개월여 앞두고 그 뚜껑을 살짝 열어봤다.
이번 조사는 <닷21>이 선정한 첨단기술대표주 258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미 결산을 끝냈거나 잠정 집계한 132개 기업이 조사에 응했고, 이 가운데 12월 결산법인이 아닌 기업과 워크아웃이 진행 중이거나 관리대상인 기업을 제외하고 순이익 추정치까지 집계된 83개 기업을 통계자료로 채택했다.
조사 결과 이들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100조8944억원으로 지난 99년 81조508억원에 견줘 24.5% 가량 늘어났다.
당기순이익 또한 8조2831억원으로 99년 6조3922억원보다 29.6% 늘어났다.
특히 유무선 통신 서비스업체들은 매출과 순이익이 모두 크게 호전됐다.
통신장비업체와 전자상거래업체들은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은 적자 폭을 줄였고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매출은 줄어든 반면 수익성이 개선됐다.
분기 실적 예상치 밑돌아 언뜻 보면 실적이 크게 호전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해 4분기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계산이 달라진다.
매출액은 지난해 3분기에 견줘 9.12% 가량 늘어난 반면 오히려 순이익은 87.8% 가량 크게 줄어들었다.
채무부담으로 어깨가 무거운 현대전자 탓이 크지만 이밖에도 83개 기업 가운데 25개 기업이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를 기록한 많은 기업들도 예상을 밑도는 실적을 내놓았다.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실적악화가 이어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영향력을 따져보면 실적악화의 불안감이 현실로 드러난다.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빼고 계산하면 나머지 82개업체의 순이익은 지난해 3조3129억원에서 2조3369억원으로 29.5% 가량 줄어든다.
매출은 22.1% 가량, 12조원이나 늘었는데 순이익은 오히려 1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업종별로는 인터넷기업의 약세가 두드러진다.
전반적으로 4분기 들어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기대했던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한해 85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었던 인터파크는 240억원 매출에 17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연말에 매출이 부쩍 늘어나 이 정도 모양새를 갖출 수 있었다.
가입자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통신하이텔은 868억원 매출에 6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나 막대한 이자수익에 힘입어 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1500억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자수익으로 먹고 살기는 새롬기술도 마찬가지다.
새롬기술 역시 2천억원에 가까운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신규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는 데다 광고수익이 줄어들면서 어려움을 겪어왔다.
새롬기술은 180억원에 가까운 이자수익으로 216억원의 영업적자를 만회했다.
통신 서비스쪽으로 방향을 잡기는 했지만 2003년이나 돼야 손익분기점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한해 동안 3200억원의 설비투자비를 쏟아부은 드림라인도 적자 폭이 6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조금 폐지의 날벼락을 얻어맞았던 단말기업체들도 수익성이 좋지 않다.
신제품 ‘카이 코코’ 매출에 힘입어 세원텔레콤이 그나마 체면을 지켰을 뿐 나머지 업체들은 순이익이 크게 줄어들었다.
단말기업체들은 지난해 상반기에 17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나 하반기에는 9억원에 그쳤다.
99년에 견줘 매출액은 28.6% 가량 늘었지만 순이익은 21.5% 가량 줄어들었다.
통신장비업체들도 울상이다.
네트워크 장비업체들은 매출이 71.6% 가량 늘어난 반면 순이익은 71.8% 가량 크게 줄었다.
웰링크와 삼우통신공업 등 몇몇 광통신장비업체들의 매출신장이 두드러졌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했던 탓에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
순이익률은 99년 9.6%에서 지난해에는 2.1%까지 떨어졌다.
통신 서비스 업종에서는 한국통신프리텔의 흑자전환이 돋보이기는 했지만 하나로통신과 LG텔레콤의 적자 확대로 빛이 바랬다.
하나로통신과 LG텔레콤은 각각 3천억원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반도체도 하반기 매출증가율 둔화 그나마 삼성전자가 이들의 부실한 실적을 감춰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4조3천억원 매출에 6조원의 순이익을 달성해 사상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액과 순이익은 각각 99년에 견줘 31.3%와 89.3%씩 늘어났다.
지난해 전체를 놓고 보면 사상최대의 실적이 되겠지만 하반기 들어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는 점을 지나치면 안된다.
삼성전자의 4분기 매출액 증가율은 예상을 크게 밑도는 4.1%에 그쳤고 영업이익 또한 3분기 3조8584억원에서 1조6050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순이익도 31.2% 가량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지난 4분기의 실적부진이 올해까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주력상품인 D램과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의 수요와 단가가 벌써부터 크게 떨어졌다.
반도체 업종의 실적호전은 이미 지난 이야기다.
현대전자의 부실한 재무구조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전자는 8조9163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48.3%의 높은 매출 신장률을 보였지만 연 1조원에 이르는 이자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4분기에만 1조1955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지난 한해 1조169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년 미만의 단기차입금이 75%에 달하는 데다 설비투자여력이 없어 올해에도 이같은 실적부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장비 업종에서는 미래산업과 삼성테크윈의 흑자전환이 돋보였던 반면 주성엔지니어링은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1.5%와 34.1%씩 줄어들었다.
전반적으로 4분기 실적은 3분기에 견주면 나아졌지만 2분기에 견주면 크게 모자란다.
IT기업의 특성상 4분기에 매출이 몰리는 것을 감안하면 예상을 크게 밑도는 실적이다.
대신경제연구소 정윤제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실적호전은 99년 실적이 워낙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며 “지난해 전체 실적을 보기보다는 분기별 실적 추이를 살펴보고 올해 성장성을 가늠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SK증권 전우종 부장은 “실적장세를 기대하기에는 주가가 너무 단기 급등했다”고 지적했다.
실적이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도 여기서 더 오르기는 어렵고 마찬가지로 실적이 좋지 않다고 크게 떨어질 일도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증권전문가들은 한동안 실적보다는 유동성이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실적 발표는 무분별한 유동성장세에서 옥석을 가리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차례 조정을 거치고 차별화 장세가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주가는 결국 실적을 반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