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인문)이 유행이다. 맑스 표현을 잠시 빌리면, 인문이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도 인문에 관심을 기울여 인문경영이란 말도 나온다. 그렇지만 인문을 말하는 사람마다 각자 인문에 대한 정의가 다른 듯이 보인다. 따라서 人文(인문)의 字源(자원)에서 시작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된 것은 직립보행 때문이라 한다. 우거진 숲에서 살던 인류의 조상은, 어느 날 환경의 변화로 숲이 사라지자 초원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멀리 보아야 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유리한 생존의 무기가 없었다. 도구를 만들어야 했다. 멀리 보기 위해 直立하면서 또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뇌가 커지고 생각하는 힘이 다른 생명체 보다 월등해진다. 人의 갑골문은 똑바로 선 사람의 옆 모습이다.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하여 문화를 창조한 근원적인 힘은, 갑골문의 人(인)처럼, 직립에 있었다.
중국 최고의 字典(자전)인 『설문해자』에서는 文(문)을 “錯畵(착화)”, 즉 교차한 그림이라 한다. X와 같은 交文(교문)이라 하는 데 갑골문을 보면 文(문)은 본래 문신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외부의 사악한 靈(령)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본래의 靈(령)을 지키기 위해 ♡ㆍXㆍV 등, 문신을 가슴에 새겼다. 靈(령)의 부활을 위해 시체를 聖化(성화)하는 의례였다.
문신은 죽음뿐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 때 행하였다. 產(낳을 산)은 출생(生) 시 얼굴(厂)에 문신(文)을 하는 모습, 彥(선비언)은 성인식에서 얼굴에 문신을 한 모습이다. 彡�(삼)은 아름답게 빛나는 문신을 표현한 것이다. 顏(얼굴 안)은 의례에서 문신을 한 얼굴을 표현한다(頁은 의례에서 禮冠예관을 쓴 사제의 모습이다) 문신은 東夷(동이)와 같은 沿海(연해) 민족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풍속이다.
文(문)은 이후 聖化(성화)의 의례로서 신성한 관념을 나타내는 字(자)가 되었다. 상나라 후기 이후에 王號(왕호)에 武(무)가 등장하고 또 文(문)이 등장한다. 또 주나라의 창업을 이룬 서백 창과 그의 아들 발이 文王(문왕)ㆍ武王(무왕)이다.
죽은 왕을 이름을 칭하는 방법을 기록한 내용이 『周書(주서)』 「諡法(시법)」에 나온다. 그 가운데 文(문)에 관한 항목은 아래와 같다.
經天緯地(경천위지) : 천하를 경륜하여 다스린다.
道德博厚(도덕박후) : 도덕이 넓고 두텁다.
勤學好問(근학호문) : 배움에 힘쓰고 묻는 것을 좋아한다.
慈惠愛民(자혜애민) :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백성을 사랑한다.
愍民惠禮(민민혜예) : 백성을 불쌍히 여기며 禮(례)에 따른다.
賜民爵位(사민작위) : 백성에게 작위를 준다.
文(문)이 武(무)와 더불어 인간이 가지는 최고의 德性(덕성)이 된 것이다. 文(문)은 인간이 안으로부터 가진 德(덕)으로부터 급기야 천지를 經緯(경위)한다는 뜻이 된다. 經緯(경위)란 베를 짤 때, 씨줄과 날줄을 조합하는 것처럼 천지를 질서 있게 하여 찬란한 문화를 이루는 것이다.
『 시경 』「대아 유천지명」에 文王(문왕)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온다.
維天之命(유천지명) : 하늘의 명령은
御穆不已(어목부이) : 아아, 그윽하고 그지 없도다
御乎不顯(어호부현) : 아아, 밝기도 하여라
文王之德之純(문왕지덕지순) : 문왕의 크신 덕은 지극이 순수하여
假以溢我(가이일아) ; 우리에게 흘러 넘치는구나
我其收之(아기수지) : 그 덕을 받들어
駿惠我文王(준혜아문왕) : 문왕의 뒤를 따르리라.
曾孫篤之(증손독지) : 후손들은 독실하게 이를 지키리라
文王의 덕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명령이며 지극히 순수한 상태에 도달하였다. 그러한 德(덕)이야말로 천지를 경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대왕조에 있어 왕호 文은 국가를 창업하고 이념을 확립한 자에게 주어졌다. 공자가 이상으로 삼았던 周公(주공)은 周의 禮樂文化(예악문화)의 창시자였기 때문에, 왕이 아니더라도 周文公(주문공)으로 불렸다.
“문왕이 이미 돌아가셨으나 문왕이 만든 문화는 내 몸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문화를 멸망시키고자 한다면 후세의 내가 이 문화에 간여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늘이 이 문화를 멸망시키려 하지 않거늘 광 땅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하랴”
[文王旣沒(문왕기몰) 文不在玆乎(문부재자호) 天之將喪斯文也(천지장상사문야) 後死者(후사자) 不得與於斯文也(부득여어사문야) 天之未喪斯文也(천지미상사문야) 匡人(광인) 其如予何(기여여하)] <논어 자한편>
斯文(사문)이란 문왕과 주공에 의해 실현되고 확립된 天命(천명) 실천의 전통이다. 그것은 주의 예악문화로서 공자가 하늘로부터 그 사명을 부여 받아 후손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도올은 "공자는 삶과 죽음이 새로운 하나의 지평으로 융합되는 사문(斯文: 유학의 도의나 문화)의 세계를 추구했다"며 "그는 정치적 실현이 아닌 인간정신의 내면적 고양의 새로운 계기를 발견했다"<논어 한글 역주, 김용옥, 통나무>고 한다.
문신의 의한 聖化(성화)와 그 문신의 아름다움을 뜻하는 말로부터 文(문)은, 공자에 이르러 인간의 내적인 德性(덕성)이 발현되는 것이라는 해석까지 생겼다.
文(문)의 이념은 이후 斯文(사문)이라는 문화적 전통에서 자연계의 질서에까지 확대된다.
《주역》 계사전 상에 “위로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지리를 관찰한다. 이런 까닭에 어두움과 밝음의 일을 안다.〔仰以觀於天文(앙이관어천문) 俯以察於地理(부이찰어지리) 是故知幽明之故(시고지유명지고)〕”고 한다.
천문이란, 모든 천문 현상이 운동하고 변화하는 가운데 스스로 질서가 있어 사시사철의 순환 가운데 만물이 낳고 자라는 것이다. 서로 작용하면서도 어지러움이 없다. 반면에 지리란, 形(형)으로서 고정된 것이며 내면의 질서가 밖으로 드러나는 문양(理)과 같아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人文(인문)의 중요한 핵심을 하나 알 수 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간다. 하늘의 질서 있는 움직임을 天文(천문), 땅의 질서를 地理(지리)라고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사는 사람들의 질서를 人文(인문)이라 했다. 인문은 문화(culture)라고도 하는 데, 알다시피 서양의 Culture는 밭을 가는 데서 유래한다. 사람은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의 변화와 질서를 파악했다. 그 질서에 순응하여 자연과 조화롭게 살면서, 인간은 그 생활을 안정시키고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그것이 인문이다.
인문이 비록 인간이 창조한 질서, 즉 문화이지만 그것은 천지 자연의 질서와 어울려야 하며 더욱 그 질서를 깨서는 안 된다. 본래 인문의 역할은 자연과 조화하는 인간의 순응과 질서를 수립하고 경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데 제한이 없다. 인문학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배움만이 아니다. 자연에순응하고 조화로운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인문학은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로운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이야기여야.
인문이 비록 인간이 창조한 질서, 즉 문화이지만 그것은 천지 자연의 질서와 어울려야 하며 더욱 그 질서를 깨서는 안 된다. 본래 인문의 역할은 자연과 조화하는 인간의 순응과 질서를 수립하고 경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 문명은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데 제한이 없다. 인문학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배움만이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로운 인간과 그 문화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인문은 또 서구에서 ‘liberal arts’라 하듯이 자유를 전제로 한다.
문왕과 주공에 의해 창시된 천명과 내면의 덕, 그리고 그것이 발현된 예악문화를 공자는 단순히 述而不作(술이부작 : 그 전통을 단지 서술할 뿐 창조하지 않는다)이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단지 그 규범을 받아들여 배우고 익히는 방향으로 향한다. 그 규범을 배울 수 있는 텍스트가 經書(경서)이며 이는 禮樂(예악)으로 전승된다.
文(문)은 공자에게 있어 최고의 이념에 도달했지만, 그것은 앞선 성인들이 창시한 규범으로 주어졌다. 구체적으로는 경서 가운데 나타나며 전통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文(문)의 이념이 고정화되고 권위주의적이며 형식적으로 될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데 있어 그 전통은 압력이 된다. 이 압력에 저항한 사상가가 莊子(장자)이다. 유가에서는 文(문)을 성인이 창조한 것으로 규범성을 주장하지만, 장자는 그 창조자는 자연이며 존재 그 자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의 규범성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창조적 정신을 주장하고 있다.
위(魏)나라의 초대 황제이기도 했던 문제(文帝: 재위 220~227) 조비(曹丕)는 《전론(典論)》에서, “문인들이 서로를 앝잡아 본 것은 예로부터 있었던 일[文人相輕 自古而然 (문인상경 자고이연)]”라 한다. 문인의본질은 자유로운 창조와 비판의 정신임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상대 문인과 정적의 해석을 교조에 위반된다 하여 斯文亂賊(사문난적)으로 몰아 제거하기도 했다. 윤후가 유교 경전을 주자에 따라 해석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해서 송시열이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게 만든 것이다. 反人文(반인문)이 횡행하던 시대였다.
인문으로서 ‘Liberal arts’는 또 교양을 의미한다. 文(문)이란 그 전통에서 길러진 높은 교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증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文으로써 벗과 사귀고 벗으로서 仁(인)을 이루는 데 돕는다[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논어, 안연편>. 문화는 본래 정신적인 것이며 사람은 文(문)에 있어서만 서로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 文(문)으로써 벗과 사귄다는 것은 교양으로써 벗을 사귄다는 말이다. 문의 정신적 덕성은 예악으로서 발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덕성으로는, 知(지)ㆍ寡慾(과욕)ㆍ勇(용)ㆍ藝(예)를 들 수 있고 이는 禮(예)와 樂(악)으로서 실천된다. 문화란 여기서 인간의 덕성을 꾸미는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