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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갑과을’ 공화국
대한민국은 ‘갑과을’ 공화국
  • 양경모 기자
  • 승인 2015.01.16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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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커머스 업체 ‘위메프’ 수습영업사원 해고 갑질논란…직장인 10명중 9명 “직장생활 중 부당한 갑질 당한 적 있다”

갑질논란에 불을 지핀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을 필두로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분신사건 등 대한민국은 온통 갑과을의 굴레에 얽매여 있는 사회가 돼버렸다. 핫 이슈가 돼버린 ‘갑질논란’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최근 부천 H백화점 모녀사건에 이어 지난 7일 대형 소셜커머스업체인 위메프가 새로 ‘갑질논란’에 합류했다. 위메프는 영업사원을 신규 채용하는 과정에서 수습직원들에게 정직원 수준의 업무를 할당하고 실적압박을 가하는 등의 과도한 업무를 맡긴 뒤 2주 후 전원 해고한 것이다.

또한 해고된 수습사원들이 따낸 계약을 홈페이지에서 버젓이 정식으로 판매하기까지해 수습사원을 ‘단물만 빨고 버리는 껌’으로 생각하는 행태를 취했다.

이번 논란은 지난해 12월 위메프가 영업사원 11명을 신규 채용한 시점부터 시작됐다. 당시 위메프는 수습 기간 중인 사원 11명에게 실무 능력을 평가한다는 취지로 2주간 필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에 영업사원들은 맛집이나 미용실 등을 돌아다니며 판매계약을 체결하는 업무를 담당, 매장을 찾아다니며 사장과 만나 계약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수습사원치고는 스트레스와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수습사원들은 2주 동안 하루 최대 14시간씩 근무하면서 영업사원들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를 평가받았다. 이들이 성사시킨 계약은 위메프 홈페이지와 앱을 통해 판매됐다.

그런데 2주 뒤 위메프는 평가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수습영업사원 11명을 모두 해고 처리했다. 해당 직원들은 반발했지만 위메프는 영업직이 사내에서 가장 힘들고 퇴사율이 높기 때문에 평가기준이 가장 엄격했을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위메프의 갑질행동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논란이 확산되자, 8일 해고된 11명을 전원 채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박은상 위메프 대표는 “자부심 넘치는 지역 마케팅 컨설턴트 그룹을 만들고자 통과 기준을 최고 수준으로 정했지만 소통이 미숙했다”며 “11명 현장테스트 참가자 모두 최종합격으로 정정했다”고 말했다.

▲ 위메프는 지난해 12월 수습영업사원 11명을 채용해 정직원급 업무를 주고, 2주후 전원해고해 사회적파장을 일으켰다. 뒤이어 논란이 커지자 수습차원으로 11명 전원을 합격처리했다고 밝혀 누리꾼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위메프가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수차례 채용을 해왔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 2011년 6월 위메프에서 지역 영업기획자(MD)로 근무하다 해고된 이모(31)씨는 8일 아시아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위메프에서 사람을 단기간 근무하게 한 후 자르는 방식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11년 6월1일 채용돼 6월말 정도까지 3주정도 일한 후 해고 통보를 받았다”면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3년 전에는 업무환경이 많이 달랐고 강도가 지금과 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때도 실적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해 위메프의 이번 논란은 처음이 아님을 시사했다.

마트에서, 식당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갑’이라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다

8개월째 수도권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주차안내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남모(21)씨는 최근 온라인을 들썩인 ‘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은 낯선 풍경이 아니라고 밝혔다. 남씨는 “평소에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백화점에만 오면 ‘난 여기 돈쓰러 왔으니 날 받들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주말에는 백화점 이용객이 증가해 주차장이 항상 붐비는데 왜 이렇게 느리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며 “저번 달에 주차안내원의 안내를 무시하고 만차인 주차장에 진입해 사고가 난 고객은 되려 주차안내원에 책임을 물으며 폭언을 퍼부었다”면서 “그 고객은 “무슨 서비스를 이따위로 하느냐”고 따져 물어 결국 주차안내원이 사과를 하는 등 상황이 반대로 돌아갔다”고 말해 고객과 백화점 직원 간의 갑질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님을 시사했다.

또한 수도권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박모(23)양은 “야간에는 취객들의 갑질행태가 상상이상이다”라며 “계산대에 카드를 던지고, “이거 얼마야?” 라고 반말도 서슴지 않고 가끔 성희롱을 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꼭 취객만 그런 것이 아니라 멀쩡한 정신의 사람들도 저런 행동(갑질)을 당연하는 듯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당신도 분명 어딘가에선 ‘을’일텐데... 자신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당해 봐야 한다”며 분노했다.

직장 생활에서도 갑인 원청업체의 부당한 요구는 정당화 돼버린 듯하다. 경기도 소재 중소기업 영업부에 근무하는 박xx(28)대리는 “회사생활에서 갑과을의 관계는 내가 생각했던 클래스를 뛰어넘는다”라며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찾아가면 접대 요구를 하는 등 어렵사리 계약을 따내도 자기들의 이익을 최대화한 수정된 계약서를 들이민다”며 “이럴때 큰소리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라는게 비참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갑과을이라는 관계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지난해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시달리던 ‘압구정 H아파트 경비원 분신사건’ 이후 올해 1월 초 60대 아파트 경비원이 30대 주민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는 폭행당한 경비원에게 사과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었다.

당사자인 조모(65)씨는 지난 4일 저녁 자신의 근무지인 아파트 경비실에서 30대 주민에게 폭행을 당했다. 30대 주민에게 멱살을 잡힌 뒤 밀려 넘어져 허리와 목에 통증이 생겼고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해 있는 상태다.

YTN과의 인터뷰에서 경비원 조모씨는 “보관된 택배를 찾아가라고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재촉했다고 무조건 내려와서 폭행하는 거예요, 멱살을 잡으면서... 가만히 있는데 와서 발로 차버리면서...”라며 한탄했다.

또한 경비원을 폭행하고도 화가 덜 풀린 주민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조씨를 해고하라며 언성을 높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관리소장은 경비원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결국 조씨는 자신을 때린 주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도를 넘은 갑질 행태를 보고 ‘분노돌리기’, 즉 갑에게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되갚아주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 지난해 12월 27일 부천 현대백화점에서 주차요원을 무릎 꿇게 한 일명 ‘백화점 모녀’ 사건이 뒤늦게 전파되면서 이달 5일 실시간 검색에 상위에 랭크되는 등 소비자들의 ‘갑질’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진=jtbc 캡쳐

하재청(시인·진주제일여고 교사)씨는 경남일보 칼럼에서 “한 개인은 관계 속에서 갑이 될 수도 있고 을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갑을관계는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어느 순간 바로 자기 자신이 갑질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갑을관계가 반드시 지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상황과 사안에 따라서 갑을관계가 역전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또한 갑질은 복잡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정당한 갑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을은 사회적인 갑의 구조적 폭력에 정당하게 대응하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바람직한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행동하는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며 대한민국의 ‘을’들을 응원했다.

직장인대상 설문조사 갑질 당해봤다 "90%"

이처럼 ‘갑과을’이라는 고질적 관계 때문에 다양한 사건이 일어나는 가운데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인 ‘사람인’은 직장인 796명을 대상으로 “직장생활 중 을의 위치일 때 갑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 89.9%가 “있다”고 답해 충격을 선사했다(주었다).

설문자들이 응답한 부당한 대우 1위는 ▲갑이 일방적으로 업무 등 스케쥴을 정함(55.3% 복수응답)으로 나타났으며 ▲시도 때도 없이 업무요청'(48.7%) ▲반말 등 거만한 태도' ▲업무를 벗어난 무리한 일 요구(35.9%) ▲욕설 등 인격 모독(19.6%) ▲제때 비용을 결제해주지 않음(14.5%) ▲업무실적을 빼앗김(12.7%) 등의 순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도 절반 이상인 51.1%는 “이의제기 등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유로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66.1%) ▲다들 참고 있어서(39.9%) ▲계약취소 등 불이익을 볼 것 같아서(26.8%) ▲어느정도는 당연한 것 같아서(16.9%) 등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장 심각한 갑을 관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고용주와 직원(29.2%) △원청업체와 하청업체(18%) △기업과 비정규직(12.3%) △대기업과 중소기업(12.1%) △직원과 손님(5.7%) △기업과 구직자(5.4%) △교수와 학생(4.3%)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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