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에 따른 경제 타격 우려에 러시아와 터키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터키는 미국인 목사 구금과 관련해 미국 제재를 받는 등 악화된 대미 관계를 풀기 위해 정부 대표단을 워싱턴에 파견했지만,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리라화 환율은 달러당 5.57리라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또 갈아치웠다.
올해 들어 리라 가치는 46.6% 폭락해 블룸버그가 집계하는 24개 신흥국 통화 중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의 페소(약 50.9%)를 제외하면 낙폭이 가장 컸으며 러시아 루블은 15.4%로 그다음으로 많이 떨어졌다.
터키 국채 5년물 금리는 9일 21.2%로 전날보다 0.47%포인트 치솟았는데 채권 금리 상승은 가치 하락을 뜻한다.
이스탄불 증시의 보르사 이스탄불(BIST) 전국 100지수는 전날보다 0.22% 올랐으나 올해 들어서는 15% 넘게 하락했다.
터키 경제는 앞서 수년간 덕을 본 미국과 유럽의 통화완화 정책이 끝나고 터키 기업들의 부채 증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 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의 통화정책에 대한 우려도 커지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통화 가치 급락과 금리 급등은 부채가 2천200억달러(약 247조원)에 달하는 터키 기업들에 큰 충격이 될 수 있다.
ABN암로는 9일 낸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이 터키의 금융자금 조달 능력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외환 거래에 대한 자본통제와 IMF 구제금융 가능성을 둘러싼 소문이 외환시장을 더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라화 폭락 저지를 위해 터키 정부가 쓸 수 있는 옵션으로 금리 인상과 IMF 구제금융, 미국과 협상 타결, 자본통제 등을 꼽았다.
하지만 이들 옵션 중 어느 하나도 터키가 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이다.
향후 금리 인상은 경제 안정에 하나의 카드가 될 수는 있지만, 지난달 터키 중앙은행이 금리 동결이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했던 만큼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를 용인할지 의문이며 지속성 있는 해결책도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IMF 구제금융 신청의 경우 시장에서 관측은 이어지고 있으나 터키 정부가 긴축적인 통화·재정정책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으므로 역시 현실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FT는 '그냥 기다리는'(wait it out) 것이 가장 가능성 큰 옵션이라면서 높은 물가상승률과 고질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터키의 경제 성장률과 재정적자가 아직은 버틸 만한 수준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전했다.
러시아는 영국에서 전직 이중간첩을 신경작용제로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미국 제재를 받게 된 여파로 통화와 채권 가치가 급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루블화 가치는 이틀 연속 하락해 9일 장중 한때 달러당 66.71루블에 달했다. 미국의 제재 방침이 발표되기 전날인 7일 밤과 비교하면 5%가량 급락한 것이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 현재도 세계 외환시장에서 루블화는 2016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환율인 달러당 66.60루블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제재는 국방안보 부문에 집중돼 초기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됐지만, 제기된 관측대로 연말까지 외교관계의 변동이나 양국 간 항공편 보류, 러시아산 상품 수입 제한을 포함한 2차 제재가 가해지면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