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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급등과 소득격차 악화의 상관관계 부정하면 더 꼬인다
최저임금 급등과 소득격차 악화의 상관관계 부정하면 더 꼬인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8.08.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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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 추출에서 고령가구 증가만 말하면 안 돼
무직 가구주 급증-하위 40%층까지 근로자가구 근로소득 감소 설명해야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하는 것처럼, 낭만 역시 점점 드물어지는 시대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도 그런 낭만의 축에 속한다. 솔직한 인정은 서로의 신뢰를 낳고, 결국 정합 게임으로 승화한다면 이야말로 한 번쯤 겪어보고 있는 싶은 으뜸 낭만일 것이다. 아무래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관련한 정부와 여당의 태도에서는 그런 낭만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이후 부작용 완충을 위해 ‘일자리 안정자금’이란 대책을 사후적으로 마련했음에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실업의 증가로 이어져 소득격차 악화로 이어지는 경로에 대해서는 끝까지 침묵과 모호함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애기다.

지난 8월26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기자 간담회 모습 - 청와대 제공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8월26일 청와대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는 모습

60살 이상 고령가구 증가만을 주요한 원인으로 설명하는 정부․여당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소득격차는 최근 발표된 통계청 가구동향조사에서 2018년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크게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하위 20%층와 상위 20%의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수가 10년만에 가장 크게 벌어진 것이다. 가구수 차이에 따른 편차를 바로잡고 조세 등을 제외한 처분가능소득(전국 2인 이상 가구)의 5분위 배율이 5.23으로 1년 전 4.73배보다 0.50 상승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이던 2008년 2분기 5.24배 이후 최악이다.

원인은 최하위 20%(1분위)의 가계소득이 7.6% 급감하고, 하위 20~40%(2분위)도 2.1% 줄어든 반면, 상위 20%(5분위)는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10.3%나 급증한 데 있다. 정권의 상징인 소득주도성장 노선 아래에서 되레 소득격차가 악화하는 모순이 발생했으니 충격이 상당하다.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직접 나서 대국민 설명에 나서 유감을 나타내고 소득격차 완화를 위한 소득주도성장 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소득격차 악화가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모호한 채로 넘어갔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의 일부분이라는 알맹이 없는 해명만 내놨을 뿐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위 1분위와 상위 5분위의 가계소득 증감률 추이 - 통계청
하위 1분위와 상위 5분위의 가계소득 증감률 추이 - 통계청

대신에 정부여당이 사실상 공식 원인으로 내놓은 게 있다면, 하위소득계층에 속하는 고령가구의 비중이 1년 전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표본 수를 기존 5500가구에서 8000가구로 늘리고, 인구 구성비중 등 모집단의 변화를 반영해 표본 추출 기준을 2010년 인구총조사에서 2015년 인구총조사로 바꿨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2분기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고령가구 비중이 1년 전보다 2.8%포인트(26.6%→29.4%) 높아진 게 소득격차 확대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소득격차 확대와 최저임금 관계에 대한 직관1 - 가구주가 무직인 가구의 급증

물론, 고령가구의 증가가 소득격차 확대의 주요한 원인일 수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2018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구주가 무직인 기구의 비중이 왜 ‘급증’했는지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정직하지 못하다.

2인 이상 가구에서 차지하는 무직 가구의 비중은 2분기 18.4%로 전년 동기의 15.1%보다 3.3%포인트 높아졌다. 이는 고령가구 증가폭 2.8%포인트보다 높은 것이다. 2016년 2분기에서 이 비중은 15.4%였다. 1인 이상 가구에서 차지하는 무직 가구 비중의 추세도 비슷하다. 2016년 2분기 23.1%이던 무직 가구 비중은 2017년 2분기 22.6%로 낮아졌다가 2018년 2분기 26.3%로 3.7%포인트 급증했다. 이 역시 1인 이상 가구에서 고령가구의 증가폭 2.5%포인트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두 가지 설명 요인은 경기 둔화에 따른 실업 증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일자리 상실이다.

소득격차 확대와 최저임금 관계에 대한 직관2 - 취업자가 감소하는 업종과 직종

취업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업종과 직종은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사업시설관리․사업지원 및 임대서비스업, 직종별로는 판매종사자, 단순 노무종사자,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종사자 등의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6월 업종별 취업자는 전년 동기 대비 도․소매업 -3만1000명(7월 -3만8000명), 운수․창고업 -9000명(7월 -900명), 숙박․음식점업 -1000명(7월 -4만2000명), 사업시설 등 -4만6000명(7월 -10만1000명)이었고, 직종별로는 판매종사자 -4만3000명(7월 -4만1000명), 단순 노무종사자 -1만9000명(7월 -7만1000명), 장치․기계조작 등 -7만1000명(7월 -7만6000명)이다.

정부․여당의 일각에서는, 취업자 수가 감소한 이들 업종과 직종에 가구주가 종사하는 가구의 가계소득이 증가했다는 점을 들어 소득격차 악화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준 부정적인 효과를 찾을 수 없다고 내세운다, 위의 업종과 직종 중에서 도․소매, 운수․창고업, 음식․숙박업에 가구주가 종사하는 가구의 가계소득은 통계청 공개자료를 이용해 확인할 수 있다. 전년 2분기 대비 4.7%(근로소득 8.5%, 사업소득 3.8%) 증가했다. 직종으로는 가구주가 서비스와 판매직에 종사하는 가구의 가계소득이 확인 가능한데, 전년 2분기 대비 1.4%(사업소득 8.1%, 근로소득 3.1%) 늘어났다. 다만, 서비스직의 경우 보험․․금융․전문직 등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소득 증가율이 높은 직종을 제외하는 것이 맞지만 통계청 공개자료에서는 서비스와 판매직을 합산한 결과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서비스․․판매직의 가계소득 증가율이 1.4%라는 것은 그만큼 판매직에 종사하는 가구주의 소득이 크게 감소했음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징표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들 업종과 직종에 종사하는 가구주의 가계소득 증가는 취업자 감소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경기 둔화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무직이 된 사람은 아예 제외된다는 얘기다. 이를 무시하고 소득격차 악화와 최저임금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은 말 그대로 넌센스다.

소득격차 확대와 최저임금 관계에 대한 직관3 - 완화하지 않는 하위20%의 사업소득 감소

하위 20%층 가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은 올해 2분기 각각 전년 대비 15.9%, 21.0% 급감했다. 1분기에도 1년 전보다 각각 -13.4%, -22.6%였다. 하위 20%층(1분위) 가구에서 가구주가 근로자인 가구와 근로자 외 가구의 비중은 32.6% 대 67.4%다. 하위40%층(2분위)의 근로소득과 사업소득 역시 2분기에 전년 대비 각각 -2.7, -4.9%를 기록했다. 1분기에는 근로소득이 -2.9% 줄고, 사업소득은 3.1%로 조금 늘었다. 하위20%층의 근로자 가구주 비중과 근로자 외 가구주 비중은 60.2% 대 39.8%이다.

이런 구성을 염두에 두면, 사업소득이 줄거나 근로소득이 감소한 원인을 100% 경기 둔화에만 있다고 치부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가구주나 가구 종사원의 일자리 상실에 따른 근로소득 감소,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근로자 외 가구주의 사업소득 감소 등의 경로가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지난 1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당시 따로 뽑은 자료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소득격차 확대와 최저임금 관계에 대한 직관4 - 1․2분위 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 감소

당시 청와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옹호하기 위해 통계 왜곡을 무릅쓰고‘근로자가구이든 비근로자가구이든 가계동향조사 원자료에서 합산 처리된 나머지 가구 구성원의 소득 중에서 근로소득을 1사람으로 처리해서 전체 근로자의 개인별 근로소득을 추계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하위 40%까지 근로자 가구의 근로소득 증가율은 1분위(하위 20%) 0.6%, 2분위 0.9%로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식으로 계산한 근로자 개인(가구주 근로자, 나머지 가구 구성원의 근로소득을 합산해 처리한 1인)의 근로소득 증가율은 하위 40%까지 8.9~13.4%로 훨씬 높게 나왔다.

이런 차이는 하위 40% 이하의 근로자 가구에서 가구주나 배우자, 나머지 구성원들의 근로소득 사이에 일종의 ‘제로섬’(영합)이 벌어졌을 가능성을 내비친다. 예를 들어, 가구주인 근로자의 임금 증가율이 청와대 식 분석의 최고치인 13.4%나 됐지만 배우자나 다른 가구원의 근로소득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만큼 감소하는 경우가 그렇다. 최저임금 급등으로 임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 구체적으론 도․소매․숙박업에 고용돼 있었거나, 자영업자의 고용원으로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었을 수도 있고, 일하는 시간이 줄었을 수도 있다.

청와대와 여당은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격차 완화하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최근 청와대 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그 자체만으로 ‘소득 불평등 완화’ 효과를 낼 수 없다고 밝혔던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과문한 탓인지는 기자의 기억으로는 생소하다. 대기업과 고임금 사업장 근로자의 임금을 최저임금 인상액 밑으로 억제할 수 있는 기제가 한국사회에 없다는 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안다. 사회적 타협 기구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다, 청와대와 정부도 여기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도 노력을 쏟지도 않았고 이들 사업장의 노동조합 역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소득격차 악화와 최저임금의 상관관계를 애써 부정하려는 청와대와 여당의 모습은, 어쩌면 ‘공정경제’를 완강하고 입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고민과 전략의 부재가 나은 산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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