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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 보호 위한 벨기에에서의 실험이 남긴 것
'플랫폼 노동' 보호 위한 벨기에에서의 실험이 남긴 것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3.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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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음식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와 SMart 협력 종료
자기고용 세제혜택 부여 통해 사용자에 더 많은 ‘유연성’ 제공
'유연한 작업'과 '경쟁적 수수료'를 내걸로 배달원을 모집하고 있는 영국계 초국적 배달플랫폼기업 딜리버루 로고.
'유연한 작업'과 '경쟁적 수수료'를 내걸로 배달원을 모집하고 있는
영국계 초국적 배달플랫폼기업 딜리버루 로고.

프레카리아트’(불안정 노동자)라는 신조어를 낳을 만큼 플랫폼 경제는 우리 생활의 도처에 파고들어 있다. 특히 모바일 플랫폼 상의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는 이용자와 배달하는 노동자를 연결하는 배달의기수, 요기요 등과 같은 음식배달업체들이나 수많은 대리운전업체들로 인해 낯설지 않다. 열차와 승객을 연결해주는 시공간인 기차역 플랫폼처럼, 플랫폼 경제에서 플랫폼은 일종의 노동시장 매개체다. 이 매개체를 거쳐 수행되는 플랫폼 노동은 기존의 특수고용(보험 모집인, 캐디, 학습지 방문교사, 레미콘 기사, 화물차와 특수차 운전자, 자동차 영업원, 텔레마케터, 방문판매원, 가사도우미 등)과 비숫하게 ‘사용자‐노동자’라는 전통적인 고용관계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근로형태로 분류된다. 노동보호를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어려움을 겪게 됨은 물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벨기에의 상황은 독특했다. 벨기에에는 우리나라의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처럼 ‘딜리러버루’(Deliveroo)라는 배달업체가 있다. 2013년 설립된 영국계 초국적 기업이라는 점만이 다르다. 2015년 벨기에에 진출한 딜리버루는 2016년 5월 노동시장 매개체를 하나 더 이용했다. SMart라는 일종의 협동조합이 그것이다. 딜리버루는 SMart와 플랫폼 노동을 수행하는 배달원의 노동조건과 급여를 개선하는 추가 조치들을 포함한 상업적인 공동협정을 맺었다. 협정은 같은해 딜리버루의 경쟁업체인 ‘테이크‐이트‑이지’로도 확대됐다.

협동조합 SMart, 수수료 기반의 회원제 통해 각종 사회보험과 소득 안정성 제공

국내 대표적인 배달플랫폼인 배달의민족 로고.
국내 대표적인 배달플랫폼인 배달의민족 로고.

SMart 시스템은 회원제에 기반한 일종의 유급 교대제 시스템이다. 회원으로 있는 8만명이 넘는 플랫폼 노동자를 대표해 청구서를 작성하고, 수수료(6.5%)와 세금을 공제한 뒤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SMart와 고용계약을 통해 안전훈련, 상해보험, 책임보험 등과 같은 사회보장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일정한 소득 안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4천여명에 이르는 딜리버루 배달원의 90%가 SMart와 고용계약을 맺을 만큼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음은 물론이다. SMart에 고용된 배달원은 시간당 9.31유로(학생), 11유로(비학생)를 받았고, 배달건수로 바꾸기 이전 딜러버루는 자기고용 노동자로 계약한 배달원들에게 어떤 사회보험도 없이 시간당 11유로를 지급했다.

애초 출범 당시 SMart(예술가상호협회)는 전통적인 고용관계의 속성을 강하게 지니는 플랫폼 노동의 고용관계의 ‘관리자’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플랫폼의 노동의 고용자 겸 보수 지급자, 플랫폼 노동의 대표, 법적 자문,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대부의 제공 등 다방면으로 기능을 확대했다. 플랫폼업체의 파산에 대비한 보험의 제공,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훈련과 자문의 제공까지 했다. 일종의 협동조합이었고, SMart 스스로도 그렇게 자리매김했다. 이를 통해 SMart는 경력 단절을 겪는 예술가와 다른 프로젝트 기반의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제공하는 지역 기반의 조직으로 스스로를 확립했다.

Smart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플랫폼 노동이 전통적인 고용관계 측면에서 ‘피용자성’이 강함에도 ‘독립적인 계약노동자’로 인정하고 나서 보호방안을 찾는 바람에 불안정한 일자리 모델을 합법화시키고 고용의 중심성을 훼손했다는 게 그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보험 접근권의 확보와 일정한 소득 안정의 제공으로 플랫폼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은 변화하지 않았다.

벨기에 정부, 자기고용 계약자 취급하는 세법 개정안으로 협력관계 종료 부추겨

딜리버루와 SMart 사이의 이런 협력관계는 2017년 10월 종료됐다. 딜리버루는 플랫폼 노동을 순수한 자기고용 노동자, 독립적인 계약자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갈아탔다. 운전자들은 딜리버루를 위해 직접 일하게 됐고, 배달 건수에 기초해 보수를 받게 됐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벨기에 정부가 2017년부터 적용한 세법 개정안의 영향이 컸다. 개발협력․디지털통신우편 연방장관의 이름을 본떠 ‘데크루’ 법률로 불리는 이 개정안은 ‘공식 승인된 플랫폼 상에서 수행되는 활동들에서 나오는 소득에 대한 특별세금 경감’이다. 연 5천유로 이내의 수입에 소득세율 33%가 아닌 10% 별도세율이 부과됐다. 지위는 자기고용 노동자, 독립적인 계약자였고 사회보험에 대한 접근권한은 없었다. 2018월 1월부터 세율은 0%로 낮아졌고 소득 상한선은 연 6천유로(월 최고 500유로)로 높아졌다.

애초 딜리버루는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활용했다. 하지만 데크루 법률로 인해 더 이상 학생들에 의존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2016년 10월 벨기에에 진입한 딜리버루의 경쟁자인 ‘우버이츠’가 배달원과 자기고용 노동자로 계약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벨기에 정부는 학생들이 자기고용으로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률을 2017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딜리버루나 우버이츠가 SMart과 공동협정을 체결할 필요성도 사라졌다. 딜리버루는 배달원에게 더 많은 자율성과 유연성을 제공한다며 건당 5유로(학생)와 7.25유로(비학생)로 배달 건수에 기초한 보상 시스템으로 바꿨다. 시간당 평균 2.2건을 배달하니까 SMart가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11유로(학생), 16유로(비학생)를 벌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결정은 2018년 1월 배달원 1천여명의 파업을 불렀으나 철회되지 않았으며, Smart 배달원 4천여명은 모두 자기고용 노동자로 딜리버루와 계약을 체결했다.

플랫폼 노동자에게 ‘유연성’이란? 언제 어디서 일할지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

유럽노동조합연구소에서 최근 펴낸 벨기에의 배달플랫폼 노동 보호를 위한 연구보고서 표지.
유럽노동조합연구소에서 최근 펴낸
벨기에의 배달플랫폼 노동보호 연구보고서 표지.

2016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지속된 딜리버루와 SMart의 협력관계의 경험은 플랫폼 노동보호의 측면에서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데이터를 낳았다. 최근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는 이 데이터와 경험을 분석한 연구보고서 ‘플랫폼 경제와 일-벨기에 딜리버루 배달원과 SMart’를 펴냈다(https://www.etui.org/Publications2/Working-Papers/Work-in-the-platform-economy-Deliveroo-riders-in-Belgium-and-the-SMart-arrangement). 이 연구소는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이 2005년 설립한 독립적인 연구교육기관이다.

보고서는 SMart가 딜리버루 배달원에게 제공한 유급 교대시스템이 배달원들에게 자신이 수행하는 일정의 예측 가능성을 제공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이 소득 안정성의 증가에도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SMart와 협력관계를 종료하고 딜리버루가 자기고용 계약제로 변경한 것에 대해서는 배달원의 압도적 다수가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에는 플랫폼 노동과 관련된 근본적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SMart에 고용돼 플랫폼 노동을 수행한 배달원들이 플랫폼 경제가 말하는 ‘유연성(flexibility)’에 상당한 실망을 나타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배달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유연성(언제 어디에서 일할지에 대한 더 많은 통제권)이 실제로 얻는 유연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얘기다. 이유는 딜리버루가 교대근무에 대한 탄탄한 통제를 유지하고 수요의 증감에 맞춰 일방적으로 이를 변경하기 때문이었다. 딜리버루의 사업상의 요구와 맞지 않을 때 배달원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교대시간을 예약할 수 없는 경우가 잦았고, 자주 교대시간을 거부할 경우 일을 예약하는 시스템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래서 배달원의 상당수는 약간의 소득 안정을 대가로 자신들의 노동시간을 설정할 자유에 대한 제약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이런 제약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배달원이 얻은 것은 낮은 임금과 산발적인 노동시간으로 인한 매우 제한된 자율성이었고 약간의 소득 안정이었다. 플랫폼 경제의 장점으로 널리 꼽히는 이른바 ‘유연성’은 대개가 딜리버루에서 배달원에게 내리꽂히는 ‘일방향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한다.

점점 늘어나는 독립적인 단순 계약자 규정 시도들과 로비들

보고서의 이런 내용은 플랫폼 노동의 성격과 관련된 근본적인 고민으로 이끈다. 딜리버루가 보수 수준을 설정하고 작업 일정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 지위를 자기고용 노동자, 독립적인 계약자로 설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느냐의 문제다. 딜리버루가 SMart와 협력 종료를 선언할 즈음, 벨기에노동조합총연맹 산하 벨기에운송노조, 기독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종업원노조 등과 딜리버루와 기업 차원의 단체협약 체결이 시도되고 있었다. 결국 배달원의 ‘노동자성’, ‘피용자성’에 기초한 해법이 시도되고 있었던 셈이다.

벨기에 정부가 특별세금 경감이라는 수단을 통해 플랫폼 노동을 자기고용 노동자, 독립적인 계약자로 규정한 데크루 법률은 이런 시도를 봉쇄한 셈이다. 이런 움직임은 벨기에 정부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선 2018년 상반기에 켄터키, 아이오와, 테네시, 인디애너, 유타 등 5개 주가 고용관계에서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적인 계약자로 별도 취급해서 법률을 통과시켰다. 지난해 12월에는 텍사스노동위원회로부터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용해 파견될 경우 고용관계에 있는 노동자가 아닌 계약자로 인정하게 하자는 제안이 나오기까지 했다.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는 벤처캐피털이자 정치전략 기업인 ‘터스크 벤처’와 협력하는 로비스트들의 광범위한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업의 창업자인 브래들리 터스크는 올해 상장이 예정돼 있는 차량공유업체 우버의 대주주이자 한때 최고 컨설턴트였다. 터스크 벤처의 모회사는 우버와 비슷한 플랫폼업체인 핸디다.

현재 워싱턴 연방법원에서는 우버, 라이프트 등의 운전자들이 우버를 상대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와 관련된 소송을 벌이고 있다. 2015년 시애틀 시의회는 우버의 운전자들이 단체교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대해 미국 상무부는 연방 독점법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무효소송을 걸었다. 우버 운전자들은 독립적인 계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한다는 것은 가격 설정의 담합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피용자’ 인정 어렵다면 담합 적용 배제-집단협상 인정하는 ‘종속 계약자’ 범주 필요

이에 비춰보면, 플랫폼 경제의 핵심 물음은 하나로 집약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독립적인 계약자라면 자신이 수행하는 계약 가격을 스스로 설정하고 협상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 얼마나 있는가? 작업과 일의 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 얼마나 있는가? 자신의 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되는 ‘유연성’이 그들에게 얼마나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그 정도가 미약하다면 플랫폼 노동자를 독립적인 계약자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현실을 배반하는 것이다. 노동자성을 완전히 인정할 수 없다면, ‘종속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와 같은 새로운 고용관계 범주를 마련해 노동보호를 기울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들 ‘종속 계약자’가 한데 모여 자신들의 프로젝트 가격을 설정하기 위해 기울이는 공동의 노력은 공정거래법 제19조에 따른 담합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벨기에에서 종료된 하나의 실험이 점점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플랫폼 노동에 던지는 시사점은 이것 하나로 집약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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