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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을 위한 미국의 새로운 실험=장기증권거래소(LTSE)
‘스타트업’을 위한 미국의 새로운 실험=장기증권거래소(LTSE)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23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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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실적 공시 폐지, 경영진 단기 인센티브 제한, 자사주 매입 효과 공시
10년 이상 시야 갖춘 장기주주와 창업자 동맹 가능할까?

미국 ‘실리콘 밸리’ 주도의 증권거래소가 이르면 올해 안에 가동된다. 이름은 장기증권거래소(Long‐Term Stock Exchange; LTSE)고, 본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지난해 11월3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허가 신청서를 접수했다. 심의 끝에 지난 5월10일 승인 결정이 났다. 위원 5명 중 1명만이 반대했다. 공식 출범하면 미국에서 14번째 증권거래소가 된다.

좋은 뜻을 지닌 미국의 장기증권거래소(LTSE)가 제대로 자리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은 미국 뉴욕증시 전광판.
좋은 뜻을 지닌 미국의 장기증권거래소(LTSE)가
제대로 자리잡을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은 미국 뉴욕증시 전광판.

애초 증권거래위원회에 접수된 승인 신청서에 포함된 내용을 보면 기존 거래소와 상당히 다르다. 경영진에 대한 단기 인센티브 제공 금지, 모든 자사주 매입의 영향에 대한 공시, 이사회의 위상을 갖는 장기 제품․전략위원회 설치 의무화 등이 그것이다. 다른 거래소에는 기업 경영진이나 이사회의 재량이나 자율에 맡겨지는 사안들이다. ‘장기’증권거래소라는 이름에 맞게 기업 거버넌스를 이렇게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장기 보유 주주에 대한 가중투표권 부여를 보태면 이 거래소의 확실한 목표와 철학이 무엇인지 뚜렷해진다. 단기실적에 급급하지 않고 장기가치 창출에 전념하도록 기업 거버넌스를 제도화시키고, 이 제도를 매개로 장기주주와 창업자의 동맹을 꾀하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거래소를 처음 제안하고 설립을 주도해온 스타트업계의 거물 에릭 리에스에 따르면, 기업 거버넌스는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협소한 주주자본주의를 넘어선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기업이 자리한 지역공동체, 종업원, 협력업체들을 포괄해야 하며, 지속가능성과 다양성과 같은 가치에 대한 기업의 헌신을 꾀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기초한 거버넌스를 실현할 수 있도록 거래소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기업공개 원칙을 비롯한 세부사항들은 별도로 증권거래위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증권거래위가 승인한 최종 설립 신청서에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른 가중투표권 부여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증권거래위 한 위원이 설립 승인에 반대한 주요한 이유는 ‘1주 1표’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업가와 장기주주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데서 주식 보유 기간에 따른 투표권 차등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에 해당하기 때문에 향후 접수시킬 서류에 어떻게든 반영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는 거래소가 운영되는 기본원리가 ‘장기주주와 창업자의 동맹’에 기반하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기업공개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자신이 장기주주인지를 기업에 공시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일정한 기간 동안 주식 매매를 금지하는 강제적인 구속력이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는 일종의 양해각서(MOU)에 해당한다. 법적으로 투자자는 언제든지 주식을 팔아치워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다만 기업가치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에 투자하는 ‘숏셀링’ 같은 건 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로서의 약속인 셈이다. 회사의 가치가 단기적으로 부침을 하더라도 장기주주로 남겠다는 약속은 창업주가 경영진 교체의 압력을 받지 않는 이점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장기주주들에게 추가 투표권을 준다는 게 LTSE의 구상의 뼈대를 이룬다. ‘1주 1표’에 대해 증권거래위는 설립 승인을 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관련 규정을 모두 검토했지만, 기존 주주가 불이익을 받지 않는 한 ‘1주 1표’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없었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LTSE 설립을 주도해온 에릭 리에스. 사진: 위키피디아
LTSE 설립을 주도해온 에릭 리에스.
사진: 위키피디아

거래소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한 기대를 걸게 한다. 2001년 ‘린스타트업’이란 제목의 자신의 책에서 이런 거래소 구상을 처음 밝힌 이후 리에스는 2015년부터 거래소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조직화에 들어갔다. 그때 이후 ‘파운더스 펀드’를 이끄는 벤처 투자자인 마크 안데르센, 구인․구직 서비스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결합한 인터넷기업 ‘링크드인’ 공동설립자 리드 호프먼, 트위터 공동창업자인 이반 윌리엄스 등이 투자자 겸 지지자로 참여하고 있다. 리에스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거래소에 참가하기로 한 미공개 기관투자가들이 있는데, 이들이 관리하는 자산이 3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거래소를 뒷받침할 투자자 집단은 충분하다는 얘기가 된다. 2800여개 기업이 공개돼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지금까지 벤처기업들의 요람이던 나스닥을 뒷받침하는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의 브랜드나 신뢰도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맞상대는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을 끌어들이면 거래소가 출범하는 데 문제가 없는 셈이다. 리스는 18~24개월 이내에 기업공개를 준비 중인 기업들과 접촉해 왔다고 한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가 LTSE를 통해 기업공개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디지털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니콘기업 ‘스포티파이’(Spotify)가 기업가치 평가와 공개작업을 대리하는 인수기업을 동반하는 통상적인 기업공개(IPO)가 아니라 직접상장(Direct listing)을 선택한 것도 이런 기대를 부풀리게 하는 배경을 이룬다.

하지만 기업공개라는 일생일대의 통과의례를 위해 신생 거래소를 선택하는 기업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미지수다. 거래소 설립을 주도해온 리에스가 LTSE에 상장되더라도 다른 거래소에서 복수 등록을 하거나 증권이 거래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참가하기로 한 투자자들이 적어도 리에스가 원하는 것처럼 10년의 시야를 갖출지도 알 수가 없다. 실리콘 밸리의 자금줄 구실을 하는 벤처펀드들이나 사모펀드들도 길어봤자 5년 남짓의 시야를 갖추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리에스가 주도하고 있는 이 거래소가 실리콘 밸리 벤처펀드들의 불합리한 관행을 합리화시키는 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95). 지금까지는 기업공개 이전에 막후에서 이뤄지는 펀딩들이 이 거래소가 공식 출범한 이후에는 거래소 내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LTSE가 상당한 문제의식과 철학 속에서 추진돼 온 것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거래소 운영규정과 기업공개 원칙, 실리콘 밸리의 벤처펀드 투자 관행들과 맞물리면, 좋은 뜻의 빛이 왕창 바래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경영진 단기 인센티브 제한, 자사주 매입의 효과 공시 등과 같은 LTSE의 문제의식은 오히려 우리나라를 포함한 증권거래 관련법과 제도를 강화해 기존의 거래소에 도입시킬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왕창 열어놓은 자사주 매입의 길을 좁히는 게 함께 동반돼야 한다는 얘기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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